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부터 2020년까지의 동물 찻길 사고 발생 추이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의 동물 찻길 사고 발생 추이다

  “인간과 동물 그리고 자연환경은 지구 안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변화된 인식이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지난해 8월 2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발표한 동물복지 정책공약 발표문의 시작이다. 한국은 어느덧 반려동물 1,500만 시대에 도래했다. 이에 2022 대선 주요 후보들은 공통적으로 △반려동물 이력제 △의료비 표준수가제 △펫푸드 산업 육성 등의 공약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여기 빠져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야생동물 보호 정책’이다. 대선 후보 14명의 동물복지 정책공약을 살펴봐도, 직접적으로 야생동물 보호를 언급한 것은 2명의 후보뿐이다. 동물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빛을 발하고 있는 요즘, 이상하리만큼 야생동물의 삶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2020년 종별 동물 찻길 사고 현황이다
△2020년 종별 동물 찻길 사고 현황이다

  도로 위에서는 하루 평균 41마리의 동물이 죽어간다. 여기에는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로 친숙한 종도 포함되지만 15,107건의 동물 찻길 사고 중 고라니, 너구리와 같은 야생동물이 약 9,000마리(2020년 기준)로 동물 찻길 사고 피해 동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천연기념물 제330호로 지정된 수달과 멸종위기종으로 지목된 삵 등의 피해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2020년 기준 6,684마리로 동물 찻길 사고 피해 동물의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고라니도 실은 중국과 한국에만 서식하는 국제멸종위기종이다. 이는 동물 찻길 사고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실속 없는 야생동물 보호 사업
  국제생태정보은행 에코뱅크(이하 에코뱅크)에서 배포하는 ‘생태통로 설치 및 관리지침’에서는 동물 찻길 사고를 대표적인 동물 개체군 감소 원인으로 보고 있다. 자연의 질서인 야생동물의 지속적 이동과 분산이 도로에 의해 방해받고 있는 것이다. 환경부에서는 이러한 서식지 파편화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생태통로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도로나 댐의 건설로 단절된 서식지를 연결해 동물의 이동로를 확보하기 위한 인공구조물이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생태통로는 실질적으로 야생동물의 통행권을 보장하는 데 일조하고 있을까.


  에코뱅크의 ‘생태통로 시설통계’에 따르면, 전국에 설치된 생태통로는 총 532개이다. 그러나 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동일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동물 찻길 사고 다발 지도’에서는 특정 구간을 동물 찻길 사고 발생 빈도에 따라 다섯 등급으로 나누고 있는데,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1~2등급 구간임에도 생태통로가 부재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9년 기준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역 부근 지방도로 21번 국도는 동물 찻길 사고 빈도 1등급이지만 현재까지 어떠한 형태의 생태통로도 건설되지 않았다. 2등급인 대전광역시 옥천군 옥천역 부근 4번 국도 역시 같은 실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정기적인 조사가 부족해 생태통로 기능성 현장 점검표를 제대로 작성할 수 없는 구역도 있다. 앞선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설치된 강원도 춘천시 동면 지내리 일반국도 46호선과 2017년 만들어진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국도 58호선은 설치한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효율성을 판단할 수 없다고 기록돼 있다.


  한국로드킬예방협회 강창희 상임대표는 이러한 생태통로의 실효성 부재가 허술한 사전 조사에서 초래된 것임을 꼬집었다. 야생동물에게도 주요 통행 경로가 있으므로 이를 반영해 생태통로를 설치해야 하지만 현재의 생태통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강 대표는 “적합한 생태통로 설치 위치 선정을 위해선 동물 찻길 사고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 자료가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2018년 환경부와 국토교통부에서 마련한 ‘동물 찻길 사고 조사 및 관리 지침’에 따라 동물 찻길 사고를 조사하고 있다. 해당 지침에 따르면, 원칙상 모든 도로에서 발생하는 동물 찻길 사고는 도로관리청이 조사하며, 국립공원을 지나는 도로에 한해서는 국립공원공단이, 동물 찻길 사고 다발 구간에 대해서는 국립생태원이 정밀 조사를 진행한다. 


