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봄알람’ 이두루 대표

  지금은 안티 페미니즘의 시대다.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반(反)여성주의로 인해 평등을 주장했던 여성들의 말문이 막혀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축 속에서도 여성 인권이 한 발짝 나아가길 바라며 여성 의제들을 발 빠르게 내놓는 이들이 있다. 바로, 페미니즘 출판사 ‘봄알람’이다. 봄알람의 이두루 대표를 만나, 책을 통해 여성의 삶을 바꾸고 싶다는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11년 차 출판 편집자이자, 7년 차 소상공인 이두루입니다. 기성 출판사에서 5년 정도 재직하다가 지금은 페미니즘 출판사 ‘봄알람’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봄알람을 설립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5년도 메갈리아의 ‘미러링’을 통해 사회적으로 여성 혐오 문제가 가시화되면서 저를 포함한 여성들이 한 차례 각성하기 시작했어요. 이후 페미니즘 관련 이슈를 번역, 발행하는 커뮤니티에 번역 조력자로 발을 담갔고요. 그리고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으로 다시 크게 여성 혐오가 수면 위로 올라온 무렵, 책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이하 <입트페>)의 저자 이민경 씨가 책을 쓰고 싶다고 해당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어요. 그때 출판 편집자로서 조력 의사를 밝혔고, 이를 계기로 지금의 팀원들을 만나 페미니즘 출판사 봄알람으로서 함께해오고 있습니다. 

일반 출판사와 달리 다양한 SNS를 통해 독자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다른 출판사와 달리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기보다 홍보 수단이 제한된 상황에서 봄알람 자체 채널을 운영하는 것인데요. 저희가 특별히 SNS 위주 홍보를 많이 한다고 느끼셨다면 아마 ‘페미니즘’이 온라인 상에서 가장 활발했던 시기에 봄알람이 출범했기 때문도 있을 거예요.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을 기점으로 많은 여성이 함께 페미니스트로 각성해 사회에 강력한 분노를 표출했고, 거기서 출발해 페미니즘 지식을 흡수하고 공부하는 분위기를 함께 만들어온 출판사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수년간 변화해온 여성들의 의식만큼 사회가 변했냐고 하면 그렇지 않죠. “여자애가 왜 그래?” 같은 말이나 임금, 고용, 승진 차별, 일상의 성희롱은 여전하고 n번방 같은 사건까지 오히려 점점 끔찍해지는 것도 같아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아무래도 저희 핵심 독자층과는 계속 SNS에서 만나게 되네요.

봄알람이 출간한 안희정 성폭력 사건 피해자 김지은 님의 책 『김지은입니다』가 세상에 나오고, 권력 앞에서 힘쓸 수 없던 여성들이 함께 ‘보통의 김지은’이 되어 연대를 표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김지은 님의 용기가 한국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책은 여러 귀중한 역할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힘패시(him+sympathy)의 가시화’를 꼽고 싶어요. 힘패시란 권력자인 가해자 남성과 피해자 여성이 있을 때 권력자 남성에게 이입하고 연민하는 상황을 뜻하는 말이에요. ‘저 위대한 남자가 이런 일로 미끄러지면 어떡하나’라고 생각하면서 거기에 흠집을 낸 피해자를 오히려 비판하는 것도 포함해서요. 책 『김지은입니다』는 힘패시의 존재와 그 작동 방식을 우리 사회에 명확히 인식시켰어요. 박원순 시장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끔찍한 2차 가해는 존재했지만, 적어도 많은 사람이 그 사안의 본질을 즉시 이해하고 연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책『김지은입니다』가 없는 사회와는 완전히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대표님께서 기대하시는 미래의 페미니즘, 여성은 어떤 모습인가요
  어떻게 살든 간에, 여성 자신의 경험으로 삶의 언어를 기준 삼게 됐으면 해요. 이 세상은 제1의 성이 남성이라서 물리적으로도 관념적으로도 남성이 기준이에요. 차별이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면서도 어딘가에 남자가 있기만 하면, 그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해 설명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끼죠. 또, 이 과정에서 남성의 입장을 상상해 자신의 언어를 가감하는 훈련이 지나치게 돼 있잖아요. 
  제가 회사 다닐 땐 노동조합에서 근로자들끼리 논의하는 시간을 꾸준히 확보해서 사용자 측에 일방적으로 이입하는 작용을 ‘디톡싱’했던 경험이 있어요. 이와 마찬가지로 여성들끼리 계속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해 말하고 읽음으로써 남성 기득권에 포섭되지 않는 기준들을 확보해나가면 좋겠어요.

페미니즘 출판사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
  긴 목표는 두지 않는 편이에요. 다만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같이 여성 기본권에 관해 말하면서 이를 위해 필요한 지식을 보급하고, 동시대 페미니즘을 ‘아카이빙’하고, 여성의 언어로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는 책들을 계속 내려고 합니다.

기억에 남는 독자들의 반응 혹은 댓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입트페> 때는 격한 반응들이 많았어요. 코트 주머니에 넣어서 갖고 다니면서 송년회 자리에서 꺼내서 읽었다는 얘기도 재미있었고요. (웃음) 주머니에 들어가는 크기로 책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하셨던 분도 기억에 남네요.
  그리고 책 『유럽 낙태 여행』의 반응 중에선 “이런 책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가 있어요. 이 책은 저희가 유럽에 가서 직접 현지 활동가 페미니스트들에게 각 나라에 존재하는 낙태권의 현주소와 역사를 듣고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어요. 규모상으로도 많이 모험이었고, 편집자로서도, 개인적으로도 이게 의도대로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이 많이 있었는데요. 이 독자의 반응이 낙태 여행기를 통해 여성의 재생산권을 이야기한다는 개념을 잘 이해해줬던 것 같아서 기억에 남아요.

동덕여대 학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봄알람의 책이 있다면요
  먼저, 1학년 학생들은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와 『우리에겐 계보가 있다』를, 2학년 학생들은 『보스턴 결혼』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보스턴 결혼』은 일종의 ‘레즈비어니즘’ 학술서라고 할 수 있지만, 이성애 중심적인 문화, 가부장제를 제외하고서 여성이 관계의 기준이 될 때 사랑을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죠. 다양하고 깊은 인간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2학년분들이 꼭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또, 3학년 학생들에게는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를 권유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여성이 생애 전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잃는지를, 꼭 직장 연봉에서만이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거든요. 따라서 취업을 고려하는 3학년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책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곱게 지지 말기로 해』는 4학년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응원의 의미예요. 제목만 봐도 뭔가 감이 오시죠. (웃음) 아마 이 책은 이제 막 학교를 나와 사회에 입성하는 여성들에게 여성 혐오를 그대로 주워섬기는 대신 반격의 자세로 살아갈 용기를 줄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동덕여대 학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학생분들께는 오히려 제가 묻고 싶어요. “페미니즘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요. 작년 초반부터 백래시(backlash)* 현상이 굉장히 심해졌어요. 대선 공약, 집게 손 모양만 봐도 사회가 숨 쉬듯 여성 혐오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이로 인해 여성들은 적지 않은 무력감과 피로를 느끼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입 다물지 않고 계속 소리쳐야만 기득권적 사고방식에 먹히지 않고 다음 논의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 첫 책 <입트페>가 알려주는, 여성 혐오적인 발언에 대응하는 방법만 익힌 채로 머물러 있을 순 없잖아요. 저는 동덕여대 학생들이 이 사회에 적응하며 그럭저럭 살아가기보다는, 어렵겠지만 여성의 관점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수 있길 바라요.   

*백래시 : 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을 이르는 말이다. 

    송영은 기자 syet05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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