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글 쓸 때 슬럼프 오면 어떻게 해요?” 얼마 전 모교에 학과 멘토링을 나갔을 때 받은 질문이다.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온몸의 피가 그대로 멈춘 듯한 기분이었다. 애써 태연하게 ‘저는 슬럼프 오면 써질 때까지 안 써요. 안 쓰고 영화도 보고, 다른 책도 읽으면서 쉬어요.’라고 대답했다. 그 뒤에 부연 설명까지 붙여서 장황하게. 그런데 집에 오고 나서도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것이다. 슬럼프. 나는 당장 내 앞에 놓인 슬럼프를 어찌하지 못했다. 그런 주제에 몇 살 어린 동생에게 제멋대로 조언한 것 같아서 며칠이고 계속 꺼림칙했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았고, 머릿속으로 수백 가지의 미래를 그렸다.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을 때, 그 모든 것을 글 속에서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올해처럼 쓰고 싶은 것이 없었던 적은 처음이다. 한창 입시를 겪을 때, 매일 습작을 하느라 고생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매일 샤워를 하며 한두 가지 이상의 상상을 하던 것이 당연한 일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버스에서 창밖을 내다봐도,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수많은 사람을 지켜봐도.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땐, 어떻게 해서든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벗어나려 아무리 애써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온종일 전시회를 보고 나서도 감상평 한 줄을 적기가 어려웠고 영화를 보고 나서도 뭐라 후기를 남길 수조차 없었다. 오늘은 정말 뭐라도 써야지 결심하고도 멍하니 앉아있다가 까무룩 잠들어버리길 몇 날 며칠이고 반복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다시 쓰고 있다. 다시 상상하고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메모장에 옮긴다. 나를 슬럼프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어느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냥 전부 잊는 것이다. 슬럼프를 겪고 있다는 것부터 이젠 다시 써야 한다는 부담까지 전부 다. 

  사람들은 자신이 슬럼프를 겪는다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그 시간 동안의 지체와 도태를 두려워하고 스스로에게 빨리 이겨내야 한다는 부담을 안긴다. 그리고 그 부담은 납덩이처럼 허리춤에 매달려 자신을 가라앉게 만든다. 부모님의 조언, 선배의 조언, 내 롤모델의 조언, 이런저런 방법으로도 안 된다면 한 번만 모든 걸 잊어보자. 내가 슬럼프를 이겨내는 중이라는 것까지. 망각이 가장 좋은 극복이 될 때도 있다.

이찬희 학생 논설위원 (문예창작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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