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갈등의 홍수에서 허우적대는 우리나라, 그리고 선거철만 되면 이를 이용해 철학 없는 공약을 남발하며 특정 그룹의 표심을 얻으려 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야말로 적막강산(寂寞江山)이다.

  지난 1월, 윤석열 20대 대통령 후보가 페이스북에 아무런 부연 설명 없이 남긴 간결한 일곱 글자는 젠더 이슈를 이번 대선의 화두로 만들기 충분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이 공약은 이대남(20대 남성)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윤 후보는 국민의힘 지도자와의 갈등, 부인 김건희 리스크 등으로 하락한 지지율 회복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청년층의 지지율이 추락했던 당시 상황을 모면하고자 윤 후보가 급히 내세운 공약이 아니냐며, 이대남과 이대녀(20대 여성)를 ‘갈라치기’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는 필자에게 분열과 증오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우리 정치의 모습을 다시 한번 실감케 했다. 공약의 찬반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윤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며 이에 대한 발전적 논의와 건설적인 대안을 전혀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젠더 갈등이 어디서부터 촉발됐는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 없이 만들어진 그저 특정 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한 단발성 공약에 불과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정부 부처의 존폐가 아니라 서로가 겪어왔던 삶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다. 

  더욱 씁쓸한 것은, 우리나라에 깊이 자리 잡은 성별로 말미암은 갈등과 혐오가 어디서부터, 왜 시작됐는지 깊이 고민하는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거철 무렵, 후보들이 특정 그룹의 표심을 얻기 위해 철학 없는 공약을 난발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이지 고역이다. 

  벼랑 끝에서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여성과 남성. 여성과 남성은 공생하는 관계이지 서로 절벽에서 밀어내야 하는 원수가 아니다. 페미니즘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생각은, 이 세상의 남성은 모두 범죄자라는 것과 같은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남녀 갈등만 더 심화할 뿐이다. 앞으로의 대선에서는, 정치인들이 특정 계층의 표를 얻기 위해 젠더 갈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내세운 철학 없는 공약은 그만 보고 싶다. 더 성숙해야 할 우리의 정치를 위해서라도. MZ세대 다음의 세대들을 위해서라도.

정유리 학생 논설위원(영어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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