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역삼역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첫음절과 끝음절이 같은 세 글자 단어라는 것이다. 최근 굉장한 흥행을 터뜨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같은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때 덧붙이는 단어들이다.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졌음에도 변호사로 활동한다. 비록 말은 어눌하고 행동도 부자연스럽지만 ‘우영우’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 의뢰인을 변호한다. ‘우영우’가 고래를 떠올리며 변호할 거리를 떠올릴 때마다 시청자들은 환호하고, 김초밥을 좋아하는 그녀의 일상을 응원한다. 더불어 동료 변호사 ‘권민우’의 불편한 편견을 비판하며, ‘우영우’를 도와주는 로스쿨 동기 ‘최수연’을 동경한다.

  현실에도 ‘우영우’는 존재한다. 비장애인과 똑같이 사랑하고, 능력을 살려 직업을 가질 권리를 현실 속 장애인들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영우’처럼 사회적 역할을 뚜렷하게 가지고 살아가는 장애인들은 주변에 거의 없다. 애초에 장애인을 위한 기본적인 복지조차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이미 시각 장애인 유도 블록은 그 기능을 잃고 방치돼 있어 심각한 문제로 거론된 지 오래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철저하게 비장애인 중심으로 이뤄진 이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복지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신체 혹은 정신적으로 장애를 가지기에 일상에서 제약을 동반하고 살아간다. 그들이 가지는 불편함은 비장애인은 함부로 추측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장애로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행위를 당연히 지양해야 할 것이며, 그들을 배려해 함께 더불어 살아나가야 한다. 장애인들 또한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일원이다. 무엇보다, 장애는 특정인에게만 국한된 운명, 혹은 필연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오늘의 비장애인도 언제고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정의’란, 정의돼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고자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공평한 세상과 만날 때, ‘공정’이라는 궁극적 목표가 될 수 있다. 단발적으로 ‘우영우’가 겪는 부조리함에 분노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연민일 것이다. 과연 당신은 ‘공평’을 ‘공정’으로 포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실은 자신부터, 권모술수를 부리는 사람인지 경계해야만 할 것이다.

윤지원 학생 논설위원 (문헌정보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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