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갑을문고' 곽준호 팀장, 문정국 디렉터

  서울 월곡동,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곳에는 다른 세계로 통하는 듯한 신비로운 공간이 있다. 바로 서점 <갑을문고>다. 갑을문고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월곡동을 지켜오며 수많은 사람에게 책에 관한 저마다의 추억을 선물했다. 독자의 취향을 세심하게 고려한 카테고리들, 책 표지에 짧은 감상평이 담긴 책들까지. 이처럼 월곡 안의 작은 오두막 같은 서점을 운영 중인 곽준호 팀장과 문정국 디렉터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갑을문고를 운영하고 있는 곽준호라고 합니다. 서점의 전반적인 관리와 더불어 큐레이션 시스템의 큰 구상을 담당하고 있어요.
  : 저는 갑을문고에서 디렉터를 맡고 있는 문정국입니다. 쉽게 말해 단행본에서 이뤄지는 큐레이션이나 기획을 총 책임지는 역할이죠. 곽준호 팀장님은 갑을문고라는 공간을 통해 제가 기획하고 구상한 것들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계세요. 

갑을문고는 어떤 서점인가요. 동덕여대 학우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갑을문고만의 특징이 있다면요
  : 저는 갑을문고를 책을 판매하는 서점, 더 나아가 책을 통해 느낀 경험을 함께 사유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현재 서점에 소개돼있는 책들의 표지에는 작은 메모가 하나씩 붙어 있는데요. 각 메모에는 큐레이터들이 책을 읽고 느꼈던 감정이나 다양한 사연이 담긴 글이 쓰여 있어요. 이처럼 서점을 방문해주시는 손님들에게 저희의 생각들을 같이 공유하는 것이 갑을문고만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 또 저희는 단행본 10권을 구매한 손님에게 1권을 책을 직접 큐레이션 해 선물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사실 이 프로그램은 올해부터 시작하게 됐는데, 이를 통해서  큐레이션 책을 받으신 분들이 꽤 많아요. 10권을 구매하시면 손님의 취향을 알아볼 수 있는 설문지를 작성하고, 저희는 그 설문을 토대로 해당 손님에게 맞는 책 한 권을 선물해 드리는 거죠. 

갑을문고를 운영(담당)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 사실 저는 정말 우연한 계기로 시작하게 됐어요. 서적 업계랑은 전혀 관련이 없는 기계공학을 전공했거든요. 대학 시절 역시 ‘지나가는 대학생 1’ 정도의 생활이었어요. (웃음) 그렇게 취업 준비를 하고 있던 찰나에 아버지께서 서점을 인수하게 되는 상황이 생겼죠. 서점을 안정화하는 목적으로 제가 잠깐 투입된 거예요. 처음에는 1년 정도만 있다가 “내 꿈을 찾아서 떠나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매력적인 일이었어요. 무언가를 운영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그려 나간다는 게, 또 동료들과 생각을 공유하면서 맞춰나간다는 게 재밌어서 계속 일하다 보니 벌써 5년이 흘렀네요. 
  : 저 같은 경우도 서점과는 관계가 없는 상경 계열을 전공했어요. 졸업 후에 기자 준비를 조금 했지만 말이에요. 그러니까 저희 둘 다 어떻게 보면 그냥 뚝 떨어진 애들이죠.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생을 걸어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면접도 아마 입구에 서서 봤을 거예요. 저는 카운터에서 책 읽고. (웃음) 

갑을문고 곳곳에 전시돼있는 여러 그림, 포스터들이 인상적입니다. 서점 안에 이렇게 다채로운 볼거리들을 함께 두신 이유가 있다면요
  : 사실 손님분들이 이곳에 오셔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끔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이 공간 자체가 되게 밋밋했죠. 전형적인 옛날 서점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천장은 석고보드에 바닥은 대리석인. 
  :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시대의 저편, 약간 그런 느낌?
  : 그래서 사실 그 부분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걷어낼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때 서점 자체를 하나의 전시 공간처럼 보이게 하면 어떨까 하는 해답이 떠올랐죠. 방향이 정해진 뒤부터는 서점의 느낌과 어울리는 포스터들을 수집하면서 걸어놓기 시작했고, 손님들이 갑을문고를 특별한 서점으로 여겨주시길 바랐던 것 같아요. 

