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물리학과를 졸업한 후 댄서이자 유튜버, 미디어 기업과 비주얼 아트 크루 대표로서 활약하는 사람이 있다. ‘휘슬’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허휘수 씨의 이야기다. 다양한 여성 컨텐츠를 선보이며 크고 작은 영향력을 선사하는 그를 만나 삶 안팎의 많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 ‘N잡러’ 허휘수입니다. 유튜브 채널 ‘소그노’를 운영하고, ‘소그노 영상제작소’의 대표로서 영상 외주 작업을 합니다. ‘스튜디오4bpm’을 통해선 옷 브랜딩을 하고, 바에서 일하죠. 댄서로선 많은 활동을 하진 못했지만, 요즘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보고 자극을 받아서요. (웃음) 춤과 관련한 활동도 더 하려고 합니다.

 

유튜브 채널 ‘소그노’는 어떤 사람들이 모여 구성됐나요
  구성원 전원이 숙명여자대학교를 졸업했는데, 영상을 다루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죠. 처음에는 김은하 PD가 쓴 <세상에 나쁜 애는 없다>라는 웹 시트콤으로 시작했어요. 이후 소그노가 지원 사업에 선정되며 대형 콘텐츠를 제작할 여건이 마련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채널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됐는데, 모두가 ‘페미니스트’라는 공통점을 찾게 된 거죠. 그렇게 여성을 위한 미디어라는 지향점이 생겼어요. 소그노의 정체성이 정해진 후, 현재의 취지와 맞지 않는 영상들은 삭제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기존의 정체성이 ‘배꼽사냥꾼’이었던 것만큼 누군가를 웃기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하죠.

 

<뉴토피아>를 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유튜브 최초 여성 예능’이라는 생각으로 <뉴토피아>를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예능에서 다뤄진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죠. <뉴토피아>를 공개하던 2020년 초만 해도 유튜버들이 하나의 프로그램에 모이는 포맷이 없었는데, 여러 여성 유튜버가 함께한다고 하니 화제가 됐습니다. 그때는 많은 관심과 반응이 얼떨떨하기도 했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많은 사람이 이러한 여성 예능을 원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우리의 비혼 다이어리>에서 비혼 여성의 동거 생활을 통해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셨나요
  혼자 사는 삶을 담는 예능이 많아졌지만, 대부분은 비혼 라이프에 초점을 맞추진 않았죠. 그래서 비혼을 중심에 둔 관찰 예능을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7명이 함께 산다는 건 어마어마한 실험이었어요. ‘비혼 라이프’라고 하면 주로 혼자 사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비혼이라고 해서 다른 누군가랑 같이 살면 안 된다는 법은 없죠. 비혼 여성끼리 더불어 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디폴트 여성 100인의 인터뷰>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으셨나요
  ‘탈코르셋은 당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점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누군가는 계속해서 탈코르셋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죠. ‘탈코르셋을 하라’는 메시지를 전할 의도보다는, 연대에 초점을 두고자 했습니다. 여성 개개인도 중요하지만, 100명이라는 집단에 큰 의미가 있다고 봤죠. 영상에서 “탈코르셋 하신 건가요?”라는 질문에 동시다발적으로 “네”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어요. 같은 얘기를 하더라도 100명이 하면 더 가시적일 수 있거든요. 이런 방식을 통해 이들의 발화에 힘이 실릴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주얼 아트 크루 ‘스튜디오4bpm’는 어떤 팀인가요
  4bpm은 ‘4 blocks perfect mab’의 약자로, 4개의 블록이 모여 완벽한 지도가 된다는 의미예요. 무언가에 도전하는 데 두려움을 느끼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시기에 네 사람이 함께 모여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거죠. 2명이 칵테일 바를 중심적으로 운영하고, 저를 포함한 다른 2명이 의류 브랜드를 담당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분리된 운영 방식에 다소 어려움을 느껴서, 어떻게 통합해서 브랜딩을 해나갈 수 있을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에세이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를 통해 전하고 싶은 바가 있었다면요
   이 제목의 의미는 소그노의 비전과도 동일해요. 책을 쓸 수 있게 된 기회도 소그노 덕분이었을뿐더러, 제 자전적인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문장이기에 이 제목을 택했습니다. 이 책을 쓸 때만 해도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한 사람일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책을 쓰며 부제목을 『유별난 여성이 아니라 온전한 내가 되기까지』라고 적은 이유도 그거예요. 제게 ‘온전한 나’란 ‘계속 흔들리는 곳에서 중심을 잡는 나’인 것 같아요. 평평한 평지를 걷고 있는 사람이 아닌, 필연적으로 흔들리는 사람인 거죠. 그게 제 모습입니다. 제가 책을 출판함으로써 정해진 정답대로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점을 전하고 싶었어요. 책 안에서 어떠한 메시지를 가져가는 것은 독자의 몫이지만, 무엇보다 페미니스트로서 책을 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의미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댄서로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춤을 추려는 욕구는 늘 있는데, 그렇지 않을 때도 많거든요. 옛날에는 제가 하고 싶은 것 중 제일 잘하는 게 춤이었죠. 근데 요즘에는 의문이 들어요. 나는 다른 것도 잘하는 것 같은데. (웃음) 그런 고민을 하면서도, 결국에는 춤을 안 추면 안 되겠더라고요.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언젠가 댄스컬(댄스+뮤지컬)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휘수 님께 ‘여자대학’(이하 여대)은 어떤 의미였나요
  제가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데 있어 여대의 역할이 매우 컸어요. 대학교는 학문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곳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들과 함께할 건지 결정하는 시기가 바로 대학생 때죠. 여대뿐 아니라, 여성으로 구성된 집단에 속해 있다 보면 일상에서도 여성이 디폴트가 되기 쉬워요. 직장 내 상사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주로 중년의 남성을 생각하게 되잖아요. 하지만 여자들끼리 일을 하다 보면 모든 기본값이 여성이 되는 겁니다. 더불어,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로 서로에게 영향이 될 수도 있죠. 많은 여성에게 이러한 경험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계속 변화하는 게 저의 계획입니다. 사실 한 가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람이 부러웠거든요. 그런데, 결국 저는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제가 하는 일이 또 다른 일에 지장을 줄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제 생활을 지키며 해나갈 수 있게 됐어요. 항상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어요. 제 안에서만큼은 계속, 또 계속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동덕여대 학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솜솜이 여러분, 여대를 다니는 이 시간을 잘 활용하세요. 이곳에는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여성 인력이 정말 많잖아요. 다양한 분야의 여성을 사귈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시길 바라요. 더불어, 서로를 북돋아 주면 좋겠어요. 여성이 여성을 미워하지 않고, 존재 자체를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연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20대 여성 동료들이 잘 살아내 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잘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김도헌 기자 heenglo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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