다가오는 10월 15일은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WBU)가 시각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제정한 ‘흰지팡이의 날’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편리는 더욱 증진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시각장애가 야기하는 불편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부족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이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본지는 우리 사회에서 이들의 세계를 밝혀주고 있는 작은 불빛들을 찾아보며, 시각장애인의 삶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 봤다.

노희주 기자 nnwriggle@naver.com
김가희 기자 skyballoon00@naver.com
김도헌 기자 heenglow@naver.com
장서율 기자 loveyul01@naver.com
장수빈 기자 subin5308@naver.com
최유진 기자 cyj44126@naver.com
김수인 수습기자 cup0927@naver.com
최보영 수습기자 choiboyoung01@naver.com

 

경계를 지우고, 시각장애에 다가가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장애인은 2020년 기준 총 2,633,026명, 그중 시각장애인은 9.58%(252,324명)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시각장애인의 삶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을까. 가장 먼저, 시각장애의 정의와 범위에 대해 알아보자.

시각장애에 관한 오해와 진실
  시각장애는 크게 법적 정의와 의학적 정의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법적 기준은 ‘장애인복지법’을 따르는데, △나쁜 눈의 시력이 0.02 이하 △좋은 눈의 시력이 0.2 이하 △두 눈의 시야가 주시점에서 10도 이하 △두 눈의 시야 2분의 1 이상을 잃은 상태 △두 눈의 중심 시야에서 20도 이내에 겹보임이 나타나는 현상을 시각장애로 인정한다. 이와 더불어 의학적 정의의 시각장애는 △시력 △시야 △광각 △색각 △안구운동 등과 같이 시각에 관련된 모든 부분의 이상 현상을 포함한다. 간혹 아예 빛을 자각하지 못하는 전맹만이 장애에 해당한다는 인식이 있지만, 저시력인 경우도 시각장애의 범주에 포함된다.

  시각장애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크게 선천적 요인과 후천적 요인으로 나뉜다. 선천적 원인으로는 신생아에게서 발생하는 농루안과 불완전한 혈관을 가진 미숙아의 망막병증 등이 있다. 또, 후천적 요인에는 고혈압성 망막증과 당뇨병성 망막증, 수정체가 흐려지는 후천성 백내장 등 다양한 원인이 존재한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각장애인 중 92.4%는 후천적 요인으로 장애가 발생했다. 그밖에 선천적 원인은 5.0%, 조산 또는 난산 등 출생 시 원인은 0.1%로 훨씬 낮았다. 이렇듯 시각장애는 후천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질환 또는 폭력, 사고 등에 의해 누구나 후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갖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이 세상을 마주하기까지

△사진 속 음료의 점자에는 제품명 없이 ‘탄산’이라고만 표기돼있다
△사진 속 음료의 점자에는 제품명 없이 ‘탄산’이라고만 표기돼있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은 무엇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크게 보조공학기기와 보행도구로 나눠볼 수 있다. 보조공학기기는 시각장애인이 일상에서 이뤄지는 여러 활동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도구다. 그 예시로는 △점자정보단말기 △점자프린터 △음성합성‧점자변환‧확대용 소프트웨어 △확대용 CCTV 등이 있다. 이를 통해 시각장애인은 일상에서 쉽게 문자를 읽고, 들을 수 있다. 다음으로 가장 대표적인 보행도구에는 흰지팡이가 있다. 이를 통해 장애물의 위치, 지형의 변화 등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흰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의 자립을 나타내고, 타인에 의존하지 않고 보행할 수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 의미도 함께 갖고 있다. 그 외에도 타인의 안내 또는 안내견, 전자기기를 통해 보행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점자’는 시각장애인이 생활하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글자마다 고유 형태를 부여해, 이 점의 돌기를 손가락으로 만지며 문자를 읽는 방식이다. 글자를 파악한 후 다시 문장으로 조합해야 하기 때문에 독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도 하지만, 약자와 약어도 존재하기에 이를 활용한다면 보다 편리하게 글을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시각장애인은 점자를 통해 음성만으로 소통할 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으며, 더욱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선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점자 비문해율은 무려 86%다. 점자를 읽을 수 있는 시각장애인의 수가 실제로는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처럼 비문해율이 높은 이유에는 우리 사회에 점자 보급률이 낮다는 문제가 연관돼있다. 일상생활에서 점자가 표기된 제품을 만나기 어려운 것이다. 음료의 경우, 술 또는 탄산음료의 구별 정도만 가능할 뿐 정확한 제품명이 기재된 경우는 희박했다. 최근에는 일부 음료와 컵라면 등에서 제품 점자 표기를 새롭게 시행하기도 했지만 아직 그 수는 미미한 정도다. 또한 지난 6월에는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의약품‧의약외품에 점자 또는 음성‧수어영상변환용 코드를 의무적으로 표기할 수 있게 됐지만, 이조차도 약 3년 후인 2024년부터도 시행될 예정이다.

