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26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2022. 3. 21. 기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이하 나토) 가입 추진, 돈바스 전쟁 등을 명분으로 내세워 우크라이나를 향한 군사행동을 자국 안보 위협에 대한 대응이라는 식으로 정당화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러시아를 향한 국제사회의 비판과 제재가 강화되자 러시아는 사실상 ‘국제 왕따’ 신세로 전락한 상태다. 더군다나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안타깝게 희생되고 있는 군인과 민간인의 소식이 연일 보도되면서 세계 각지에서는 자유와 평화를 향한 외침이 거세게 들끓고 있다. 이에 기자 역시 한국 노동자연대에서 주최한 ‘우크라이나 전쟁 중단! 서방과 한국의 러시아 제재 반대! 국제 행동의 날’ 집회에 참여해, 반전(反戰)을 외치며 평화를 갈망하는 이들의 진심 어린 목소리를 들어봤다.

한국 노동자연대 활동가 김승주 씨가 연설문을 낭독하고 있다
한국 노동자연대 활동가 김승주 씨가 연설문을 낭독하고 있다

평화를 타협할 수는 없다

  지난 6일 오후 1시 50분, 집회 장소인 종로타워에 도착하자 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빼곡히 메워진 인파가 시야에 들어섰다. 도로에 가득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에 놀라기도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건물 앞으로 다가가자 참가자들을 포함해 언론사 기자, 경찰 등이 눈에 띄었다. 집회의 시작을 앞두고 그들을 둘러싼 분위기에는 긴장이 감돌았으며 몇몇 참여자들은 결연해 보이기까지 하는 얼굴이었다. 얼마 후 시곗바늘이 2시 정각을 가리킴과 동시에 참가자들은 주최 측의 진행에 따라 일제히 바닥에 착석했다. 이어 그들은 ‘Stop the War in Ukraine’ ‘서방과 한국 정부의 러시아 제재 반대’ 등이 쓰인 피켓을 들고 힘찬 함성을 내지르며 본 집회의 시작을 알렸다.

  함성이 잦아들 때쯤, 집회의 사회를 맡은 노동자연대 활동가 김승주 씨는 참가자들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쥐었다. “여러분, 이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입니까.” 김 씨는 고조된 어조로 말문을 떼며, 수많은 사상자와 난민을 배출케 한 러시아의 즉각 철군과 전쟁 중단을 강력히 주장했다. 또한 김 씨는 “러시아에 가하는 경제 규제와 우크라이나에 이어지는 서방의 무기 지원은 러시아가 핵전력 강화로 대응케 하는 등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며 같은 이유로 한국 정부가 이러한 행동에 가세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뒤이어 기조연설을 진행한 활동가 김영익 씨는 먼저 해당 전쟁의 본질이 세계 패권 다툼에 있음을 지적했다. 소련 붕괴 이후, 미국 및 서유럽 강대국들은 그들의 군사동맹인 나토에 동유럽 국가들을 유입시키며 세력을 확장해왔다. 그 결과 러시아를 자극해 세계 전반에 긴장을 불러왔고, 결국 전쟁의 직접적인 발단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즉, 김 씨는 푸틴이 가해자임은 명백한 사실이나 자국의 실리만을 위해 그를 자극한 서방 역시 전쟁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연설 중간중간에 참가자들은 김 씨의 발언에 동의를 표하듯 피켓을 흔들며 큰소리로 구호를 제창했다.

서울 종로타워 앞, 시민들이 피켓을 흔들며 연설에 호응하는 모습이다
서울 종로타워 앞, 시민들이 피켓을 흔들며 연설에 호응하는 모습이다

  다음으로 발제를 진행한 이는 이집트 난민 출신 압데라흐만 아테프 씨였다. “난민의 고통과 처지를 알고 있기에 이번 사건에 더욱 아픔을 느끼고 있어요.” 아테프 씨가 입을 연 순간부터 주위의 이목은 모두 그를 향했다. 실제 난민이었던 이가 전하는 전쟁의 여파는 상대적으로 한국과 동떨어져 있는 난민 문제의 심각성을 한층 더 와닿게 했다. 참여자들 또한 라흐만 씨의 연설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통역에 귀 기울이며 전쟁으로 인한 난민의 비극적인 현실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자 했다. 이외에도 미국 마르크스주의단체 ‘마르크스21’의 회원 클레어 렘리치 씨는 LA 현지에서 직접 전화 연결을 통해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현지 시각으로 저녁 10시에 달하는 시간이었지만, 피곤한 기색 없이 반전 운동을 격려하는 그의 목소리에 참여자들은 더욱 환호하며 우레와 같은 박수로 보답했다. 비록 서로 사용하는 언어도, 살아온 환경도 다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오로지 평화를 위해 힘을 모으는 모습을 보며 가슴 한쪽이 벅차오르는 순간이었다.