서점에 들어서서 여러 공간을 찬찬히 둘러보다 보면, 책 표지에 쓰여진 짧은 문구들이 눈에 띄는데요. 이러한 방식은 어떻게 구상하시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 솔직히 말해서 그 메모에 단순히 도서의 정보를 전달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책 정보는 책 표지나 책 뒷면, 하다못해 인터넷을 켜도 출판사에서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책에 관한 ‘감상’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또 크래프트지의 지면이 그리 넓지 않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걸 다 담으려고 하지 않고, 책의 핵심을 관통할 수 있는 짧은 문장들로 구성하게 됐죠. 더불어서 독자들이 ‘혀굴림’을 생각해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혀굴림은 어떻게 보면 리듬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글을 읽을 때 묵독을 하던 어떤 소리를 내어서 읽던, 읽는 사람으로서 혀가 어떻게 굴러가냐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거예요. 

갑을문고에서 현재 진행 중인 큐레이팅 서비스 ‘스타더스트’는 어떤 시스템인가요
  : 조금 어려울 순 있겠지만, 스타더스트는 인간 사유의 흐름을 시각화해서 하나의 길로 연결하는 시스템입니다. 기존에 진행했던 크래프트지 기반의 메모 큐레이션 서비스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지기도 했죠. 그렇기 때문에 스타더스트가 새로운 개념은 아니에요. 구축하게 된 계기는 조만간 한계에 도달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 있었어요. 물론 외부적으로는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지만. 예를 들자면, 커다란 원고지에 각자 다른 말을 하는 생각들이 가득한 거예요. 말은 좋은 말인데 다 다른 소리를 하는 거죠. 이러한 사유의 흐름이 결국 손님 입장에서는 “다 좋은 거 알겠는데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라는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 그렇게 스타더스트를 만들게 됐죠. 글을 쓸 때도 두 문장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 경우 이들을 연결해주는 어떤 문장이 필요한 것처럼, 스타더스트는 그 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시스템인 거예요. 

디렉터님께서 특별히 마음이 가는 크래프트지의 문구가 있다면요
  : “대화를 앞선 다름의 체념은 슬펐고, 끝에 직감은 모든 걸 무너뜨렸지. 그런 폐허를 찾아온 당신의 움푹함은 이 소설들로 말을 걸고 싶게 만들어. 함께 견뎌줘, 세상을, 사랑의 역사를.” 제가 이 문장을 애정하는 이유는 4년 반이라는 시간의 무게에 있습니다. 짧은 문장인데도 불구하고 쓰기까지 4년 반이 걸렸죠. 그 시간 동안 저는 실패의 역사를 쌓기도 했고, 그리고 그 시기를 굳건하게 기다려주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4년 반 만에 처음으로 ‘당신’이라는 존재와 그 주변의 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어요. 그전까지는 단지 이성적으로만 생각했던 거죠. 물론 시간이 흐르면 문구가 또 바뀔 수 있겠지만 지금은 제일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문장입니다. 부끄럽네요.

책을 대하는 데 있어 디렉터님만의 신념 혹은 철학은 무엇인가요
  : 신념이라기보다는 책을 대할 때 유념해야 하는 부분인데, ‘책 뒤로 숨지 말 것. 그리고 자신이 책을 납작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살피고, 무엇보다 이것들을 마주할 당신의 시선을 생각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마지막으로 책을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을 내서 책을 보는 게 사실 어려운 일이잖아요. 최소 몇 시간 이상은 투자해야 하는 건데. 근데 그 시간들이 단순히 사라져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내면이 단단해지는 시간이라고 확신해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책 자체를 읽어야만 하는 과제가 아니고 하나의 안식처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현실이 너무 힘겨울 때, 그냥 편하게 책 한 권 펴고 읽으면서 쉬셨으면 합니다. 
  : 저는 드릴 말씀이 “그럼에도 서로를 긍정할 수 있도록 당신을 살피며, 사유와 선택을 지속하겠습니다”. 끝! 감사합니다. 

장수빈 기자 subin53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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