  여전히 시각장애인은 일상생활에서 많은 한계와 마주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점자가 널리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시각장애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시각장애인이 겪는 현실을 체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점자를 중심으로, 시각장애인의 삶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보자.

 

어둠을 딛고 탄생한 최초의 한글 점자

  훈민정음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의미로 반포된 지 480년 후, 또 하나의 글자가 세상에 등장한다. 바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자인 ‘훈맹정음’이다. 한국인에게 훈민정음은 익숙한 문자지만, 훈맹정음이라면 어떨까. 이를 알아보고자 본지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훈맹정음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라는 질문을 게시했다. 그러나 이에 ‘예’라고 답한 학우는 21명 중 단 38%(8명)에 불과했으며, 이를 미뤄봤을 때 훈맹정음은 우리에게 아직 생소한 글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나라 고유의 문자 훈맹정음과 이를 창안한 송암 박두성 선생을 찾아 떠나보자. 

손끝으로 읽는 우리 언어

ⓒ국가문화유산포털
ⓒ국가문화유산포털

  우선, 훈맹정음은 세로축에 3개, 가로축에 2개의 점을 찍어 총 6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한글 점자다. 이러한 6점자가 모인 한 칸은 초성, 중성, 종성을 나타낸다. 또한, 칸을 구성하는 점의 번호는 왼쪽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내려간 뒤, 다시 오른쪽으로 향하는데 순서대로 1점, 2점… 6점까지다. 예를 들어 ‘가’라는 음운을 표현하고 싶다면, ‘ㄱ’을 나타내는 4점과 ‘ㅏ’를 나타내는 1-2-6점을 순서대로 쓰는 방식이다. 

  훈맹정음을 창안했을 당시 송암 박두성 선생은 세 가지 원칙을 유념했다. “배우기가 쉬워야 하고, 점의 개수는 적어야 하며, 헷갈리지 않아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제작한 훈맹정음은 한글의 제자 원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시각장애인들의 눈이 돼준 훈맹정음은 남·북한이 통합적으로 사용하는 점자 문자라는 점에서도 가치를 지닌다. 물론, 현재 남·북한의 한글은 이중 모음과 된소리 표기가 다르기에 모든 글자 형태가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송암 박두성 선생의 훈맹정음 체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뿌리는 같다. 이에 송암 박두성 선생은 생전에 한글 점자만은 남북통일을 이뤘다며 흐뭇해했다는 일화도 있다. 

송암 박두성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이전까지 문자 체계로만 존재했던 훈맹정음은 지난해 12월 4일, 시각장애인 최초의 국가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문화재청은 훈맹정음을 “일제의 감시를 피해 만든 시각장애인들의 고유 언어로서,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고, 이러한 가치에 따라 시각장애인 국가등록문화재 800-1호가 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본지는 훈맹정음과 관련한 유물과 훈맹정음을 창안한 송암 박두성 선생의 일생을 실제로 체감해보고자 학익동에 위치한 ‘송암박두성기념관’으로 향했다. 송암박두성기념관은 인천광역시 시각장애인복지관 옆에 자리 잡은 송암점자도서관에서 3층으로 올라가면 만날 수 있었다.

  송암박두성기념관 안으로 들어서자, 환한 조명 아래 송암 박두성 선생의 삶을 투영하고 있는 사진과 유물이 펼쳐졌다. 이곳에는 그가 실제로 사용했던 점자 타자기, 제판기와 같은 유물이 전시돼 있음은 물론, 점자를 개발하는 과정이 기록된 맹사일지부터 훈맹정음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배포한 한글점자 일람표까지 다양한 문서가 보관돼 있었다.

