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명의 여성이 우리 곁을 떠났다. 지난달 14일, 저녁 8시 56분경 신당역 2, 3번 출구 쪽 여자 화장실을 순찰 중이던 역무원 A 씨가 직장 동료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강남역 살인 사건,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성폭력 사망 사건, 인하대 성폭력 사망 사건 그리고 신당역 살인 사건에 이르기까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잔혹하게 죽임당하는 ‘페미사이드(Femicide)1)’ 릴레이는 끝도 없이 계속되고 있다. 얼마나 그리고 언제까지 죽고 다쳐야 여성이 인간답게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안전, 그리고 젠더 불평등의 문제
  지난 7월 24일에 있었던 연합뉴스 인터뷰에 따르면 여성가족부 김현숙 장관은 인하대 성폭력 사망 사건에 대해 “안전의 문제지, 또 남녀를 나눠 젠더 갈등을 증폭시키는 건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즉, 해당 사건을 성별 간의 갈등 문제로 바라보기 어렵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단순히 대학가 안전 문제로 축소하는 것은 옳지 못한 판단이다. 응당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가 빚어낸 페미사이드 범죄이기 때문이다.

  한국여성의전화가 공개한 ‘2021년 분노의 게이지: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 내 여성 살해(살인·살인미수 포함)는 260건, 피해자의 주변인이 다치거나 살해당하는 경우는 59건이었다. 하루 약 한 명의 여성이 주변 남성에게 생명을 위협당한 것이다. 또한, 이들의 범행 동기 중 ‘이혼·결별을 요구하거나 재결합 만남을 거부해서’에 해당하는 건수는 살인·살인미수 합계 319건 중 85건으로 ‘홧김에, 싸우다가 우발적’ 항목보다 총 40건이나 높은 값을 보였다. 이는 여성 살해가 순간적으로 벌어지는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이어진 폭력의 연장선임을 알려준다.

반복되는 비극, 방관하는 국가
  여성 살해의 맥락을 읽지 못한 사회는 수박 겉핥기식 처벌을 마련했다. 인하대 성폭력 사망 사건이 발생한 후 교육부는 대학 성폭력 재발 방지를 위해 캠퍼스 내 보안을 강화하고 대학생을 대상으로 성폭력 특별교육을 추진할 예정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실상은 성폭력 예방 교육 차원에서 2차 가해와 불법 촬영에 대한 공문을 추가해 전국 대학에 보내는 정도로 그쳤다.

  이러한 구멍 뚫린 조치는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국가의 안일함은 그대로 오늘날 ‘여성 살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일례로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성폭력 사망 사건 발생 1년 전, 피해자 C 씨가 소속된 공군본부의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 참여율은 99%와 100%를 나란히 기록하며 공공기관의 전체 평균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뒤 여성가족부의 현장점검을 통해 이 완벽에 가까운 점수는 완전한 허상임이 드러났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규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으며, 재발 방지대책은 단순 교육과 워크숍으로 때우는 형식일 뿐이었다. 이윽고 올해 7월 19일, 피해자 C 씨가 근무했던 제20전투비행단 소속 부대에서는 또 다른 여성 간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신당역 살인 사건도 다를 바가 없다. 해당 사건의 가해자 전주환(31, 남)은 2019년부터 스토킹범죄를 저질렀다. 350건에 달하는 문자와 불법 촬영에 시달렸던 A 씨는 지난해 10월 7일, 전 씨를 협박 및 만남 강요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에 경찰은 전 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이를 기각했다. 이때 A 씨는 한 달간 경찰의 범죄피해자 안전조치를 받았다. 그러나 전 씨에게 접근금지 명령, 긴급응급조치, 잠정조치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에도 경찰은 특이사항이 없다고 판단해 피해자를 보호하는 조처를 따로 하지 않았다. 끝내 전 씨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처벌법)과 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 등 5개의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하루 전날 1시간 10분가량 신당역에서 머물며 A 씨를 기다렸고, 뒤쫓아가 흉기를 휘둘렀다.