  그러나 도로관리청은 도로 유형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동물 찻길 사고 발생 현황을 조사하는 주체도 도로마다 다르다는 문제가 있다. 이렇게 분산된 조사기관이 조사 결과를 공유하기 위해선 하나의 통합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에 환경부와 국토교통부에서는 위치정보 기반 애플리케이션인 ‘굿로드(Good Road)’를 도입해 동물 찻길 사고 조사 시 앱을 사용하도록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강 대표는 해당 앱에 대해 “조사를 통합할 수 있다는 점에선 좋으나, 사진을 찍고 동물 종을 기록하는 등의 과정이 번거로워 수기로 작성했던 이전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한국로드킬예방협회에서는 앱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의견을 표했다. 


  이러한 집계 시스템의 부재는 어떤 도로에서, 어떤 야생동물이 얼마만큼 사고를 당하고 있는지에 관한 데이터의 부재로 나타났다. 결국 조사가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있지 않아 효용 없는 생태통로가 건설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이렇게 부실한 체제를 이어나간다면 그 많은 생태통로는 결국 아무 발자국도 남지 않은 채로 무용지물이 될지도 모른다.

 

작지만 한 걸음부터
  그러나 최근에는 동물 찻길 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관리 당국의 노력이 포착되고 있다. 지난 2020년 환경부와 국토교통부는 ‘동물 찻길 사고 조사 및 관리 지침’ 개정안에 50개 사고 다발 구간에 유도 울타리와 주의 표지판을 설치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50개 사고 다발 구간을 분석해 지도로 만든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더불어 같은 해 7월부터는 충청남도 지역을 대상으로 안전하고 간편한 동물 찻길 사고 신고를 위해 ‘바로신고 시스템’을 도입했다. 해당 시스템은 내비게이션(SKT 텔레콤 T맵)을 활용한 것으로, “로드킬 신고해줘”라고 외치면 자동으로 국민콜 110기관 연계 시스템으로 접수된다. 운전 중에 동물 찻길 사고 처리 담당 기관 번호를 찾는 번거로움을 해소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5월 전문가 심사를 거쳐 우수 지역혁신사례로 선정된 바 있다.


  여러 기관에서 주먹구구식으로 동물 찻길 사고를 다루던 2000년대 초반과 달리 현재의 동물 찻길 사고 저감 대책은 더욱 많은 연구와 자료조사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국가에서 동물 찻길 사고를 중대 사안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며 생겨난 유의미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강 대표도 “하루빨리 동물 찻길 사고의 조사 체계가 갖춰져 전국의 상황을 데이터베이스로 마련해놓을 수 있길 바란다”며 장기적인 해결책을 향한 바람을 드러냈다.

 

우리의 관심이 그들에겐 ‘생명줄’이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2022 대선 후보들의 동물복지 정책공약은 반려동물과 관련된 것만이 주를 이뤘다. 이 가운데 대구 동물보호연대, 동물보호단체 행강 등 전국 17개 단체가 모여 만든 ‘동물권 대선 대응연대’는 이들에게 동물복지 5대 과제와 ‘동물 찻길 사고 저감 방안 마련으로 생물 다양성 증진’이 포함된 18개 세부과제를 제안했다. 동물 찻길 사고 발생을 최소화해 멸종위기종, 천연기념물을 비롯한 야생동물이 더는 위협받지 않도록 국가적 차원의 해결책을 요구한 것이다. 이에 지난달 1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수용 의사를 표했다. 그들의 답변에 동물권 대선 대응연대는 “득표를 위한 ‘전시용’ 공약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정책 현실화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독일의 동물법은 ‘동물과 인간은 이 세상의 동등한 창조물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지구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동물 찻길 사고는 더 많은 도로와 철도, 댐을 건설해 인간의 편의만을 꾀하려다 생기는 비극이다. 따라서 이동로를 마련하고, 도로 위 하나의 죽음도 넘어가지 않고 기록하는 것이 죄 없는 동물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이지 않을까. 빠른 시일 내에 야생동물들이 위태로운 하루에서 벗어나 안온한 일상을 되찾길 바라본다.


최보영 기자 choiboyoung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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