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까지 본교 학우를 대상으로 제34회 동덕문화상 공모가 진행됐다. 시 부문 여태천(시인·국어국문학과) 교수, 소설 부문 이주미(문학박사·교양교직학부) 교수, 사진 부문 윤종구(화가·회화과) 교수가 심사를 맡았다. 이번 호의 5~7면은 동덕문화상 당선작으로 꾸며졌다.

<동덕여대 학보사>

 


ㅣ사진 부문 당선작ㅣ

원의 직선 - 김채은(문화예술경영 21)

 

사진 당선 소감

  항상 내가 느끼는 것들을 공유하고 표현하고 싶어 했다. 

  이번 공모전을 내면서 솔직히 사진보다 시가 뽑힐 거라고 더 자신했었다. 원의 직선은 내가 아끼던 사진이었지만 누군가 알아봐 줄 거라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것들을 조금 더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학우분들께 감사하고, 대관람차의 회전 속에 숨겨진 직선처럼 각자의 직선을 찾고 표현되길 소망한다. 앞으로 더 좋은 사진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겠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사진 심사평

  오늘날 지구상에서 매일같이 수많은 사진들이 찍히고 소비되고 삭제되는데 어떤 것은 예술이 되고 어떤 것은 왜 예술이 되지 않는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이런 점이 아닐까 싶다.

  첫째, 일회적으로 찍히고 소비되는 사진은 설령 아름다운 대상을 찍었다 하더라도 예술이 되기 어렵다. 사진이 예술이 되려면 적어도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찍는 이는 주제를 지속성을 갖고 다뤄야 하며 그런 만큼 주제에 대한 이해도가 남들과는 달라야 한다. 이 점은 사진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 분야에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주제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어야 한다. 사진이 개성을 획득하는 지점일 수 있다. 카메라는 사각형이라는 정해진 창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 이 점은 사진을 찍는 이들에게 공통된 조건이다. 따라서 찍고자 하는 대상을 어떻게 담아내느냐가 주제를 강화하기도 하고 평범하게 만들기도 한다.

  셋째, 카메라는 빛을 담는 도구이다. 사진은 빛이 만들어 내는 예술이다. 빛이 있어야만 사물에 대한 인식이 가능하고 빛이 빚어내는 무한 가능성을 어떻게 포착하는가가 사진이 예술이 되는 절대 조건일 수 있다. 여기에 더해서 보정 과정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과거 암실에서 했던 현상 과정을 오늘날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대신하고 있는데 이 과정을 거칠 때 사진은 작가의 의도가 보다 더 정교해진다.

  이 정도가 사진이 예술이 되기 위해 충족해야 할 필수 요소가 아닌가 싶다. 이번 사진 공모에는 총 16명의 학생들이 작품을 응모하였는데 심사는 대략 이런 기준 하에 이루어졌다. 최종적으로 두 학생의 작품을 후보작을 뽑았으며 마지막 수상작으로는 작품 주제 ‘시각에 관하여’라는 출품작 중 ‘원의 직선’이라는 작품을 이번 동덕문화상 사진 부문에 선정하였다. 

  선정 이유는 우선 응모자(이하 창작자)의 주제에 대한 이해도가 남달랐다. 3점의 출품작 모티프는 각각 달랐으나 대상을 감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생각 속으로 끌어들여 의미화해내는 능력이 돋보였다. 그런가 하면 대상을 담아내는 시각 또한 평범하지 않았다. 이번에 선정된 작품 ‘원의 직선’도 주제인 관람차와 배경이 되는 도시 야경의 수평 그리고 촬영자의 시점이 일치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촬영하였고, 나머지 두 작품 또한 지나치기 쉬운 사물이나 상황을 낯선 시선에서 바라보고 포착하고 있다. 3점 모두 의미 있게 보았으나 수상작인‘원의 직선’은 우선 조명에 의해 내부구조를 선명히 드러낸 원형의 관람차라는 주제를 좌우 대칭인 정중앙에 위치시켜 주제감을 강하게 드러냈다. 

  작품 노트를 보면 창작자는 낯선 여행지의 밤거리를 거닐다가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외면한 객차가 텅텅 빈 채로 느리게 돌고 있는 원형의 관람차에 마음이 끌리고 몸을 싣게 된다. 그리고 관람차가 회전하면서 현란한 야경의 대도시 수평과 일치되었을 때 문득 도시가 깊숙이 숨겨둔 비밀이라도 발견한 듯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관람차는 기계적으로 묵묵히 돌기만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었다. 관람차 내부의 직선은 도시의 기반이 되는 수평과 동일한 것이었고 도시를 구성하는 일부였다. 

  일반적으로 관광객이라면 관람차에서 멀리 조망되는 대도시의 야경에 더 환호하는 것이 대부분일 듯하다. 그러나 의외로 창작자가 주목한 것은 뜻밖의 원형 관람차 내부였고 직선이었다. 작가적 시선이 엿보인다. 이 점이 이번에 선정된 작품이 예술이 되는 주요 지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예술이 된 작품은 이미지로 기억되기보다는 그 이미지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더 오래도록 떠올리게 된다. 작품 ‘원의 직선’은 그러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윤종구(화가·회화과) 교수

 

 

 

ㅣ시 부문 당선작ㅣ

손잡이를 돌려도 영원히 잠기지 않는 세계에서의 - 조은정(문예창작 18)

무너짐.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바닥에 주저앉는 일.
감싼 얼굴 틈으로 엷게 흐르는 눈물을 외면하는 일.
기다리지 않은 아침마다 맹렬하게 울어대는 시계 소리를
이불 속에서 뭉개는 것처럼 우리는 벽 앞에 서 있었다.
곧 무너지게 될 희고 불투명한 벽 앞에서.
둥근 지붕 아래 펼쳐진 아크릴의 세계 안에서.
여기에서 마지막으로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중얼거리며 천장을 올려다본다.
천장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는 습관, 미련. 
그리고 또 뭐더라. 

