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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그러는 척 서로 힐끔대는 거 너무 설레.” 대학생 A 씨는 누구보다 타인의 연애에 진심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애청자다. 그러나 사실 이건 그만의 사정이 아니다. 현재 한국은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2022년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국 만 19~49세 미혼자 1,200명 중 절반 이상이 연애 관련 프로그램을 시청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정해진 숙소에서 합숙하며 각자의 사랑을 찾아가는 출연자와 이를 관찰하는 시청자. 우리는 어쩌다가 타인의 연애에 열광하게 됐을까.

현실의 연애를 컨트롤 C+컨트롤 V 
  보통의 영화, 드라마에서의 연애를 떠올려 보자. 방해꾼의 등장, 그리고 이를 보란 듯이 극복하는 연인은 반드시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그러나 이 낭만적이고 완벽해 보이는 전개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사랑 뒤에 존재할 무수한 감정 묘사가 생략돼 있다는 점이다. 과연 그들은 단 한 번도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벌인 적이 없을까. 서로에 대한 권태감으로 잠시 연락을 멈춘 경험이 있지 않을까.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달랐다. 누구도 구태여 취급하지 않았던 사랑의 뒷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비춘 것이다. 이들은 불안, 후회, 동정, 질투 등 다양하게 발현되는 사랑의 형태를 숨김없이 보여줬다. 헤어진 연인과 함께 출연하는 티빙(TVING) <환승연애2>의 출연자 성해은은 전 애인에게 남은 미련을 털어내지 못하고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린다. 또 다른 출연자 이지연은 전 애인 앞에서 “널 제일 사랑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는데?”라고 말하며, 동정 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감정에 휩쓸려 울고 웃고 새로운 사랑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푸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채찍과 당근을 주고받다
  그렇지만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늘 사랑만 받는 것은 아니다. 시청자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방송이라면 가차 없이 등을 돌렸다. 넷플릭스 시리즈 <솔로지옥>의 출연자들은 평균 이상의 외모와 스펙을 갖춰 현실보단 환상 속 인물에 가까웠다. 실제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방영 이후 방송 업계로 진출하는 출연자의 수는 적지 않았다. 이러한 행보는 해당 프로그램이 출연자들의 개인 홍보 또는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매운맛’ 설정을 고집한 IHQ <에덴: 본능의 후예들>도 첫 화부터 출연자들의 과감한 노출과 신체 접촉이 가미된 촬영본을 편집 없이 내보내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에 블로거로 활동 중인 B 씨는 ‘상품적으론 성공을 거뒀지만, 계보 측면에서는 고민 없이 만든 연애 리얼리티의 퇴행이다’라며 씁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반면 혐오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연애의 다양성을 외친 이들도 있다. 올해 7월, 웨이브(Wavve)에서는 남자들의 연애 이야기를 다룬 <남의 연애>와 LGBT가 출연하는 <메리퀴어>를 선보였다. 두 프로그램은 사회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지만 금기시되던 소수자의 이야기를 방송이라는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도전이다.

N포세대들의 사랑 공식은 
  이처럼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도전과 실패 그리고 흥행을 거듭하며, 변화를 꾀하고 있다. 방송 업계의 특성을 고려해봤을 때, 점점 늘어나는 프로그램 개수는 우리에게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오락거리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남의 연애에 과몰입하는 걸까. 

  “현생 살기도 바빠요. 연애는 그림의 떡이죠.” A 씨는 누구보다 연애가 궁금한 대학생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N포세대에 속하는 대한민국 청년이다. 최근에는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에서 나아가 인간관계, 내 집 마련이 좌절되고, 꿈과 희망까지 놔버린 ‘7포 세대’까지 등장했다. 결국, 암울한 사회에 가로막힌 젊은이들은 실제 연애보다 효율적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택했다. 돈, 시간, 감정 낭비는 적고, 대리 설렘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청년 입맛에 맞춘 최적의 ‘연애 대체재’였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은 타인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억압됐던 욕구를 충족시켜 불안과 긴장을 제거한다’고 말했다. 온 정성을 다해 타인을 사랑하는 화면 너머 사람들. 그리고 그들에게 ‘나’를 대입하는 N포세대. 사람들이 연애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이유마저도 사랑처럼 달콤하고 씁쓸하다.

송영은 기자 syet05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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