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바로 루리 작가의 어린이문학 『긴긴밤』이다. 단락마다 눈물을 훔칠 정도로 감동적이었던 이 책에는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글이 참 많다. 그중 소설 초반부터 눈길이 갔던 문장이 있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눈이 보이는 코끼리에게 기대서 걸으면 돼. 같이 있으면 그런 건 문제가 아니야. 우리 옆에 있으면 돼. 그게 순리야.” 

  주인공인 흰바위코뿔소 ‘노든’은 코끼리들이 사는 곳에서 태어났기에 자신이 코끼리라고 생각하며 자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노든은 자신이 그들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데, 윗 문장은 그런 노든에게 할머니 코끼리가 건넨 말이다. 이처럼 소설에는 종과 차이의 경계를 넘어 연대하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장애인 시위가 한창인 요즘, 연착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는 지하철에서 이들의 온화한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문득 이 세상이 부끄러워져 숨고 싶었다. 우리는 ‘내게 기대’라고 말하는 코끼리처럼 약자에게 의지가 되는 존재였던 적 있을까. 함께 살아가는 것이 순리라고 말한 할머니 코끼리처럼 당연한 진리를 소리 내어 외쳐준 적이 있을까. 이처럼 단순한 연대가 작동하지 않아 여전히 대한민국은 ‘소수자가 살기 좋은 나라’는커녕 ‘소수자가 평범하게 살 수조차 없는 나라’로 남아있다. 

  무심코 넘겼던 그들의 삶은 우리의 삶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필연적으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존재다. 앞으로는 긴긴밤에 환한 빛을 비춰줄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라본다. 함께 어둠을 몰아낼 때, 그렇게 발맞춰 걸어 나갈 때 우리는 더욱더 오래, 그리고 멀리 나아갈 수 있다.

전감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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