사랑, 사랑이 있었지.
  
나는 편지를 쓰다가 별안간 울어버린
지난 수요일의 오후를 떠올리며 부끄러워했고
너는 벽 옆에 난 문을 보며 말한다.
그 사람은 늘 그런 식이었어.
네가 어렵게 발을 딛고 손을 내밀면
비스듬히 얼굴을 비췄다가 도망가곤 했지.
있지도 않은 투명한 선을 그으면서
여기로 넘어오시면 안 돼요, 하는 것처럼. 
영리한 핫케이크가 흰 설탕으로 치장하는 것처럼.

메이플 시럽이나 꿀을 끼얹었어야 하는데.
내가 고개를 숙이자 너는 나를 문 옆으로 데려간다.
오래 전에 식어버린 사랑을 차마 비틀지 못해
평생 열리지 못할 문이 있었고
그 문을 열 수가 없어서 
매번 무너져야하는 사람이 있었다.

얇을수록 먹기 좋은 핫케이크처럼
벽도 망가져야 너머를 보여줄테니
이 무너짐을 믿어보는 거다.
 
씩씩하게 울고 사랑하기,

그리고 철컥.

나에게서 도망치지 못한 사랑이
답장 대신 열리는 중이었다. 

 


시 당선 소감

  처음이라는 말은 참 설레는 것 같아요. 첫 눈, 첫사랑, 첫 마음. 처음의 의미를 담은 것들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올해의 첫 눈을 맞으며 첫사랑과 함께 처음의 마음을 오래 기억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이 있을까요. 쓰고보니 너무나 현실과 멀리 있는 이야기를 적은 것 같아서 조금 부끄럽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시에서 이런 것들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삶에서 몇 번 없는 순간들의 빛으로 우리는 어쩌면 평생을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니까요.

  올가을 주어진 이 작은 지면이 제게는 그러한 빛의 일부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듭니다. 늘 시에 대해 더 알고 싶었고, 어떻게 하면 시가 누군가에게 가닿을 수 있을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사실은 울음이었던 그 고민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불을 껐고,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썼습니다. 몇 번의 겨울을 지나 ‘무언가’가 비로소 시가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저와 무수한 순간들을 나눴던 소중한 분들에게. 이제 시작인만큼, 오늘을 기억하며 묵묵히 시를 쓰겠습니다. 시를 하겠습니다. 시를 하는 일을 무어라 생각하느냐-고 물으셨던 어느 선생님의 말씀에 명확하게 답할 수 있을 그날까지 끊임없이 나아가겠습니다. 끝으로,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그리고 저의 겨울이 충만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무엇으로 충만할지는 여러분들과 저의 몫입니다. 그 자리를 사랑으로 채워도 좋을 것 같은, 가을의 끝자락이네요. 

 

시 심사평

  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을 격리시키고 유폐시킨 지 벌써 이 년째다. 긴 터널에 갇혀 주변을 살피지 못하고 간신히 앞만 보고 가고 있는 느낌이다. 희망의 끈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긴 터널의 어둠 속에서 바늘구멍보다 작은 출구를 발견하고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다. 응모한 작품들은 억지스럽게 꾸민 것들보다 자연스럽게 쓰여진 것들이 대부분이었으나 깊은 고민이 언어의 몸을 얻기보다는 감정만 앞세운 것들이 많았다. 살면서 알게 모르게 관찰하고 고민했던 대상들을 차근히 풀어놓은 작품들을 발견하고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동거」는 투명하게 존재하는 한 사람이 어떤 대상으로부터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데, 개와 먼지 등이 조금 허술하게 배치되어 그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불안처럼 퍼진 곰팡이」는 곰팡이가 자신의 방을 집어삼키듯 불안이 화자의 모든 것을 잠식해가는 상황을 매우 감각적으로 형상화했다. 곰팡이가 번지고 방의 가구들을 하나둘씩 덜어내자 앙상하게 남은 침대가 보여주는 외로움과 공허감은 불안이라기보다 슬픔에 가깝다. 곰팡이를 더듬는 화자의 손끝이 그 슬픔을 조금 더 구체화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노이즈 캔슬링」은 세상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거나 듣지 않는 귀에 관한 슬픈 이야기를 흥미롭게 구성했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소음이 되고 그것을 지워버리는 일은 있을 수 있지만, 그 대상이 아빠가 되었을 경우는 예외적이다. 세상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된 이유가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냉장고 소리가 단순한 소품처럼 사용된 건 조금 아쉽다. 

  「손잡이를 돌려도 영원히 잠기지 않는 세계에서의」는 무엇보다 문장이 감각적일 뿐만 아니라 단단했다는 점에서 믿음이 갔다. 한계와 불가능의 벽 앞에서 누군가 경험했을 사랑의 사태를 서사적 장치를 동원해 형상화하고 있다. “중얼거리며 천장을 올려다” 보며 습관, 미련, 사랑을 떠올리는 장면이라든가, 열리지 않는 문을 쳐다보는 장면 등은 이미 감정을 자기만의 언어로 바꿀 수 있음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화자의 미세한 감정의 결이 매력적인 문장으로 옮겨진 “나에게서 도망치지 못한 사랑이/ 답장 대신 열리는 중이었다”가 어수선한 시절에 위로와 희망으로 읽히길 기대하면서 「손잡이를 돌려도 영원히 잠기지 않는 세계에서의」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축하한다.

