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상임 대표

 

  삐딱하게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여성폭력 근절, 성평등한 사회,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목적으로 활동하는 단체가 있다. 바로 전국 25개의 지부가 함께 행동하는 한국여성의전화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상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여성의전화 상임 대표 송란희입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어떤 일을 하는 기관인가요
  1983년에 만들어진 한국여성의전화는 한국 최초로 여성폭력 문제를 다룬 단체입니다. 여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상담과 지원을 토대로 세상의 변화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이를 위해 단체에서는 여성폭력 관련 법 및 제도 개선, 여성인권영화제 FIWOM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국에 있는 여성의전화는 모두 동일한 사업을 진행하나요
  여성의전화는 큰 목적에 위배되지 않는 이상, 어떤 사업이든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각 지부의 사업 내용에는 지역별 특성이 반영되기도 해요. 예를 들어 광주에서는 성매매 피해자 지원시설을 운영하고, 영광에서는 이주여성을 돕기 위한 사업이 특화돼 있죠. 목포나 김해에서는 상담은 진행하지 않고, 지역사회에 있어 여성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여성의전화는 독립적으로 운영하되, 교육과 정책으로 각 지부와 연대하고 있습니다.

‘여성주의상담실천연구소’는 어떤 기관인가요
  여성의전화가 진행하는 상담을 ‘여성주의상담’이라고 하는데요. 여성폭력 문제의 원인은 피해자에게서 찾기 쉽기 때문에, 여성주의상담에선 그 원인을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보도록 관점을 변화시킨다는 점이 가장 핵심적인 거 같아요. 또, 상담자와 내담자를 수평적인 관계로 설정한다는 점도 특징이죠. 연구소는 이러한 관점을 가진 상담자를 양성하고 여성주의상담의 전문성을 위한 연구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먼지 차별 캠페인이 궁금합니다
  먼지 차별 캠페인은 누구나 ‘일상의 차별에 대한 민감성을 길러야 한다’는 취지로 2015년에 시작됐어요. 당시 외국에서 micro aggression(일상생활에서 이뤄지는 미묘한 차별)이라는 단어가 유행해, 한국어로 표현할 단어를 찾고 있었죠. 이는 예컨대 “너는 여자인데 프로그래밍을 잘하네?”와 같이 노골적인 비하가 아닌 교묘하게 비하가 담겨있는 말인데요.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가만히 두면 쌓이게 되는 먼지와 같다고 해서, 먼지 차별로 이름을 붙이게 됐습니다. 이를 이용해서 광고도 만들고, 사이트를 구축해 먼지 차별에 대해 알아보는 퀴즈 프로그램과 홍보물 제작 등의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만든 자료들을 저희만 쓰는 것이 아니라, 강사분들이 교육에 사용하기도 하시면서 먼지 차별이 널리 알려지고 있는 것 같아요. 

여성폭력 관련 법 및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최근 진행하신 활동이 있다면요
  오는 21일부터 시행되는 스토킹 처벌법의 개정 운동을 시작했어요. 스토킹 처벌법은 가정폭력이나 데이트폭력 피해자에게 꼭 필요한 법률이었습니다. 저희는 20년 동안 수많은 토론회와 회의를 통해 해당 법안에 대해 외쳐왔죠. 올해 제정이 됐지만, 저희가 봤을 때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제정이 되자마자 개정 운동에 돌입했어요.
  또, 형법 297조의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이라는 말로 명시돼 있어요. 하지만 폭행 또는 협박의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고, 기존 사법에서는 저항할 수 없는 정도의 폭행과 협박을 상정해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수많은 성폭력 피해는 ‘저항할 수 없을 정도’라는 느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죠. 그래서 ‘폭행과 협박’을 삭제하고 ‘동의 여부’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현재 진행 중이거나 집중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요 
  지금은 여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직접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마음대로 점프’라는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어요. 그들의 경험을 표현한 글, 음악, 몸짓이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법률적으로는 피해자의 손해 배상을 위한 권리에 집중하고 있어요.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에 대한 합의를 하거나 손해 배상을 청구했을 때 “돈 바라고 그랬네”와 같은 비난이 쏟아지더라고요. 저는 ‘왜 어떤 피해자에게는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어떤 피해자는 비난을 받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건으로 인해 직장을 제대로 다닐 수 없었거나, 해결을 위해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었다면 회복을 해야죠. 그렇기 때문에 청구권에 관한 권리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요. 또, 우리나라는 피해가 발생한 3년 안에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예전에 발생한 성폭력도, 추후에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소멸시효를 연장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 기관의 대표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철학이 있다면요
  저는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이지만, 개인 활동가가 아니라 조직에 속한 활동가이기 때문에 조직의 목적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서 사업 내용이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았는지 검토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조직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고자 신경 쓰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활동가들이 편안함과 행복함을 느끼고 성장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죠. 


여성이자 한국여성의전화의 대표로서 꿈꾸시는 미래가 있다면요
  우리를 옭아매는 규범과 당위가 조금 더 느슨해진 사회를 원합니다. 여자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규범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의식과 무의식을 모두 지배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고, 더불어 가족의 구성이 덜 필수적인 사회를 바랍니다. 꼭 가족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가족의 구성이 필수가 아니어야 사람들이 관계에서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진 다양한 배경들이 다양으로 존재해야 위계를 갖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동덕여대 학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앞서 여성이라는 이유가 삶을 옭아매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잖아요. 실제로 본인을 가두는 말과 상황들이 앞으로 계속 존재할 거예요. 하지만 그 문제는 결국 해결되리라는 말을 믿으셨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우리가 지나온 역사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호주제와 낙태죄 폐지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됐던 옛날의 방식으로는 현재에 도달할 수 없었겠죠. 하지만 사실 모두 가능한 일이었고, 우리는 이 과정을 함께 해왔으니까, 여러분도 언제든지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일원이 되시길 바라요.

 

김가희 기자 skyballoon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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