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의통역사 / 방송인 안현모

 

  여기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을 이어주는 국제회의통역사이자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인으로도 활약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를 꼽아본다면 단연 ‘소통’이 아닐까. 여러 분야에서 소통하고 있는 안현모 씨를 만나, 그가 건네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현재 국제회의통역사이자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현모입니다.

통역사라는 꿈을 꾸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학생 때 미국으로 미대 유학을 준비하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접게 됐어요. 그러면서 다시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 통역·번역대학원(이하 통대)을 졸업한 친언니의 권유로 통대를 준비하면서 통역사를 꿈꾸게 됐습니다. 졸업해서 반드시 통역사가 되라는 의미에서는 아니었고요. 통대를 나오면 추후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가능성이 커지고 그 안에서 경제/경영, 정치/외교, 보건/환경 등의 실용적 공부를 두루 접하게 되기 때문에, 저에게 있어 훌륭한 밑바탕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통역사님은 어떤 대학 시절을 보내셨나요
  요즘처럼 취업난이 심각하지는 않았던 시절에 대학을 다녀서 스펙 관리를 치열하게 하진 않았어요. 언어나 미술 등 제가 좋아하는 쪽의 수업은 열심히 들었지만, 그 밖의 교외 활동을 활발하게 하지는 못했죠. 그리고 대학 시절 내내 상당히 구속적이었던 남자친구랑 장기 연애를 하는 바람에, 일반 대학생들처럼 여행을 많이 가지도 못했습니다. 유일하게 바이올린 주자로 한 오케스트라 동아리 활동 외에 그 흔한 MT도, 미팅도 경험해보지 못했네요. 굉장히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학 생활이라, 후배들에겐 젊고 소중한 시간을 그렇게 낭비하지 말라고 꼭 당부해주고 싶어요. 그 외에는 졸업 전 두 학기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언어학과 전공학점의 절반가량을 이수하며 대학 시절을 보냈습니다.

국제회의 및 행사의 통역을 맡았을 때는 어떤 준비를 하시나요. 행사 당일 통역사의 일과를 소개해주세요
  먼저 통역 준비의 시작은 행사 참가자들의 면면부터 행사의 성격, 목적 등을 파악하고 최대한 많은 자료를 사전에 요청하거나 직접 조사하는 것입니다. 행사의 성격상 알아야 하는 필수 용어부터 주요 안건(agenda) 등을 철저하게 공부하죠. 통역사의 업무 중 80%는 사전 회의 조사입니다. 행사 당일은 사실 실전이라 별다른 시간이 없어서 무얼 더 공부하긴 힘들어요. 따라서 전날 잠을 충분히 자고 적절한 영양분을 보충해 최상의 체력과 컨디션을 만들려고 합니다.

통역사라는 직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통역사의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하나로 답하기는 힘들지만, 프리랜서 통역사인 제 경우에 맞춰 말하자면 시간 관리를 자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입니다. 또, 온갖 최신 정보나 동향에 빠르다는 것도 통역사라는 업의 특징이죠. 3년 차 새내기든, 30년 차 베테랑이든 관계없이 그때그때 주어진 프로젝트에 맞춰 새롭게 공부해야만 해서 자연스레 각종 지식이 업데이트되고 계속해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국경을 초월해서 각계각층의 다채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게 되어, 폭넓은 시야와 함께 사고력 역시 깊어지는 것 같아요. 

통역사로 활동하면서 만족감이나 보람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면요
  제게 가장 보람을 주는 일은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화제가 되는 일보다, 개인적으로 정성들여 센스 있게 준비해 간 부분을 실제 관계자가 제대로 알아봤을 때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인간적인 관계가 계속 이어졌을 때 보람을 느끼죠. 실제로 거의 15년 전에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한 해외 아티스트를 통역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과 지금도 우정을 이어오고 있고 이제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게 됐어요. 저는 이런 순간에 가장 만족감을 얻습니다. 

반대로 통역사로서 직업의 아쉬움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마찬가지로 통역사마다 근무 형태나 환경이 달라서 저마다 답이 다르겠지만, 대체로 통역사들은 프리랜서와 같이 무소속으로 일하거나 아니면 조직의 일원이더라도 조직에서 소수인 경우가 많습니다. 비교적 외로운 포지션일 때가 많죠. 또한 클라이언트나 팀원들과도 하나의 과제가 끝나면 해산하는 단기적 관계가 대부분이고요. 그래서 고립되지 않으려면 당장 같은 조직에 속해 있지 않더라도 동료 통역사들끼리 서로 지지하고 연대하며 상호교류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앵커부터 통역사 그리고 방송인까지, 주로 소통과 관련된 분야에 종사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모르겠어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을 뿐,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는 하루하루를 하루살이처럼 노력하고 있을 뿐이고, 저 스스로의 퍼포먼스에 실망할 때도 많아요. 또 언제나 새로운 도전과제가 주어지기 때문에 늘 초보처럼 고민하기도 하며 자기비판을 하죠. 다만 항상 소통에 있어 제가 갖는 확고한 철학인 ‘역지사지’를 되새겨요. 상대방의 입장에 이입해서 헤아려보고 들어보고 말해보는 다각적인 역할전환이 저의 근본적인 소통 기제라고 생각합니다.

번역가로서도 활동하시며 SNS를 통해 독서 후기를 활발히 남겨주십니다. 동덕여대 학생들에게도 책 한 권 추천해 주세요
  추천하고 싶은 책이라… 대학생 때는 유행하는 실용서를 읽는 것보다 평생을 지배할 인격 형성에 도움을 주는 책들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분들이 아직 안 읽으셨다면 앤절라 더크워스의 『그릿』, 데일 카네기의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그리고 아잔 브라흐마의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를 읽어보시길 권해요. 아, 그리고 동덕여대니까 특별히 여성 동지들 맞춤형으로 한 권 더 언급한다면 셰릴 샌드버그의 『린 인』도 추천합니다. 

통역사로서 꿈꾸시는 미래가 있다면요
  꼰대 같은 소리로 들리실 수도 있지만, 사회는 점점 더 소통이 단절되고 있어요. 기술의 발달로 소통의 필요성조차 사라지고, 온라인 공간에서의 일방적 소통이 만연해지면서 젊은 사람들은 양방향 소통 능력을 상실하고 있죠. 아니, 어쩌면 우리의 불통(不通)은 가부장적인 한국의 가족문화, 뿌리 깊은 유교 사상, 급격한 경제성장 등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빚어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한국말을 쓰는 한국인끼리도 대화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니까요. 저는 통역사이기도 하지만 전 언론인으로서, 또 대중을 상대하는 방송인으로서 소통의 아름다움과 그 힘을 믿으며 이에 대한 회복을 꿈꿉니다. 따라서 저는 상대에게 명확히 말하고, 타인이 의도한 것을 명확히 듣는 건강한 대화가 가정과 학교, 직장, 나아가 사회에서 꽃피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동덕여대 학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짧게나마 지면을 통해 동덕여대 학우 여러분들을 만나 영광이었고, 잠시 설레기도 했습니다. (웃음) 긴 글을 끝까지 읽어 주신 모든 분께 칭찬의 박수를 보내 드리며, 분명 행운이 함께할 거라 믿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기 전 큰소리로 강조하고 싶은 말은 여러분 모두에게 무한한, 그야말로 무한한 가능성이 기다리고 있으니 절대 자신을 의심하거나 주저하거나 망설이거나 다른 사람의 눈치 보지 말고 자신감을 가진 채 마음껏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Live life to the fullest! (주어진 인생을 최대한 만끽하세요!)

김수인 기자 cup09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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