여태천(시인·국어국문학과) 교수

 

 

ㅣ소설 부문 당선작ㅣ

베란다의 개구리 - 김정은(문예창작 19)

개구리를 발견한 것은 비가 쏟아지던 8월 말의 저녁이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가 담겨 있던 우유팩과 배달음식에서 나온 일회용 용기들을 두 손 가득 들고 베란다로 나섰다. 종이, 플라스틱, 캔/병류가 적힌 원색의 통들은 분리수거 배출 날짜를 이틀 남기고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고 있었다. 대충 손에 있는 것들을 쑤셔 넣고는 바닥에 너저분하게 흩어진 플라스틱 병들을 줍는데, 배수구 근처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이주 째 비가 쏟아져 물기를 머금은 배수구 근처로 바짝 붙어있는 것은 개구리였다.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숙이려다 개구리임을 확인하고 반사적으로 튀어 올랐다. 멀찍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엄마를 외친 후에야 이 개구리를 처치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엄마, 잠깐 와 줄 수 있어? 아니, 그냥 잠깐만. 아니, 아니… 그래, 그럼. 딱 이틀만이야. 
엄마는 한 달만의 방문에 기어코 이틀은 머물고 가야겠다는 핑계를 만들어냈다. 
엄마랑 떨어져 살게 된지는 이제 삼년이 다 되어간다. 우리 가족은 마치 집에 불길한 사고라도 터진 것처럼 서둘러 하나둘씩 떠나갔는데, 마지막까지 홀로 그 집을 지키던 엄마는 결국 네 식구가 살던 집의 휑한 공기를 못 이기고 일 년 전 내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젊은 애가 살기에 지나치게 지루하고 적막하다던 동네가 혼자 사는 중년의 여성에게는 꽤나 매력적인 조건을 갖춘 곳으로 다가갔음이 틀림없다. 말이 이사지, 현실은 방 하나가 딸린 공간에 최소한의 짐을 가지고 들어와 머무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엄마의 짐 절반은 여전히 일 년 전 그 집에 남아있었다. 버려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나 뱀이 허물을 벗듯이 벗어던지고 온 짐들이 엄마를 가볍게 만들었다. 가까이 살다보니 엄마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내 집을 찾아왔다.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불시에 번호를 치고 쳐들어오는 식이었다. 엄마가 찾아오는 레퍼토리는 다양했다. 엄마 못지않게 벌레는 질색하는 걸 알면서 나에게 바퀴벌레를 잡아달라고 하고, 어떤 날에는 변기를 뚫어 달라 했으며 또 어떤 날에는 선풍기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벌레가 발도 붙이지 못하도록 매일같이 좁은 집을 청소하고 여름에도 이불을 덮고 잘 만큼 더위를 타지 않는 사람임을 알지만 시답잖은 이유들에도 매번 문을 열어주었던 이유는 꽤 오랜 시간 그 집에 엄마를 홀로 내버려두었다는 일종의 죄책감 때문이었다. 엄마의 불시방문은 한 달 전 친구네 집에서 외박을 하던 날, 늘 멀쩡하던 밥통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찾아온 엄마가 바뀐 비밀번호를 알지 못해 문전박대를 당하고 난 후 끊겼다. 늦은 저녁 시간부터 자정이 될 무렵까지 내게 전화 한 통 하지 않고 그저 닫힌 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던 엄마는 그 이후로 다시는 이전처럼 내 집에 쳐들어오지 않았다. 
-네 오빠를 부르지, 갑자기 엄마는 왜 불러?
현관을 들어설 때부터 볼멘소리를 하던 엄마는 오랜만의 방문임을 증명하듯 부피가 늘어난 김치통과 각종 반찬거리들을 양팔 가득 끼고 와 잠옷 한 벌과 함께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가방 하나 없이 손에 바리바리 싸들고 온 모양새가 여행이라도 떠나는 사람처럼 들떠보였다. 당장 옷장부터 열어젖혀 뭉쳐있는 옷가지들을 풀어헤치며 그 나이 먹도록 옷장 정리조차 제대로 못하는 딸을 나무랄 기세는 어딘가 흥분되어 보이기까지 했다. 정리정돈은 기본이고 제 앞가림을 완벽히 하고, 어느 날 문득 용돈이라며 부모에게 괜찮은 금액을 턱턱 보낼 줄 알며 살갑게 전화해 재롱을 부리는 것에 능한 마법의 ‘그 나이’가 도대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엄마의 눈에 비친 나는 영원히 그 시간에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른 길로 샐까 두려워 서둘러 앞을 막은 내게서 비닐장갑과 쓰레받기를 건네받은 엄마는 투덜거리며 곧바로 베란다로 향했다. 
-아유,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지 아빠 닮아서 이런 것 좀 알아서 잡으면 좀 좋아.
엄마와 나는 닮은 구석이 많다. 벌레는 기본이고,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살아있는 생명체가 제 몸에 닿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것이 인간이든 동물이든 상관없었다. 나보다 더 그런 것들에 거부감이 큰 엄마는 호기로운 걸음과 달리 베란다 입구에서 진전이 없었다. 애초에 엄마가 개구리를 잡아줄 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그저 혼자 개구리를 마주하는 것보다는 손쓸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함께 관망하는 사람이 있는 게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엄마 말대로 이런 일에는 아빠를 닮은 오빠가 제격이겠지만, 개구리를 잡아달라고 두 시간 거리에 사는 오빠를 부르는 건 무리였다. 그건 엄마도 아는 사실이다. 반드시 둘 중 하나는 어떤 식으로든 개구리를 처치해야했다. 나는 결국 쓰레받기를 붙잡고 머뭇거리는 엄마에게서 비닐장갑을 넘겨받았다. 옆에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있으니 근본 없는 용기가 솟아올랐다.
개구리는 처음 발견한 그 모습 그대로였다. 작고 축축한 것의 물컹한 감촉을 상상하자 벌써부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개구리를 두 발짝 앞에 두고 침만 삼키고 있으니 엄마가 돌연 장갑을 다시 빼앗아갔다. 
-아니, 얘가 글쎄. 잡지도 못하면서 꼭 그렇게 지가 한다고 나서, 나서긴. 앞에서 소리를 질러대니 개구리를 잡을 수가 있나.