  송암 박두성 선생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육에 첫발을 내딛은 것은 1913년 1월 6일이었다. 그날부터 박두성 선생은 특수학교 ‘제생원’의 맹아부에서 시각장애인을 교육하기 시작했으며, 이들이 졸업 후에도 침구술이나 안마 업계에서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특히 전시관 벽에 적힌 ‘눈이 사람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두뇌가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이니 맹인들을 방안에 가두지 말고 가르쳐야 한다’는 그의 교육관에서는, 일제 치하의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시각장애인 교육에 앞장섰던 박두성 선생의 강인한 신념을 엿볼 수 있었다.

  당시 학생들이 일본어 점자책으로 공부해야 했던 현실에 큰 안타까움을 느꼈던 박두성 선생은 이후 1920년부터 한글 점자 연구를 시작했고, 1923년 8명의 제자와 함께 ‘조선어 점자 연구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한글 점자를 완성시켜 1926년 11월 4일에 훈맹정음을 발표했다. 이후에도 그의 숭고한 ‘애맹사상’은 끊이질 않았다. 그는 자신의 집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맹인사업협회’를 설립했으며, 시각장애인의 문맹 퇴치를 위해 점자를 널리 교육하고 다양한 도서를 점역하며 점자책을 꾸준히 만들기도 했다.

  이렇듯 송암 박두성 선생은 앞 못 보는 이들에게 또 다른 길을 내어줬으며, 그가 창안한 훈맹정음은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자산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실생활 속에서 점자의 존재는 여전히 희소하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는 일상에서 한글 점자의 존재가 당연해질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한다.

 

여가 문화, 소리에 집중하다

  지금까지 시각장애인을 위한 문자인 훈맹정음에 대해서 알아봤다면 이번에는 그들의 여가 문화에 대해 알아보자. 활동적인 스포츠부터, 즐거움을 책임지는 오락까지. 그 안에는 어떤 것들이 자리 잡고 있을까. 

청각을 믿고 몸을 던져라!

  시각장애인 스포츠에는 다양한 종목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시각장애인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가 있다. 바로 ‘골볼’이다. 3명씩 팀을 나눠 눈가리개를 착용한 후, 소리가 나는 공을 상대 팀 골대에 넣는 운동 골볼, 기자들이 체험해봤다.

  우선, 진행에 앞서 골볼 경기장을 만들었다. 경기장 규격인 가로 18m, 세로 9m를 흰 테이프로 표시하고, 그 안에서 3m 간격으로 중립지역, 렌딩 에어리어, 팀 에어리어를 나눠야 한다. 골볼의 가장 큰 특징은 선수가 촉감으로 구역을 구분할 수 있도록 흰 테이프 안에 0.003m 굵기의 끈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을 위해 옹기종기 모여 흰 테이프 정 중앙에 끈을 붙이는 작업이 이어졌다. 예상치 못한 꼼꼼한 수작업에 기자들은 경기 시작 전부터 진이 빠진 듯했다. 

  마침내 경기장을 완성한 후, 안대를 착용한 기자들을 각각의 위치에 데려다준 다음 경기를 시작했다. 시작과 동시에 기자들이 웅성웅성 거렸다. “시작한 거야?” “여기 어디야?” “너 누구야?” 시야가 차단된 기자들은 순식간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여곡절 끝에 공을 든 기자가 바닥을 더듬으며 공격 구역을 확인한 뒤, 공을 던졌다. 상대 팀 기자들은 소리에 의존한 채 공을 막고자 몸을 날렸지만, 공은 여유롭게 골 지역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거야?” “이상하다 분명 막았는데.” 골을 넣은 기자도, 막으려 몸을 던진 기자도 당황했다. 이후에도 얼렁뚱땅 게임이 진행되는 듯 했으나, 조금씩 감을 잡아가며 공격과 수비에 성공했고, 기자들은 점점 골볼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경기라고 표현하기 힘든 허접한 게임은 사이좋게 2:2로 마무리 됐다.

