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배경도 성격도 취향도 모두 다른 네 명의 기자들. 지금부터 이들은 각자 겪었던 수많은 경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인생 경험’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인생 보물부터 연예인, 여행지, 유튜버까지. 흔한 주제지만 흔하지 않은 기자들만의 이야기. 지금 바로 확인해보자!


먼지 쌓인 ‘추억’을 꺼내 보며

  창고의 가장 구석에 위치한 대형 박스는 나의 오랜 ‘보물 창고’다. 모두가 탐낼 만한 값비싼 물건이나 한정판 제품이 들어있지는 않지만, 바라보면 웃음이 나고 때로는 눈물이 맺히는 소중한 ‘과거’가 모두 이 안에 숨 쉬고 있다. 

  뚜껑을 열면 가장 먼저 약 40개의 일기장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일기장 더미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모든 나날이 빠짐없이 적혀 있다. 당시 일기장은 내게 유일한 기록 수단이었다. 부끄럼이 많았던 나는 카메라를 무서워해 사진보다는 일기를 좋아했다. 오로지 나의 표현으로 하루 동안 느꼈던 감정을 문자로 풀어 써 내려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기장을 가까이 들여다보니, 10여 년의 세월이 지난 탓인지 종이는 누레졌고 질감도 푸석했다. 하지만, 필체는 여전히 견고히 남아있었다. 다소 미숙한 맞춤법에 오타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연필로 꾹 눌러 담았던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일기장 속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일기장 아래에는 지금까지 가족, 친구, 선생님들께 받았던 편지가 놓여있다. 일기가 나만의 기록 도구였다면, 편지는 나만의 소통 수단이었다. 소심한 성격으로 미처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려웠던 나는 항상 편지로 나의 진심을 전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누군가에게 받은 편지도 소중히 여기게 됐다. 편지 안에는 이 편지를 쓴 당사자의 시간과 노력이 깊게 배어 있다는 생각에 말이다. 지금도 이 수십 개의 편지는 내게 심심한 활력소가 되곤 한다. 편지를 받을 나를 생각하며 전해준 말인데 어찌 가슴에 와닿지 않을 수 있을까. 긴 문장이 아니어도 그저 ‘유진이에게’라는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 다섯 글자만으로 이미 깊은 전율을 안겨주니까.

  사실 보물 창고 안에 존재하는 것들은 어쩌면 버릴 수 없다는 미련 하나로 모아놓은 짐덩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 깃들여 있는 추억의 조각들은 유일무이하다. 아마 이 문장을 쓰는 지금도 잠시 뒤면 과거가 될 것이다. 허나 슬프지는 않다. 이 글로서 다시금 현재의 순간의 기억할 테니, 그리고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할 테니.

최유진 기자 cyj44126@naver.com

 


무한대를 만난 ‘그 해 여름’ 

  ‘정상 향해 달려가는 추격자 인피닛!’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나를 누르면 자동으로 나오던 말이다. 나는 어쩌다 이런 말을 외치게 되었을까. 그 시작은 2010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교 후 나는, 놀이터에서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하자는 친구들을 뒤로한 채 집에서 음악 방송을 보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댄스, 발라드 등 다양한 음악에 맞춰 춤추던 내가 어떤 이를 보고 우뚝 멈췄다. 내 첫사랑인 캐릭캐릭체인지의 ‘루이’ 오빠의 3D를 발견한 것이 그 이유였다.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난 내가 그에게 홀려 있을 무렵. 야속하게도 무대가 끝나 그 오빠가 화면에서 사라졌다. 어렵게 만난 첫사랑을 놓칠 수 없던 나는, 컴퓨터를 켜 그 방송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30분이 흘렀을까. 해당 음악 방송과 관련한 무수히 많은 기사 속에서 드디어 그 오빠를 찾았다! 그의 이름은 ‘이성종’. 1993년 9월 3일 생으로, 그룹 인피니트의 막내였다.

  이후 나는 그를 포함한 인피니트 전체를 열심히 탐구했다. 그들이 출연하는 방송을 빠짐없이 챙겨보는 것은 당연지사. 모든 멤버의 이름, 생년월일, 고향, 특징 등을 외우는 것은 물론 노래 가사를 필사하는 등 본격적인 ‘덕질’을 시작했다. 

  덕질을 하다 보니 나의 거의 모든 추억에는 인피니트가 존재하게 됐다. 수능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날 인피니트가 올린 응원 글을 보고 눈물을 훔친 기억, 인피니트 팬 카페에서 만난 회원이 오랜 시간 보지 못했던 친구였던 일 등 나의 10대는 인피니트로 가득했다. 그리고 나 또한 팬덤명이 처음 생긴 순간부터, 첫 1위와 월드투어를 했을 때 등 그들의 연예계 생활의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을 함께하고 있다.