우리는 당연히, 예상했던 대로 개구리를 잡지 못했다. 나는 개구리가 그렇게 빨리, 그렇게 높이 튀어오를 수 있는지 몰랐다. 개구리는 순식간에 펄쩍펄쩍 뛰어 베란다의 어느 곳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하여간. 왜 거기 앞에서 오두방정을 떠는 건데? 네가 막아서 놓쳤잖아. 
엄마는 쓰레받기를 베란다 입구에 던져두고는 밖으로 나왔다.
엄마의 말은 전혀 들어맞지 않았다. 엄마에게 장갑을 넘겨준 후 나는 만일을 대비해 재빨리 방충망을 닫기 위해 베란다 밖으로 물러나 있었고 소리를 지른 것도, 앞에서 오두방정을 떤 것도 모두 엄마였다. 나는 뒤에서 한 발짝 늦게, 작은 몸짓으로 반응했을 뿐이다. 하지만 엄마는 연신 내 탓을 하기 바빴다.
엄마는 늘 그런 식이었다. 그 개구리가 어디로 갔는지, 혹은 베란다 어딘가에 숨어있을 개구리에 대한 찝찝함은 중요치 않았다. 잡지 못했는지, 그랬다면 그건 누구 때문인지, 그것이 중요했다. 엄마는 모든 일에서 실패를 발견했고 그 원인을 남에게서부터 찾아내야하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남 탓은 외할머니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엄마는 기가 막힌 가정사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나에게도 기가 막힌 가족사나 다름없었다. 엄마 위로는 외삼촌과 큰이모가 있었지만 일찍이 형편을 위해 공부 대신 일을 시작했고, 막내딸인 엄마는 외할머니의 지원과 기대 속에서 코피 흘려가며 공부해 서울 내 이름 있는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엄마는 얼마 안 있어 그곳에서 이 년 후배인 아빠를 만나게 되었고 할머니의 유일한 자랑거리에서 순식간에 집안의 근심거리가 되었다. 서로의 비슷한 환경과 성장 배경에서 피어난 애틋한 감정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 결정적인 지점이었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외할머니의 불같은 반대에 부딪혔다. 당시 엄마는 외할머니의 주선 아래 기업의 고위직 혹은 부유한 집안의 아들들과 선을 보고 다녔는데 아빠를 만나면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그럴 듯한 사업성과를 이룬 후, 삼년 가량의 질긴 노력 끝에 아빠는 끝까지 박의원 집 외동아들을 놓지 못하던 외할머니의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아빠의 눈물겨운 노력과 성공으로 이뤄낸 운명적인 러브스토리가 그럴싸해 보이는 핑계에 불과했다는 것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들은 사실이었다.
우리 집은 아빠의 사업 현황에 따라 잔잔하다가도 격한 파도처럼 출렁이기를 반복했고 가장 거센 물결이 몰아치던 때, 오빠와 나는 외갓집에 맡겨졌다. 아빠와 엄마가 경제적인 문제로 우리를 감당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같이 반복되는 부모의 싸움을 견디기엔 꽤나 어린 탓이었다. 나는 구성진 가락이 붙은 외할머니의 신세 한탄에서 엄마 뱃속에 눈치 없이 자리를 잡은 오빠만 아니었으면 그 결혼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새로 알게 된 사실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저기, 삼촌’을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4학년 추석 무렵이었다. 오빠와 내가 반년 가량을 머물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두 번 다시 엄마와 아빠가 함께 외가를 찾는 일은 없었다. 하루는 엄마를 따라 지하철과 버스를 서너 번 갈아타고 강화도까지 내려갔는데 차로는 한 시간 반이면 가는 거리가 대중교통으로는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나는 몇 번이고 운전면허를 따라고 해보았지만 엄마는 한사코 거절했다. 아빠 때문에. 엄마는 종종 무언가를 제안하면 그것이 아주 사소하고 상관없는 일일지라도 아빠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렇게 주문처럼 외다보면 이 주째 집을 비운 아빠가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올 것처럼 말이다.
세 시간을 걸려 도착한 역에는 낯선 남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아래로 시커먼 옷을 입은 피부가 까무잡잡한 남자였다. 큰 키에 다부진 몸집과 군데군데 물이 빠진 염색모 때문에 인상이 더 험악해보였는데 엄마를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무척이나 위협적이었다. 
-숨지 말고 인사해. 삼촌이야. 외삼촌.
나에게 외삼촌은 이미 한 명 있는데, 엄마는 처음 보는 남자를 그렇게 부르며 뒤로 몸을 숨긴 나를 앞으로 잡아끌었다. 남자는 엄마의 얼굴을 한 번 보더니 경계와 두려움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리고 나를 향해 미간을 한 번 찡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우리 짐을 자기 차에 옮겨 실었다. 
-엄마, 외삼촌 아니잖아. 진짜 아는 사람이야? 우리 따라가도 되는 거야?
엄마 손에 질질 끌려가면서도 경계심을 감추지 못하는 어린 목소리에 낯선 남자는 다시 이쪽을 한 번 쳐다보다가 다시 엄마를 쳐다보고, 시선을 거두었다. 
열한 살이 되어서야 알게 된 삼촌의 정체는 엄마의 큰오빠였다. 또 다른 큰오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밑으로 큰외삼촌, 큰이모, 엄마가 있었고 그 정체불명의 삼촌은 외할아버지가 다른 여자 사이에서 낳아 데려온 아이였다. 외할머니가 홀로 삼남매를 키우는 동안 밖으로 나돌던 외할아버지는 어느 날 한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집에 왔다고 한다. 또래에 비해 키가 크고 말이 없으며 머리를 길게 기른 아이였다. 아이의 손을 쥐어주고 떠난 외할아버지에게 아무것도 묻지 못한 채 외할머니는 홀로 사남매를 키웠다. 오빠와 내가 외가에 머물렀던 동안 작정하고 피한 것처럼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는 사실은 나중 일이었다.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사실보다도 엄마나 외할머니를 비롯한 외가 식구들이 삼촌을 대하는 태도가 더 큰 충격이었다. 그들은 마치 진짜 그 남자가 자신들의 가족이라는 것처럼, 아니, 오래전부터 그렇게 지내온 것처럼 무심하고 예민하게 서로를 대했다. 그들 사이에는 아주 낡고 고여서 이제는 아무도 의식하지 않는 공기의 층이 존재했다. 
