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육 햄버거 패티를 출시한 식품 브랜드 비욘드 미트(좌)와 퍼 프리를 선언한 패션 브랜드 구찌(우)다
△대체육 햄버거 패티를 출시한 식품 브랜드 비욘드 미트(좌)와 퍼 프리를 선언한 패션 브랜드 구찌(우)다

 

  가짜를 비난하면서 가짜에 휘둘리는 건 우리 사회의 오랜 정서였다. 패션계에서 명품으로 둔갑한 짝퉁을 소비하면 조롱의 대상으로 등극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가짜 뉴스는 언론계의 고질병으로 남아있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여 만들어진 가짜 배고픔에 속아 폭식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렇듯 어두운 면만을 지닌 듯한 가짜. 그런데, 이러한 가짜가 오히려 우리의 삶을 밝히고 있다면 어떨까. 진짜보다 더 멋진 가짜, ‘클래시 페이크(classy fake)’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가짜라서 당당하다
  고급이라는 뜻의 클래시(classy)와 가짜라는 뜻의 페이크(fake)를 합성한 클래시 페이크는 말 그대로 ‘고급스러운 가짜’를 의미한다. 진짜를 압도할 만큼 멋진 가짜 상품이나, 그런 상품을 소비하는 추세를 말하는 클래시 페이크는 최근 몇 년 동안 소비 트렌드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가장 먼저 클래시 페이크를 주목한 산업은 패션계였다. 동물로부터 착취한 털이나 가죽을 사용하던 기업들은 비건 패션으로 눈을 돌렸다. 지난 2017년 10월, 패션 브랜드 구찌가 동물의 털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 9월에는 세계 4대 패션쇼 중 하나인 런던 패션 위크에서 모피 사용을 중단했다. 이러한 트렌드에 발맞춰 버버리, 샤넬, 코치 등 수많은 패션 기업이 페이크 퍼와 식물성 가죽을 만들며 진짜보다 나은 가짜의 가치를 증명했다.

  그다음으로 변화한 건 식품계였다. 일찌감치 대체식품 시장이 전개된 해외에서는 식물성 단백질로 인공 계란을 만든 ‘저스트 에그’, 콩, 버섯 등을 이용해 대체육류를 생산한 ‘비욘드 미트’ 등 가짜를 위한 스타트업 기업이 출범했다. 국내 역시 식품 관련 대기업들이 저마다의 대체식품을 만들어냈다. 롯데푸드는 통밀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고기의 근섬유를 재현한 식물성 햄을 출시했고, 신세계푸드는 자체 대체육 브랜드 ‘베러미트’를 출시하며 본격적인 대체식품 산업의 시작을 알렸다.

 

가짜 소비, 그거 누가 하는 건데?
  이러한 가짜 소비를 트렌드로 이끌어가는 소비자들을 ‘페이크슈머(fakesumer)’라 한다. 이들의 중심에는 다양한 기업들의 ‘가짜’ 선언을 독려한 MZ세대가 자리하고 있다. MZ세대는 사회적 신념을 소비로 표출하는 ‘미닝아웃(meaning out)’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중이다. 이들은 제품의 품질이나 가격, 더불어 해당 기업의 환경과 사회적 책임까지 고려하는 윤리적 소비를 지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짜로 만들어진 상품이더라도, 가치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구매하고 전파한다.

  한편, MZ세대의 독특한 소비문화는 뒤따르던 X세대의 이목을 끌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원조 신세대인 X세대는 그들만의 리더쉽으로 전 세대를 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에 민감하고,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이들은 새로운 소비문화에도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안정적인 경제력으로 사회를 지지하고 있는 X세대의 움직임은 MZ세대의 실행력과 결합했고, 이는 시장의 판도를 바꾸기에 충분했다. 결국, 클래시 페이크처럼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문화가 시장을 장악하며 기업들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변화의 신호탄을 쏘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클래시 페이크. 그러나 여전히 한계는 존재한다. 대체육류 자체는 식물성 단백질이지만, 포화지방과 칼로리가 기존 육류와 비슷해 더 나은 가치를 지녔다고 보긴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육류와 비슷해지기 위해 다량의 첨가제가 들어가기도 한다. 페이크 퍼 역시 석유에 기반을 둔 합성 섬유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또 다른 환경 파괴를 낳는다. 더불어, 클래시 페이크를 단순 마케팅 전략으로 이용해 본질을 흩트리는 기업도 다수 존재한다. 이렇듯 변화를 위한 가짜가 오히려 진짜 세상을 변질시키지 않도록, 소비자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기업들을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클래시 페이크, 과연 난관을 이겨내고 가시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한비 기자 hanb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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