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포기할래? 아니면 술과 담배를 포기할래?” 아마 이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당연히 술과 담배를 포기하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는 우리와 다른 선택을 한다. 그녀는 하루 생활비에서 6,000원의 적자가 나자, 위스키와 담뱃값 16,000원을 줄이기보다 방을 빼 10,000원의 월세를 절약하기로 결정한 후 집을 나온다. 미소는 그런 사람이다. 집이 없어 떠돌이 생활을 할지언정 좋아하는 위스키와 담배를 포기할 수는 없는 사람, 현실과 타협해 그럭저럭 살아가기보다 자신의 생각과 취향대로 사는 게 더 중요한 사람 말이다.

  이런 걸 상극이라고 하나?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라면 생각과 취향 따위는 언제든 기꺼이 버릴 의향이 있는 나에게, 미소의 행동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내가 미소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당장 위스키와 담뱃값부터 줄여 생활비를 절약할 것 같은데, 아니 사실 그런 급박한 상황이 닥치기 한참 전부터 진작 술과 담배를 끊었을 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가 짠하면서도 한심하고, 미련했다.
그런데 내가 미소를 한심하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미소가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를 지키는 대신 집을 포기한 것처럼, 나도 무언가를 얻은 대가로 또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미소가 포기한 것과 내가 포기한 것 사이에서 감히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 오히려 매일같이 행복한 삶을 꿈꾸면서도 정작 가슴이 뛰는 일들을 눈앞에서 포기하고 현실에 수긍하며 살아가는 나보다, 자신의 행복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미소가 훨씬 더 인간답고 멋있게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하나는 확실히 알았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걸 만큼 중요한 가치가 나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반대로, 나에게는 인생을 걸 만큼 중요한 가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는 정답이 없으며 이 세상 누구나 제 생각과 취향대로 각자의 인생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나와 다른 사람을 애써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나와 다른 가치관과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게 틀린 것은 아니니, 그들을 지적할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박채연 학생 논설위원(프랑스어 20)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