-저기, 삼촌.
집으로 돌아가는 날, 삼촌에게 인사하라는 엄마에게 등 떠밀려 부른 이름은 저기, 삼촌 이었다. 이미 내게는 오랫동안 큰외삼촌이라 불렀던 외삼촌이 있었고, 그 남자는 삼촌이라 부르기엔 낯설면서도 거부감이 드는 사람이었다. 저기, 삼촌은 우물거리며 고개를 까닥이는 나를 잠시 보더니 내 손에 처음 보는 누런 종이를 쥐어주었다. 종이는 꾸겨지고 손이 닿은 흔적이 가득해서 원래의 색보다 더 바래보였다. 내가 처음으로 받아본 오만원권이었다.  
한여름에도 이불이 필요한 엄마 때문에 옷장에서 냄새가 덜 빠진 이불 한 채를 꺼냈다. 엄마는 이불 위에, 나는 차가운 바닥에 누우니 집이 가득 찼다. 혼자 누울 때는 양옆에 온갖 잡생각과 불안을 욱여넣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공간이었으나 둘이 눕자 그 자리에 익숙한 불편함과 간지러움이 끼어들었다. 은은하게 퍼져오는 퀴퀴한 냄새를 맡으며 창문 밖으로 세차게 내리치는 빗소리를 들었다.
-아무리 옛날 빌라라고 해도 얼마나 집이 더러워야 개구리가 들어와 사냐.
-비가 와서 그런가.
-아이고, 비 탓 하기는. 하여간 어쩜 이렇게 지 아빠랑 똑같은지 모르겠어.
-이번 장마는 어째 더 긴 것 같다. 그치, 엄마.
평소라면 공격적으로 맞받아쳤을 말이 없자, 엄마는 흥미를 잃었다는 듯 몸을 뒤척였다.
귓가에 꽂히는 거센 빗소리가 마음을 평온하게 가라앉혔다. 엄마와 아빠의 고함소리와 외할머니의 신세타령, 그리고 그보다 더한 엄마의 입버릇. 이십사 년간 자극적인 소리들에 익숙해진 나는 창문에 내다꽂히는 빗소리를 들어야지만 비로소 비가 주는 서정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오빠는 잘 사나. 오빠 만난 지도 오래됐는데. 엄마한테 연락은 해?
-오빠야 연락은 꼬박꼬박 하지. 네 오빠가 너 같았으면 난 진작에 집 나갔다.
-진작 좀 나오지 그랬어.
-네 오빠는 날 닮았잖아. 싹싹하고 속 깊고.
-난 안 그런가봐?
-그럼. 너나 네 아빠는 원체 표현하는 법이 없었으니. 어휴, 다 네 아빠 때문이야.
아빠는 우리 네 가족이 살던 집을 가장 먼저 떠난 사람이었다. 이전 사업을 접고 겨우겨우 시작한 사업이 다시 한 번 망한 후 엄마와 눈만 마주치면 싸우면서도 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은 꼭 집에 들렀다. 누가 시킨 것처럼 어정쩡한 얼굴로 집에 들어와서는 오빠와 내 얼굴을 한 번씩 보고 밥을 함께 먹고 학교생활을 묻고는 손에 오만원짜리 지폐 몇 장을 쥐어주고 가는 식이었다. 한 달이 반년이 되고 반년이 일 년이 되고서야 우리는 아빠가 더 이상 이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했다. 그 다음으로 오빠가, 그리고 몇 년 후 내가 집을 떠나고 엄마가 꽤 긴 시간을 버티다 떠나는 동안 우리 집은 천천히, 그러나 한 번에 뭉텅이씩 온기를 토해냈다.
-아빠는. 연락 해?
아빠는 집을 떠나간 후에도 엄마와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다. 서로의 생사여부를 물을 만큼 멀어진 사이가 되었다기보다는, 우리의 등록금이나 생활비와 같은 보다 심오한 문제들 때문이었다.  
-새삼. 너는 가만 보면 뜬금없는 말을 하는 재주가 있더라. 지 아빠마냥.
엄마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엄마, 다음 주말에 강화도나 갔다 올까? 할머니도 오랜만에 뵐 겸.
-나는 이제 차 없으면 못 간다. 갈아타는 것도 이젠 일이야, 일.
-삼촌보고 데리러 오라고 하면 되지.
-누구 삼촌? 여기까지 데리러 오라고 하면 퍽이나 오겠다, 네 삼촌이.
나는 기억 속에서 낯선 삼촌을 끄집어냈다. 미리 연락하지 않아도 늘 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 말 없이 엄마의 짐을 들어주던 사람. 아빠보다 먼저, 나에게 오만원권을 쥐어줬던 사람.
-저기, 삼촌한테 연락해볼까?
-너 큰외삼촌 말하는 거야?
-아니. 그 있잖아. 저기, 삼촌.
언젠가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왜 나에게 저기, 삼촌에 대해 숨겼느냐고. 
-엄마는 저기, 삼촌 별로야?
엄마는 숨긴 것이 아니라, 내가 물어보지 않아서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별로이고 말고 할 게 뭐 있어, 가족 간에.
-그냥, 그럴 수도 있지. 나였으면, 외할아버지가 미웠을 것 같은데.
저기, 삼촌을 처음 봤던 날, 자신을 낯설어 하는 나를 보던 삼촌의 얼굴을 기억한다. 서운하다기엔 담담했고 당황했다고 하기엔 고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엄마가 자신을 외삼촌이라 설명하고 나를 인사시킬 때까지도 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때는 마냥 험상궂은 얼굴로만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르고 기억들이 덧입혀지면서 이제는 비 맞은 개처럼 처연한 표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였으면, 네 외할머니를 더 미워했을 걸.
엄마는 몇 번의 뒤척임으로 대답을 대신하는듯하더니 돌연 툭, 하고 말을 던졌다.
고요해진 방 안으로 다시 비의 존재가 느껴졌다. 창밖으로는 비가 쉬지 않고 내리박혔다가 떨어져 나갔다. 
부산스러운 소리에 눈을 뜨니 엄마가 제법 비장한 차림으로 방 한가운데 서있었다. 밤새 내리던 비가 잠시 멈춘 아침의 한기는 섬뜩했고 그 중심에 우뚝 솟은 엄마는 더 대단해보였다. 덩달아 비장해진 나는 만에 하나 개구리가 맨 살에 스치는 불상사가 없도록 긴 옷과 발목양말로 무장을 하고 베란다를 뒤졌다. 과감히 이곳저곳에 손을 들이밀었지만 그런 우리를 비웃듯 개구리는 보이지 않았다. 절대로 개구리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 모를 예감이 우리를 더 의욕 넘치게 했고 그 속에서 동지애랄까, 함께 목표를 수행하고 있다는 애틋함까지 솟아났다.
-이 조그만 베란다에서 못 찾을 수가 없는데.
-엄마, 우리한테나 조그맣지. 개구리한테는 숨을 곳 천지야.
전처럼 개구리가 나타났다는 충격이나 개구리와 동거를 한다는 찝찝함은 덜했다. 하루 만에 개구리는 그저 지나간 하나의 사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저녁에나 집으로 돌아갈 엄마에게도 그런 듯 했다.
-얘, 너 쟤랑 그냥 같이 살아.
