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중요하고 책임감이 요구되는 어떤 자리에 오르게 되면 처음에는 좀 부족할 수도 있지만, 점차 그 자리에 맞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게 된다는 말이다. 특정한 지위에 오른 사람이 비록 노력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일정 부분 타당한 점이 있다. 자리에 따라 정보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낮은 지위에 있다가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더 많은 정보가 들어온다. 숲 속의 나무 아래 있으면 그 주변의 풀과 곤충과 동물 등 작은 생명체들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산 위에 올라서면 숲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산 정상에서 숲을 보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와, 멋지네. 내 눈 밑으로 펼쳐지는 광경이 이렇게 광활하고 아름답고 좋구나!”라고 감탄하고 감상만 하는 이. 그는 그냥 꼭대기에 올라선 것에 만족하고 그 자리를 즐기다가 하릴없이 내려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 마냥 자리가 사람을 만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 맞지 않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의 이익만을 챙길 뿐, 감당해 내야 할 책무들을 수행하지 못하고 결국은 물러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 해내려는 의지가 없다면, 지난날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직책에 요구되는 업무와 관련된 많은 것들을 차근차근 배워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 직무를 잘 수행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여기에 무슨 성장이 있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겠는가?

  얼마 전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해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나서 혼잣말 비슷하게 했다고 하는 우리 대통령의 욕설 파문이 한동안 시끄러웠다. 이와 더불어 대통령 선거 기간 내내 정쟁거리로 등장했다가 한동안 잠잠했던 야당 대표의 욕설까지 다시 소환되기도 하였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라는 직위는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의 자질 여부를 떠나 우리나라 최고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위치이다.

  한 나라의 최고의 위치에 오르면 일반 국민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접하게 된다. 그 정보를 잘 이해하고 제대로 활용할 때 나라가 바르게 운영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에 걸맞은 의지력을 갖춰야 하고 동시에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의지와 노력은 대통령이나 정당 대표와 같은 정치적 리더십의 정상에 있는 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한 대학의 총장이건 총학생회장이건 동아리의 대표이건, 리더십의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논어 공야장(公冶長)편에 위나라 대부인 공문자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민첩해서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敏而好學 不恥下問, 민이호학 불치하문)”라고 한다. 논어 술이(述而)편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 삼을 이가 있다.(三人行 必有我師, 삼인행 필유아사)”라는 말도 있다. 리더의 자리에 있는 이들은,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모두는 아랫사람에게까지라도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성장하기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는 않는다.


이재현(ARETE 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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