  처음 접하는 운동 종목이었기에 골볼의 모든 규칙을 지켜가며 게임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골볼 선수들의 노력과 골볼이 얼마나 재미있는 운동인지 알아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음은 분명하다. 여가 문화는 지속적인 관심 속에서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비장애인 스포츠가 아닌 친숙하지 않은 장애인 스포츠에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소리로 보는 게임 속 서울

△서울 2033 게임 화면이다
△서울 2033 게임 화면이다

  스포츠에 이어, 비장애와 장애의 격차를 해소한 온라인 게임을 만나봤다. 바로 2018년 ‘반지하게임즈’에서 출시한 게임 ‘서울 2033’이다. 서울 2033은 주어진 상황에 사용자가 원하는 선택지를 고르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텍스트 기반의 게임이다. 상황과 선택지가 모두 문자로 제시된 덕분에, 음성으로 화면을 읽어주는 ‘보이스오버’ 기능을 활용한다면 시각장애인도 즐길 수 있다. 

  실제로 해당 게임은 2019년 1월, 보이스오버 기능을 사용한 시각장애인의 리뷰로 화제가 됐다. 당시 리뷰어는 게임 플레이와 직결된 기능인 3가지 자원(체력, 멘탈, 돈)이 이미지로만 표현돼 음성으로 안내받을 수 없었다는 불편함을 표했다. 이를 통해 문제점을 인지한 개발사는 리뷰를 남긴 시각장애인과 메일로 소통하며 해당 이미지를 보이스오버 기능이 읽을 수 있도록 개선했다.

  이에 기자는 시각을 차단한 후 보이스오버 기능에만 의존해 서울 2033을 체험해봤다. 게임에 접속해 화면의 정중앙을 터치하자 곧바로 음성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다. 배경은 핵전쟁으로 황폐화된 서울이었다. 여기서 게임의 주인공은 서울과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부모님과 숨어 살았는데, 이후 18번째 생일날 헛간에서 총살당한 부모님을 발견하게 된다. 그 범인을 밝히는 단서를 찾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었다. 마주치는 인물마다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전부 다르기 때문에, 대화를 진행할 것인지의 유무 또한 사용자가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오로지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소리만으로 화면을 인식하는 것은 낯설게 느껴졌다. 어떤 부분을 먼저 눌러야 할지 파악이 어려웠으며, 원하는 선택지의 위치를 찾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화면 구성이 단조로웠던 덕분에 점차 감을 잡아가며 플레이해나갔다. 특히 사전에 봤던 리뷰에서 언급한 3가지 자원은 이미지를 누르면 텍스트로 잔여량을 읽어주는 방식으로 대체돼 있어 파악이 용이했다. 여러 번 플레이해보니 같은 선택일지라도 상황에 따라 이득일지, 손해일지가 달라져 지루하지 않게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이처럼 소외 없는 스포츠와 오락을 위해 놀이 문화는 부단히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시각이 제한된 이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할 경우, 놀이의 즐거움을 한정짓게 만들 위험이 크다. 앞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살펴나가며, 여가활동에 있어서도 차별 없는 사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시각장애인과의 아름다운 동행을 꿈꾸며

  1926년, 훈맹정음의 탄생으로 시각장애인은 지면 위에 볼록 튀어나온 6개의 점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후 1946년에는 땅 위의 장애물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흰지팡이가 등장했고, 이 덕분에 앞이 보이지 않는 이들도 혼자서 보행이 가능해졌다. 이에 본지는 시각장애인의 학습권과 이동권을 보장하고자 했던 노력의 흔적을 따라가, 이들의 삶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 봤다. 

손끝과 두 귀로 세상을 읽어가다

  인간은 모든 정보의 80% 이상을 눈으로 흡수한다. 그렇기에 시각장애는 문자생활의 어려움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이 접하는 도서의 형태는 어떤 모습일까. 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점자도서관에 찾아갔다. 지난 1983년에 개관된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점자도서관은 상일동역에서 도보로 12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점자도서관의 문턱을 넘는 순간, 시야에 가득 찬 건 점자도서가 아닌 다량의 음성도서였다. 예상과 다른 모습에 놀라기도 잠시, 시각장애인 중 점자해독이 가능한 비율이 5.2%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레 해소됐다. 일반적으로 점자가 미숙한 시각장애인에게는 청각을 통해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음성도서가 점자도서보다 편리하기 때문이다. 녹음도서는 주로 CD나 카세트에 성우 혹은 자원봉사자가 녹음한 음성 파일이 저장된 형태로 이뤄져 있었는데, 직접 들어보니 텍스트가 보이지 않음에도 책의 내용을 무리 없이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유용하게 느껴졌다.  