-그럴까. 비 그치면 얼마 못 살 거야. 어딘가 죽어있겠지.
-죽은 개구리가 안 나오면 어디 숨어서 계속 살고 있는 거야. 시체가 나와야 죽은 거지.
-그거 참 불쌍하네. 죽어야 안다니.
나는 성의 없이 덧붙였다. 아무런 성과 없이 개구리 수색을 마치고, 첫 끼를 해결하기 위해 상을 차렸다. 간만에 가득 채워진 냉장고가 보였다. 반찬들은 한참은 버틸 수 있을 정도로 통씩 채워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세상에. 이걸 다 언제 먹어? 뭘 이리 많이 가져왔어.
-또 언제 문전박대 당할 줄 알고.
-아이, 비밀번호 바꾸고 말하는 걸 까먹었어. 그러니까 왜 연락도 없이 와.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 딸집이 있는데, 엄마가 매번 연락하고 와야 되니?
-문이 잠겼으면 연락을 하지, 뭣 하러 거기 몇 시간이고 서있었어.
-안에 애인이라도 와있으면 어떡해. 문 열어줄 때까지 기다려야지, 뭐.
엄마는 짓궂게 웃으며 미간을 찡그렸다. 그 모습에 불현듯 누군가가 떠올랐다. 나는 엄마를 따라 미간을 찡그려 보았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나 더 하지 못하고 삼켰을 때, 엄마는 미간을 찡긋거렸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키기 버거운 듯 살짝 찌푸린 미간이 저기, 삼촌과 닮아보였다.
오빠에게 연락을 받은 것은 엄마가 늦은 아침을 먹고 낮잠에 빠진 오후 세 시경이었다. 
비가 그친 하늘의 살벌한 햇빛이 창을 통해 드리웠다. 언제 다시 비가 올지 모르는 틈을 타 쏟아지는 뜨거운 햇볕에 엄마는 지난 밤 깔고 잔 이부자리 위에서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들었다.
-엄마랑 연락해봤어?
엄마가 이 동네로 이사 온 후 불시에 내 집을 침범한다는 것은 오빠도 아는 일이었다. 그런 오빠가 내게 엄마와 연락을 했느냐고 묻는다는 것은 보나마나 엄마가 지난 번 딸의 집 앞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일을 두고 천륜을 저버린 일인마냥 오빠에게 하소연했음이 뻔했다. 
-알아. 비밀번호 바꾼 거 까먹고 말 안 했어. 근데 엄마가 왜 연락도 없이 거기 그렇게 서있었는지는 몰라. 그건, 내 잘못 아냐. 엄마 탓이지.
-무슨 말이야, 그건 또.
오빠의 목소리는 어딘가 기가 차 보였고 허탈해보였다. 오빠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아빠와 연락을 해보았느냐고 물었다. 아빠 얘기가 나오자 나는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나와 복도에 섰다. 엄마와 아빠는 연락을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지만, 그 일들의 중심에 있는 오빠와 나는 아니었다. 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우리는 아빠를 딱 ‘아빠’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거리만큼 밀어냈다. 오빠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 숨이 너무나 허탈하고 길어 나까지 숨을 멈추고 말을 기다렸다. 전화기를 통해 넘어온 한숨은 순식간에 내 기억을 들쑤셨다.
엄마에게는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몫까지 도맡아야 했던 어머니, 그리고 자신을 위해 희생한 오빠, 언니와 미워하기엔 이미 웬만한 것들을 알 만큼 성장한 후 만난 또 다른 오빠가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엄마에게는 밖으로 나도는 남편과 그런 남편의 몫까지 도맡아야 키울 수 있는 자식들이 있었다. 엄마는 내가 딸이어서 너무 무서웠고, 마지막 아이라 너무 다행이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만약 내게 동생이 있었다면 엄마는 정말 미쳐버렸을 거라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엄마를 따라가고 있더라고. 말도 안 되는 우리 집을 말이야.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냥 그랬어. 네가 딸이면 그 담에 또 딸이 나오고, 그럼 어디선가 네 아빠가 애를 하나 데려올 것 같은 거야.
-우리 집. 팔았어.
기억 저편에서 언젠가 들었던, 술기운이 묻은 엄마의 농담이 전화 너머 오빠의 목소리와 겹쳐 들렸다. 
-우리 살던 집. 그 집, 그 인간이 팔았다고.
엄마가 바라던 대로 우리에게는 늘 ‘아빠’였던 사람이 ‘그 인간’이 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오빠가 힘주어 말하는 ‘그 인간’이 누굴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엄마한테 전하기는 자기도 미안했는지, 나한테 연락해서는 그러더라. 돈 받아가라고.
오빠는 연신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같이 갈 거냐는 말에 대답 없이 고개만 내저었다. 나처럼 이 상황이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정적을 깨기 위해 생각 없이 튀어나온 말인 것을 알았다. 전화 너머로는 아빠였던 인간과, 엄마의 이야기가 아득하게 이어졌다.
걸었다. 복도 끝과 끝을 걷다가 텅 빈 주차 공간 선을 따라 걷고 엄마가 내게 오기 위해 걸어온 길을 거슬러 걸어갔다. 처음 이사 왔을 때 말고는 가 본 적이 없어서 몇 층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벌레를 싫어하니 일층은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대충 이, 삼층 높이를 훑었다. 그러자 그 쪽만 순식간에 다른 층에 비해 낡고 위태로워보였다. 엄마의 집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버리고 왔던 짐들로 다시 가득 차있는지, 아니면 아직도 새 것처럼 휑한지 궁금했다. 엄마의 문을 열어 보기엔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
동네를 한 바퀴 훑고 오니 엄마는 비닐장갑을 낀 채 바닥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었다.
-개구리가 안 보이네. 그래도 잡아주고 가려고 했는데.