  13년 차. 덕질이 처음이라 배울 것이 많았던 초등학교 3학년을 지나, 덕질에 적응한 중학교 3학년 인스피릿(인피니트 팬덤명)을 지나, 덕질에 통달한 대학교 3학년 인스피릿이 됐다. 인피니트도 멤버 전원이 군대를 다녀온 군필돌이 됐다. 많은 것이 변했다. 누군가 내게 그 시간 속에서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이 바뀌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외모만 보고 좋아했던 처음과 서로의 희로애락을 함께 하고, 내 추억 하나하나에 그들의 지분이 있는 지금. 그들을 좋아하는 내 마음의 형태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으니까. 내 자부심이었던, 그리고 자부심인 인피니트. 그들이 떠나지 않는 한, 나도 여기 이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 너와 나. 우리가 그린 무한대가 무한하길 바란다.

장서율 기자 loveyul01@naver.com

 


솜솜정보통, 남해로 여행을 떠나요!

  산 좋고 물 좋은 특별한 여행지를 찾으시나요? 그렇다면 잘 찾아오셨네요. 지금부터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저의 인생 여행지를 알려드리려고 해요. 여행지의 필수조건은 훌륭한 자연경관, 이색 관광지, 맛있는 음식 아니겠어요!? 그런데 이 모든 걸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면요...? 저는 오늘 여러분의 일일 가이드가 돼 한국의 보물섬 ‘남해’를 여행시켜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훌륭한 자연경관부터 감상하시죠. 제가 남해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한 이곳은 ‘다랭이 마을’입니다. 이름부터 너무 귀여워요. 다랭이라니! 근데 다랭이 마을까지 가는 길은 조금 멀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남해의 푸른 바다와 곳곳에 지어진 예쁜 펜션들을 구경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도착해 있을 거예요. 다들 멀미는 괜찮으신가요? 이제 해안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내릴 시간입니다. 상쾌한 바람이 반기네요. 파랗게 일렁이는 파도는 일상 속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릴 만큼 시원합니다. 계단식 논들도 넓게 펼쳐져 있어 마음이 탁 트이지 않나요? 저에겐 난간에 걸쳐 사진을 찍다가 휴대폰을 놓칠 뻔한 아찔한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이색 관광지 ‘독일마을’로 가보겠습니다. 독일식 건축물과 예쁜 경관은 ‘정말 독일에 왔나?’라는 착각이 들게 만듭니다. 여러분 출출하진 않으신가요? 독일마을에는 먹거리들이 정말 많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소시지와 맥주인데요. 마을을 산책하다 사 먹은 소시지의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탱글탱글한 식감과 함께 어우러지는 불향의 궁합은 정말 최고였어요.

  이 여행은 저에게 눈과 입을 모두 만족하게 해준 힐링 그 자체였답니다. 여러분은 저의 일일 가이딩 어떠셨나요? 이제 우리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됐네요. 남해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는 시간이 되셨길 바라며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여행객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천서윤 수습기자 1000seoyun@naver.com

 


내가 사랑했던 단 하나의 유튜버에게

  나는 유튜버 ‘잭스갭(Jack’s gap)’의 오랜 팬이다. 지금은 유튜브가 활성화되며 ‘유튜버의 팬’이 되는 문화가 익숙해졌지만, 내가 그들을 처음 좋아하기 시작한 건 바로 8년 전. 국내에선 유튜버의 팬이라는 개념이 낯설었을 시절이었다.

  내가 그들을 알게 된 건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소개 글을 통해서였다. 그렇지 않아도 심심하던 찰나에 그들의 영상을 하나둘씩 보다 보니 나는 단숨에 그들의 매력에 빠졌다. 영국의 일란성 쌍둥이 잭과 핀이 순전히 본인들이 만들고 싶은 영상을 제작하는데, 이 자유로움에서 나오는 재치와 진실성이 기자를 매료시킨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언어의 벽’이 있다는 것. 한 문장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영어가 지나가 버리는 게 아닌가! 그렇지만 나는 이들을 향한 팬심으로 형제의 영상을 무한 정주행하며 그들과 더욱 가까워졌다.

  잭스갭은 선한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큰 꿈을 실현하는 도전의 장이었다. 10대의 나는 그들이 펼치는 도전 정신을 열렬히 응원했다. 그리고 그들처럼 의식 있는 개인으로 세상에 서고 싶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

  형제는 더 이상 잭스갭으로 활동하고 있지 않다. 나는 그들의 결과물을 유튜브라는, 대중에게 비교적 가볍게 소비되는 공간에서만 선보이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어느 순간 채널에 영상이 올라오지 않았을 때도 그들이 더 큰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크게 슬프지 않았다.

  최근 형제가 기후 위기에 대해 전달하는 미디어 플랫폼 ‘earthrise’을 설립해 영상 제작자 겸 환경운동가로 활동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이를 접하자마자 ‘정말 그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유튜브 채널을 들어가 업로드된 영상들을 쭉 보며, 그들이 이룬 성장 서사의 한 편에 함께 존재했다는 사실에 벅차오름과 동시에 홀가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시작부터 현재까지 유튜브를 유명세를 위한 공간이 아닌 꿈의 실현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한 유튜버, 나의 인생 유튜버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김다연 수습기자 redbon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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