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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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아동복지법 제2조 2항에 따르면, 아동은 완전한 인격 발달을 위해 안정된 가정환경에서 행복하게 자라나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위태롭게 살아가는 ‘홈리스 아동’이 존재한다. 이들의 안전한 삶을 위해 사회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이를 알아보고자 본지는 홈리스 아동의 현실을 담은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두 기자의 시선으로 분석해봤다.
 

무지개 뒤편, 소외 아동의 삶을 그리다

  어린아이들의 꿈과 환상으로 가득한 미국의 ‘디즈니 월드’. 그 옆에는 화려한 외관의 숙박시설이 즐비해 있다. 본래 이곳은 관광객을 위해 조성된 모텔 단지였지만, 이제는 홈리스들의 주거지로 전락해버렸다. 그중 주인공 무니와 엄마 핼리는 몽환적인 연보랏빛의 ‘매직 캐슬’에서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6살 무니에게 매직 캐슬은 사방이 위험한 정글과도 같다. 모텔 복도를 지날 때마다 마주치게 되는 투숙객들의 거친 욕설과 폭력. 난폭한 환경에 저항 없이 노출돼 버린 아이들은 점점 이들에 무뎌져 스스럼없이 욕설을 내뱉고, 방화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 역시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렇듯 위험한 장난을 일삼는 아이들의 모습은 관객의 불안감을 자아내지만, 누구보다 아이들을 걱정해야 하는 그들의 부모는 오히려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당장의 방세를 내는 것조차 버거운 홈리스 가정에서 생계유지보다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헬리 역시 무니에게 훈계 대신 칭찬으로 일관하고, 결국 잘못을 깨닫지 못한 무니는 비행을 반복한다.
 
  무엇보다 무니의 삶이 가장 안타까운 이유는 바로 ‘고립’이다. 그는 매일 혼자서 목욕을 하고, 2명의 친구와 똑같은 일상을 반복할 뿐이다. 이는 사회로부터 소외된 아이가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지 못하는 문제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무니는 한곳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는 홈리스 가정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타인과 깊은 관계를 쌓지 못해 사회로부터 배제당한다. 결국, 이러한 하루의 연속은 무니의 세계를 매직 캐슬의 방 한 칸으로 전락시킨다.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은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렇기에 아동 보호국의 조치로 엄마와 이별하게 된 무니의 아픔은 꽤 오랫동안 지속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무니는 모텔에 도사리던 위험들과 한 발짝 멀어졌고, 안전한 곳에서 더 큰 세상으로 향하는 첫발을 내딛게 됐다.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홈리스 아동.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섣부른 연민이 아닌 가족과의 분리다.

김한비 기자 hanb02@naver.com


보호라는 이름의 또 다른 폭력입니다

  부모는 아이의 세계라는 말이 있다. 무니의 세계는 핼리였다. 그러나 그 세계는 아동국이 아동 보호를 명목으로 매직 캐슬에 찾아왔을 때 기어코 무너졌다. 사소하지만 즐거운 엄마와의 일상이 추억 속 옛이야기가 되고야 만 것이다. 무니는 엄마와의 이별을 알게 된 순간부터 더이상 천진난만한 꼬마가 아니었다. 영화 초반과 달리 아동국 직원의 손을 뿌리치며 슬픔이라는 감정을 격하게 표현한다. 핼리도 마찬가지였다. 하루아침에 모녀가 서로의 전부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핼리의 삶은 사투 그 자체였다. 핼리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무니와 함께 향수를 팔면서 돈을 벌었다. 이마저 제지당하자 결국 성매매까지 하며 생활을 유지한다. 그러나 무조건 그의 격한 행실에만 집중해선 안 된다. 교육상 옳지 못한 행동일지는 몰라도 그가 항상 무니와 희노애락을 함께 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로써 관객들은 자신이 성매매를 할 동안 노래를 틀고 무니를 목욕시킨 핼리를 보며 시끄러운 노랫소리에 감춰진 미혼모의 처절한 심정을 읽어낼 수 있다.

  딸에게 최선의 사랑을 주기 위해 애쓴 핼리. 이 간절한 노력 아래 무니는 나름대로 안온한 삶을 살아갔다. 좁다란 323호에서 장난을 치거나 친구와 뛰어노는 장면에서 무니는 평범한 아이로 그려진다. 마치 빈곤한 생활은 그의 삶에서 필연적인 장애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가족과의 분리가 아동 보호의 해답은 아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헤어짐을 직감한 친구 젠시는 무니의 손을 꼭 잡고 외곽 지역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다. 이는 어쩌면 아이의 환한 미소를 지켜주기 위해서는 거창한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암시할지도 모른다. 핼리 가정의 자립을 위해서는 강압적인 이별보다 사회의 따스한 손길이 더욱 필요하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작품 속 세계에는 우리나라와 같이 한부모 가족을 위한 기초생활보장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 제도적인 지원의 부재. 그 한 틈이 누군가의 매직 캐슬을 무너뜨리지는 않았을지 넌지시 고민해 볼 때다.

천서윤 수습기자 1000seo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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