엄마와 내가 서로 보이지 않으면 어디를 갔다 왔냐고 묻는 사이였는지, 자리에 선 채로 잠시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오빠와 단둘이 하루를 해결하는 게 익숙했다. 오빠와 나라면 모를까, 당연히 엄마와 나 사이에는 필요 없는 대화였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가 어디를 갔다 왔는지 물어봐주기를 바랐고 그 틈을 타 엄마의 집 비밀번호를 묻고 싶었다. 불시에 엄마의 공간에 쳐들어가고 싶었다. 
-엄마, 하루만 더 있다 가.
-너 얼른 가라고 돌려 말하는 거지?
-아니, 그냥 나 개구리랑 단둘이 있는 거 무서워. 
-새삼. 지금은 안 보이잖아.
-시체가 나와야 죽은 거라며. 아직 어디서 살아있는 거잖아. 하루만 더 있다 가.
엄마는 잔뜩 울상이 되어 말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대답이 없던 엄마는 기어코 울음을 터뜨린 나를 향해 미간을 찡긋거렸다.
아빠는 내가 모르는 곳으로 완전히 떠났다. 이전부터 떠난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정말 아빠, 하는 이름으로도 알 수 없는 범위 밖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빠가 직전까지 있었던 곳은 우리 네 가족이 살았던 바로 그 집이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집을 지키던 엄마마저 떠난 후, 아빠는 슬금슬금 그 집에 다시 흔적을 남겼다. 첫 스타트를 끊고 나간 아빠가 먼 길을 돌아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모두가 떠나버린 그 곳에. 엄마는 순순히 아빠에게 그 공간을 내주었는데, 나와 오빠는 그것이 그렇게 못마땅할 수가 없었다. 전화 너머로 오빠는 화를 참느라 한 문장, 한 문장 띄어 말했다. 우리에게 아빠라는 서류상의 이름을 남겨주는 조건이었다.
돈은 내가 받아서 엄마한테 전해달래. 미안하대… 엄마한테.
엄마가 내 집에만 불시에 들이닥친 것은 아니었다. 네 가족이 살던 집, 그곳에도 종종 들렀다. 집을 팔고 나오지 않은 것도, 어쩌면 모두가 인정해야했던 사실을 끝끝내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마침표 없이 흐지부지 끝난 문장이 언젠가 다시 이어져야 할 것처럼.  엄마는 모두가 떠나버린 그 공간을 청소하고 안방과 오빠 방, 나의 방이었던 공간을 괜히 한 번 훑어보고 와야지만 그 집을 나설 수 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칫솔을 발견하고 잠옷을 발견하고, 또 어느 날 컵에 나란히 꽂힌 또 하나의 칫솔을 발견한 것이다. 
-비밀번호가 뭐였더라. 우리 집… 아니, 우리 살던 집.
어느 날은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가 그 집에 들른다는 것은 알았지만 나로서는 썩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추억이라고 하기엔 찝찝한 공간이었다. 엄마는 마치 긴 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마을을 몇 번이고 찾아가는 마을 주민 같았다. 두 개의 칫솔을 발견하고 그 집에 조금씩 들어차는 온기를 느끼고도 엄마는 다시 한 번 그 곳을 찾아갔다. 엄마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마침표는 없으나 이미 완벽히 끝이 난 문장에 반드시 온점을 찍어야겠다는, 그런 억지스런 마음이었을까. 엄마는 비밀번호가 바뀐 익숙한 현관에서 낯이 익은 잠옷을 입은 낯선 여자를 마주했다. 
엄마가 내 집에 들이닥치지 않았던 한 달여 동안 나는 불안하면서도 과분한 자유를 만끽했다. 내 것이 맞는데도 곧 깨질 것 같고, 깨져야만 마음이 편해질 것 같은 자유. 아빠는 어땠을지 궁금했다. 엄마가 버리고 간 물건과 한때는 우리로 가득 차 있었던 공간에서,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나와 비슷한 결의 감정을 느꼈을까. 
오빠의 전화를 받고, 걷고 걷다 엄마의 집을 바라보고 온 후 다시 마주한 내 집 문 앞에서 나는 선뜻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 문에서 문득 한 달 전의 엄마가 그려졌기 때문이다. 익숙한 현관문과 낯선 경고음. 엄마는 나에게 연락 한 통 하지 않은 채 닫힌 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것은 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제야 엄마가 그 날 내 집에서 마주했던 기억의 정체가 두려웠다.
비가 그치고,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바짝 말라 죽을 것만 같은 뜨거운 날들이 이어졌다. 엄마는 장마가 끝날 때까지 내 집에 오지 않았고 개구리는 베란다 어딘가에 살아있었다. 아직 시체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마가 미처 가시지 않은 은밀한 공간을 찾아내 자리를 잡고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베란다를 나와 집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유유히 밖으로, 나는 영영 모를 곳으로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굳이 개구리의 흔적을 찾지 않았다. 말라비틀어진 시체든 펄쩍 뛰어오르는 모습이든 무엇이 되었든 간에 개구리의 존재 자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시체를 확인해야만 비로소 그 행방을 알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고, 음산하고 기분 나쁜 씁쓸함이 밀려왔다. 그 때 보았던 몸통을 생각하면 다시 한 번 소름이 돋았지만 나는 그냥 그대로, 축축하고 불쾌한 개구리를 베란다 한 구석에 내버려 둔 채 살기로 했다. 그렇게 서서히 그 존재를 잊어갈 때쯤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반찬이 거의 다 동이 났을 때였다.
선풍기가 말을 안 듣네.
그제야 바뀐 비밀번호를 다시 알려주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선뜻 새 비밀번호를 적어 보낼 용기는 나지 않았다. 나는 비밀번호를 알게 된 엄마가 언제든 집에 찾아올 수 있다는 불편함과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마음 한구석에 짐처럼 쌓아두어야하는 죄책감 사이를 떠돌았다. 마음이 기운 채 의미 없는 고민을 되풀이하는 나를 깨운 것은 뒤따라 온 문자 알림음이었다. 별다른 설명 없이 무심하게 자리한 번호 네 자리가 낯설었다. 엄마의 집 비밀번호였다.