시위 참가자들이 전쟁 반대를 외치며 행진을 이어 나가고 있다
시위 참가자들이 전쟁 반대를 외치며 행진을 이어 나가고 있다

전쟁 중단을 위해 내딛는 발걸음

  연설이 끝난 뒤엔 본격적으로 행진의 서막이 올랐다. 행진은 집회가 열린 종로타워 앞을 시작으로 종로 2가 사거리를 걸쳐 광화문까지 이어졌다. 약 150명의 참여자는 5, 6명씩 질서 정연하게 한 줄을 이뤘고, 선발대를 따라 힘차게 첫발을 뗐다. 기자 역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그들을 따라갔다. 경찰의 협조 아래 도로로 나선 그들은 피켓을 들고 “우크라이나 전쟁 중단하라” “나토 확장 반대한다” 등의 구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에 지나가던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행진을 바라보거나 해당 장면을 카메라로 찍기도 했다. 시민들의 관심이 따듯한 햇살과도 같은 격려로 다가왔던 것일까. 참여자들은 행진의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숨이 차올랐지만, 지친 기색 없이 끝까지 구호를 내뱉었고 함성 사이를 비집고 나온 갈라진 목소리는 마치 숭고한 노랫소리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약 40분 동안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듯 불타는 투혼을 발휘한 그들의 움직임은 종착지인 광화문에 다다라서야 서서히 일단락됐다. 이후 주위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행진을 주도한 활동가 성지연 씨에게 기자가 질문을 건네봤다. 대학생들이 반전 집회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면 좋겠냐는 질문에 성 씨는 “많은 언론이 러시아군의 철수만을 주장하고 있는 와중에 우리는 전쟁 중단과 더불어 서방의 규제가 전쟁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봤다”며 집회의 의의를 밝혔다. 또, 그는 러시아를 향한 국제사회의 구속으로 피해를 보는 측이 다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인 만큼 학생들에게 “전쟁의 본질에 관해서도 끝까지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의 답변을 듣고 나니 얽히고설킨 전쟁의 이해관계를 보다 균형 잡힌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에 깊게 박혔다.

  공식적으로 계획된 행사가 모두 종료됐음에도, 참가자들은 광화문 광장 주위를 쉽사리 떠나지 못한 채 잔재하는 흥분을 토해냈다. 뜨거웠던 행진의 열기가 남아 있는 그 사이에서 기자는 한 집회 참여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이지원(28·여) 씨는 “우크라이나의 안타까운 상황을 접하게 되면서 조금이라도 빨리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집회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한편 해당 집회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전쟁 반대에 관한 1인 시위를 하는 시민도 볼 수 있었다. 덕수궁에서부터 시위를 시작했다는 국민대학교 학생 오동민(23·남) 씨는 “전쟁은 평화를 위해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직접 나서게 됐다”며 1인 시위의 계기를 밝혔다. 이처럼 따로 또 함께 전쟁 반대의 뜻을 펼치는 모습에서 세계 평화를 향한 시민들의 간절함을 엿볼 수 있었다.

전쟁 그 이면에는

  러시아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우크라이나를 (서방이) 계속 지원하면 새로운 군사분계선이 만들어지고 국경도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재도 나토의 참전 여부, 핵전쟁으로까지의 발전 가능성을 두고 국가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어, 앞으로 러시아의 행보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상황이다.

  ‘헤게모니의 공백’을 차지하고자 또는 ‘잃어버린 옛 영광’을 되찾고자 하는 야욕으로 세계 곳곳에서 앞다퉈 분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 어떤 대의도 개인이 안전하게 살아갈 자유를 넘어서진 못한다. 제1·2차 세계 대전의 비극을 알고 있는 오늘날에도 또다시 전쟁이 발생했고,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한순간에 적이 되어 상대의 심장에 총구를 겨누는 일을 목도하고 있다. 하루빨리 이와 같은 잔인한 현실에서 탈피해, 더는 무고한 희생이 잇따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글 김수인 기자 cup0927@naver.com
사진 최보영 기자 choiboyoung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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