  이윽고 도서관의 안쪽으로 더욱 들어가자, 점자도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넘겨본 책의 첫 장에는 아무런 그림도 없이 하얀 종이 위에 점자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두 눈을 감고 양면에 박혀있는 점자들을 만져보자, 미세하게 오돌토돌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러나 점자의 구조를 사전에 익혔음에도, 작은 점들이 긴 문장의 형태로 이어지니 글자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더불어, 찰나의 순간에 느껴지는 손끝의 감각만으로 글자를 읽어야 하는 시각장애인의 고충이 여실히 실감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점자도서관은 ARS전화도서관과 모바일소리책을 운영하며, 온·오프라인으로 시각장애인의 독서 활동을 지원한다. 시각장애인이 소리와 손끝의 감각으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움을 건네주는 점자도서관. 어쩌면 이러한 존재가 시각장애인의 밤을 밝혀줄 등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시간이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해지기 위해

△안대를 쓴 기자가 흰지팡이를 짚고 시각장애 보행 체험 중인 모습이다
△안대를 쓴 기자가 흰지팡이를 짚고 시각장애 보행 체험 중인 모습이다

  다음으로, 시각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고 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직접 체험해보고자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으로 향했다. 먼저, 이곳에서는 복지관 권익사회서비스팀 한연기, 이월섭 직원님의 지도 아래 장애인식개선교육이 이뤄졌다. 두 분은 후천적 시각장애인으로, 시각장애인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에 관한 교육을 진행했다. 특히, 이월섭 직원님은 “시각장애인을 마주했을 땐 무작정 도움을 건네기보다 그들에게 도움의 필요 여부를 먼저 물어보는 것이 예의예요. 그리고 시각장애인에게 길을 안내할 때는 이들보다 반보 앞서 걷는 것이 좋습니다. 시각장애인이 안내자의 걷는 리듬에 따라 보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죠”라며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배려를 상기시켜주셨다. 

  장애인식개선교육을 마친 뒤에는, 자립지원과 홍윤희 과장님의 도움을 받아 복지관 앞길에서 흰지팡이를 이용해 시각장애 보행 체험을 진행했다. 체험에 사용된 흰지팡이의 최대 길이는 약 110cm이며, 약 200g 내외의 무게였다. 또한, 휴대성을 위해 4단 접이식 형태로 제작돼 있었다. 본격적인 체험에 앞서 기자는 안대를 낀 뒤, 접혀 있는 흰지팡이를 펼쳐 손으로 잡았다. 그다음에는 배꼽 위치에서 팔을 쭉 펴 고정한 채, 흰지팡이를 쥔 쪽의 손목만으로 어깨너비보다 조금 넓게 보행반경의 바닥을 좌우로 두드렸다. 그렇게 주변의 지형지물을 파악하면서 천천히 점자 보도블록을 밟은 채 앞으로 걸어갔다. 시야가 차단됐기 때문일까. 한 걸음을 뗄 때마다 공포감은 급격하게 가중됐다. 오로지 발밑의 느낌과 지팡이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극한의 무서움으로 다가왔고, 그 과정에서 앞이 보이지 않은 채 도보로 이동하기 위해선 주위 환경에 대한 보행 정보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지금까지 여러 정보와 체험으로 시각장애인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 봤다. 이들의 어려움을 느껴본 건 아주 잠깐뿐이었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시각장애인의 앞을 막아서는 장애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시각장애로 인해 겪는 불편과 차별을 해소하려면, 사회는 아직 더 많은 길을 나아가야 한다. 정보 접근 측면에서는 점자나 음성서비스를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더욱 확대해야 하며, 올바르고 안전한 보행을 위해 점자블록이나 핸드레일 등을 도시공간의 적재적소에 설치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권리가, 그들에겐 아직 보장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