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영 책 수선〉 책 수선가 재영

 

 

  서울 연남동, 한적한 주택가 골목에 자리 잡은 이곳에서는 매일같이 조용한 탄생이 이뤄진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책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해주는 <재영 책 수선>의 이야기다. 올겨울 방영되는 SBS 드라마 <트롤리>에 자문으로 참여하기도 한 ‘책 수선가’ 재영 씨를 만나 그의 ‘수선’ 이야기를 들어봤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망가진 책을 고치고, 새로운 책도 만드는 책 수선가 재영입니다. <재영 책 수선>을 4년째 운영하고 있어요.

<재영 책 수선>은 어떤 곳인가요
  <재영 책 수선>에서는 책과 더불어 지류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수선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책 수선’이지만 사실은 지류 보존의 역할이 더 큽니다. ‘수선’이라는 명칭은 보다 쉬워서 선택했어요. 복원, 보수와 같은 단어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어려운 작업 같잖아요. 대신 옷 수선, 구두 수선은 비교적 익숙하죠. 이처럼 지류 보존이라는 영역과 대중 사이의 거리감을 줄여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책 수선가가 된 계기가 있나요
  사실 처음부터 책 수선가가 되려던 건 아니었어요. 저는 원래 한국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학부 졸업 후에는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미국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학과를 고민하던 중, 페이퍼 메이킹과 북아트라는 세부 전공에 눈길이 갔죠. 한국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학과였기에 무턱대고 도전했는데 준비 없이 도전한 일이라 그런지 손기술이 많이 부족하더라고요. 그때 교수님의 추천으로 지료 보존 연구실에서 일하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을 습득해 현재 책 수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재영 책 수선>에서 진행되는 책 수선 과정이 궁금합니다
  정말 어려운 질문이에요. 책마다 파손 유형이나 원인이 제각기이기 때문에 과정을 특정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책을 완전히 해체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분만 찢어져 작업이 금방 끝날 때도 있거든요. 그렇지만 공통적으로는 책 의뢰가 들어오면 파손 원인을 파악하고, 이후에 책 수선을 진행합니다.
  이 중에서도 저는 책 파손의 원인을 파악하는 단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꼭 수선해야 하는 부분과 아닌 부분, 혹은 수선을 추천해 드리고 싶은 부분 등 세부적으로 나누죠. 이를 위해 의뢰인과도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손님마다 책을 수선하는 목적이 각양각색이거든요. 책과 관련된 의뢰인의 사연이나 추억, 감정들을 세세하게 여쭤보는 편이에요. 마치 수선을 위한 단서를 모으는 느낌이죠.

책 수선 일을 시작하고 나서 생긴 직업병이 있으신가요
  어쩔 수 없는 관절염? (웃음) 항상 긴장된 상태로 몰입해야 하다 보니 체력 관리에 신경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히려 일을 시작하고 좋아진 부분도 있어요. 저는 태생적으로 성격이 굉장히 급한 편이에요. 하지만 책 수선은 성격이 급한 사람은 할 수 없는 작업입니다. 기다림의 시간을 필수적으로 견뎌야 하거든요. 처음에는 이러한 시간을 참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아 힘들었어요. 하지만 일에 적응이 되고 나니, 여유를 가지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아요.

<재영 책 수선>을 다녀간 책 중 기억에 남는 책이 있나요
  아무래도 첫 의뢰를 받은 책이 기억에 남습니다. 요즘은 나오지 않는 커다란 판형의 국어대사전이었는데요. 의뢰인께서는 국어대사전만이 유년 시절의 유일한 놀거리였다고 하셨어요. 신기하게도 현재 국어와 관련된 일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상태가 많이 안 좋은 책이었는데, 의뢰인은 수선을 마친 책을 보며 ‘어릴 적 친구가 돌아온 것 같다’고 하셨죠. 그 말에 마치 뒤통수를 맞는 것 같았습니다. 저의 책 수선 작업이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에서 나아가 한 사람의 추억을 다루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날의 깨우침을 바탕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이라는 책을 출판하시고, 관련 전시도 진행하셨습니다. 해당 전시를 구상하며 유념하셨던 점이 있다면요
  전시 중에서 ‘마음껏 낙서하는 책’은 예전부터 진행해보고 싶은 작업이었어요. 저는 요즘 책이 너무 신성시되고 있다고 느껴요. 책은 편하게 볼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독서의 경험이 넓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억지로 책을 망가뜨릴 필요는 없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책을 깨끗하게 보고 싶어 하잖아요. 이곳에서는 낙서하고 싶은 욕구를 참지 말았으면 했습니다.
  재밌는 것은 해당 책에 남겨진 문구들이었어요. 어떤 분께서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의 한 대목을 읽고 ‘나도 이렇게 책에 둘러싸여 죽고 싶다’라는 감상을 남겨주셨어요. 그런데 다른 분께서 마치 댓글을 달듯 비슷한 내용으로 전개되는 책을 추천해주셨더라고요. 책을 통해 대화하는 것 같아 참 재밌었죠. 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낙서해본다. 근데 생각보다 짜릿하고 좋다’는 말은 제 의도를 알아주신 듯해 기억에 남았습니다.

최근 전자책의 등장으로 종이책 소비가 줄어든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종이책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분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종이책과 전자책이 적대적인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전자책은 그저 책을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매체일 뿐이죠. 최근 들어 많은 분께서 종이책의 멸종을 걱정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실 아직 유통되고 있는 종이책들은 수없이 많아요. 또, 전자책으로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종이책으로 소장하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하고요. 이처럼 두 플랫폼은 충분히 상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출판업계 분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요.

대학생들을 위해 책 한 권 추천해주신다면요
  온종일 책을 다루다 보니 사실 집에서는 책을 쳐다보고 싶지도 않아요. (웃음) 그런데도 최근에 『꿈꾸는 책들의 도시』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어요. 책이 주제가 되는 판타지 소설인데, 공부하느라 지친 대학생분들이 가볍게 읽기 좋을 것 같아요.
한편으로 제가 대학생이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시를 많이 읽어보는 것을 추천해요. 저는 어린 마음에 있어 보이고 싶어 읽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돌이켜보니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어릴 때 접한 시를 나중에 다시 읽어보니 느낌이 많이 달랐거든요. 풍부하게 해석해볼 수 있는 문학인 시를 많이 접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재영 책 수선>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책 수선이 좀 더 일상적인 일이 됐으면 좋겠어요. 옷이 맞지 않으면 옷 수선집을 쉽게 가듯, 사람들이 책 수선에 대해 낯설게 느끼지 않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현재 혼자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물론 혼자서 일하는 것의 장점도 많지만, 사업을 확장시키는 데 한계를 느껴요. 그래서 동료와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책 수선 기술을 가르치고 싶기도 해요.

마지막으로 동덕여대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학생은 정말 고민이 많을 시기죠. 어제 했던 고민을 오늘 또 하고 있기도 할 겁니다. 이러한 시간이 힘들 수 있지만, 잘 이겨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꼭 건강하게 고민하시길 바라요.
  그리고 책 수선에 관심이 생기신 분들께는 국내에서 관련 정보들을 찾기 어렵지만, 이에 당황하지 말고 다양한 길을 찾아보시길 바란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도 미술을 전공했고, 업계에는 문헌정보학, 화학 등 다양한 전공자들이 있거든요. 책 수선 분야로 향하는 길은 활짝 열려있으니, 많은 공부를 해보시길 바라요. 혹시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연락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책 수선 분야를 어려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김한비 기자 hanb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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