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N번방 사건의 피해자 스물다섯 명 중 손해배상 소송을 낸 사람은 단 한 명.(2022. 09. 09. 기준) 피해자가 소송 서류에 자신의 개인정보를 필수로 적어야 한다는 법률 때문이다. 위 사건을 저지른 범죄자 조주빈은 지난해 10월 미성년자 성 착취물 제작 및 유포 혐의로 징역 42년 형을 받은 뒤, 강제 추행 혐의로 추가 재판 중이다.

  이처럼 제1의 N번방 사건이 아직 갈무리되지 않았지만, KBS는 지난달 29일 제2의 N번방 사건을 보도했다. ‘엘(L)’이라는 이름의 이번 용의자는 앞선 사건과 마찬가지로 텔레그램을 이용한 성 착취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채팅방이 폐쇄적으로 운영됐던 지난번과 달리, 한꺼번에 여러 채팅방에 영상을 올리는 등 과감한 유포 방식을 보였다. 더불어 N번방 사건을 파헤친 주역 ‘추적단 불꽃’을 사칭해 “개인정보 노출을 막아주겠다”며 14살 남짓한 아이들에게 성 착취물을 촬영하도록 협박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삽시간에 퍼져나간 영상은 텔레그램을 넘어 여러 커뮤니티로 유입됐고, 이는 피해자들이 엘의 ‘명령’에 반(反)하지 못한 결정적 이유로 작용했다.

  청소년의 미성숙함을 볼모 삼아 성을 착취하는 범죄는 이미 몇십 년 동안 수없이 되풀이됐다. 이러한 형국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1997년,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빨간 마후라 사건’이 떠오른다. 당시 15세였던 피해자의 집단 성폭행 장면이 촬영된 영상은 남학생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공유됐다. 심지어 유명 남자 연예인 A 씨가 해당 영상을 거래한 적이 있다고 스스로 언급할 정도로 그 파급력이 컸다. 하지만 사건의 형량은 겨우 보호관찰 2년으로, 오늘날의 솜방망이 처벌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아동 성 착취물 6,954개 제작’ 최찬욱, 징역 12년 형.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 손정우, 징역 1년 6개월 형. 그리고 지속적인 불법 카메라 설치에도 이름조차 밝혀지지 않은 교사 B 씨까지.

  모두가 분노하고 있는 지금도 남초 커뮤니티 F에서는 “사실상 N번방도 대부분 SNS에서 벗은 사진 올리던 애들이 걸린 거잖아”라며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글이 올라온다. 명백한 범죄를 바라보면서도 그들은 비판의 총구를 피해자에게 돌리고 있다. N명의 피해자가 N번씩 등장하는 요즘, 가해자에게 엄중한 처벌을 내리는 것만이 우리 사회의 썩어 문드러진 환부를 도려낼 수 있는 방법이다.

최보영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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