 

 

소설 당선 소감

  작년 여름, 집 베란다에서 작은 개구리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때 느낀 충격과 소름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가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달려와주어서 기쁩니다. 앞으로는 그 개구리를 떠올릴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함께 들 것 같습니다.

  제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지, 어떤 글을 쓰게 될지 많이 혼란스럽고 어렵습니다. 부끄럽게도 그런 두려움을 핑계 삼아 잠시 글 쓰는 일을 멀리 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상은 그런 저에게 잘하고 있다고, 그래도 글을 쓰는 일이 재미있지 않냐고, 그럼 쓰라고, 저를 토닥여주는 위로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제가 주저앉을 때마다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어주시는 부모님과 소설을 읽어주고 도움을 주었던 분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 위로와 응원들 덕분에 나아갈 용기가 생깁니다.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을 두려워하기보단, 지금 살아가고 고민하겠습니다. 피하지 않고 계속 쓰겠습니다. 

 

소설 심사평

  소설을 투고해 준 응모자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응모 편수는 많지 않았으나 대체로 소설의 기본기를 갖춘 작품들이었다. 재치 있는 상상력이나 예리한 시대적 안목이 더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각자의 주제를 견인해내는 태도가 진지했다. 특별히 눈여겨 본 작품은 <시선> <Hunger> <베란다의 개구리>였다.

  <시선>은 우리 사회의 도처에 널려 있는 폭력적 시선들을 들추어내고 그 경박성을 폭로한다. 몰래카메라 사건을 중심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전도되고 피해자의 암묵이 또 다른 피해자를 낳는 상황. 여전히 시의적인 문제이긴 하나 새롭지 않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은 처음부터 결말이 예상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식적인 결말을 피하기 위한 문학적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상황의 본질이 혜원이라는 인물의 대사로 정리되어서도 안 된다. 주제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면 소설의 긴장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Hunger>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아니 곤경에 처한 채 가까스로 살아내는 청년들의 아픔을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의 허기는 생물학적 반응이 아니라 병리적 증상이다. 성추행, 청년 실업, 빈곤 등이 야기한 전방위의 압박에 주인공이 병들어 있다.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소설의 본령이 이야기성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증상 이전에 증상을 만든 사건이 있어야 했고, 그 사건은 내적 논리를 갖추되 증상의 강도만큼 충격적인 것이어야 했다. 서사가 약하면 증상에 대한 호소도 엄살로 보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베란다의 개구리>는 가족의 해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진부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관계의 파국을 관계의 조정으로 덤덤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새롭다. 작가는 복잡한 가족사를 몇 개의 은유적 소재로 요약하면서 다가올 미래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개구리, 도어락 비밀번호와 같은 소재를 의미 있게 다루는 솜씨가 탁월하다. 예컨대 거절, 거부, 배신을 의미하곤 했던 도어락 비밀번호가 허락, 수용, 구원의 의미로 변주되고 있어 흥미로웠다. 밀도 있는 장면 묘사, 함축적인 대사 구사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응모된 작품 모두 개성이 뚜렷하고 많은 시간을 들여 다듬은 흔적이 역력했으나 상대적으로 장점이 많았던 <베란다의 개구리>를 당선작으로 정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아쉽게 탈락한 응모자들에게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이주미(문학박사·교양교직학부) 교수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