  22년 만에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은 왜 그를 보호해줄 수 없었을까. 본지는 지난해 3월 김태현 살인 사건을 기점으로 시행된 해당 법안의 한계를 알아보기 위해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김다슬 정책팀장에게 자문했다. (본지 보도 2021년 5월 3일 제521호 6면) 김 팀장은 스토킹처벌법의 한계점으로 피해자의 처벌 의사가 있어야 처벌이 가능한 반의사불벌죄를 따른다는 점을 꼽았다. 김 팀장은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합의 혹은 협박받는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며, 이로 인해 또 다른 피해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우려의 목소리는 그렇게 현실이 됐다. 작년 10월 13일 직위 해제된 전 씨는 A 씨에게 연락해 여러 차례 합의를 근거 삼아 협박을 일삼았다. 본 사건이 공론화되자 그제야 법무부는 지난달 16일 스토킹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신속히 추진할 계획임을 밝혔고, 국회 역시 계속 미뤄오던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을 소관 상위임원회에 상정했다.

  여성 살해의 빈틈은 법뿐만이 아니다. ‘좋아하는데 그걸 (A 씨가) 안 받아주니까’, ‘사회생활과 취업을 준비했을 우리 서울 시민’. 지난 9월 16일,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시정 질문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이상훈 서울시의원의 발언과 A 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사법부의 판단은 사회에 만연한 힘패시(Him+Sympathy)2)를 압축하고 있다. 피해자 여성이 아니라 가해자 남성을 지지하는 그들의 태도는 ‘2차 피해’를 끝없이 양산한다.

  실제로 작년 7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 사건 처리 매뉴얼’이 규정한 2차 피해 행위 중에는 ‘정당한 이유 없이 여성폭력 가해자를 옹호하거나 두둔하는 행위’가 포함돼있다. 뿐만 아니라 A 씨가 사망한 다음 날 서울교통공사(이하 교통공사)는 내부 종합상황보고에 ‘특이사항 없다’라고 적어 사회적인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일일업무보고에는 ‘직원 사망’을 가장 낮은 단계의 재해 수준인 ‘Level –1-’로 표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교통공사의 처리도 ‘정당한 이유 없이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사소한 것으로 취급하는 행위’,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려는 행위’임으로 2차 피해 항목에 해당한다. 현 사회 속에서 여성 살해의 피해자는 수많은  ‘2차 가해’로부터 무사할 수 없다. 

여성 혐오 범죄의 종착역은
  지난달 29일, 기자는 본교 정문 앞에서 ‘신당역 살인 사건 추모·스토킹범죄 피해자 보호 강화 대학가 서명운동’을 진행하는 청년진보당 홍희진 대표와 소속 임원진 박민회 씨, 김예은 씨를 만났다. 홍 대표는 이번 서명을 통해 △스토킹범죄 피해자 보호 조치 강화 △여성 대상 범죄의 가해자 강력 처벌을 윤 대통령에게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내용으론 △공공기관 및 공기업 대상 성인지 교육 강화 △순찰업무 2인 1조 보장 △스토킹범죄 피해자 보고 수사 방안 마련 등 피해자 보호 조치 강화 △스토킹처벌법 개정이 있다. 그는 “신당역 살인 사건을 통해 이전 재판에서 이뤄지지 않은 스토킹범죄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재검토가 들어갈 것”이라며 “늘 이렇게 피해자가 나와야 국회나 정부가 뒤늦게 대응하는 상황에 착잡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2주라는 시간은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발걸음을 옮겨 기자는 본교가 위치한 월곡역에서 응암 방면의 지하철을 기다렸다. 6개의 역을 지나면 신당역이었다. 매일 타는 6호선인데도 자꾸 다리가 주춤거렸다. 개찰구에서 신당동 고객안전실을 지나 2, 3번 출구로 향하는 통로 중간 지점쯤, 화장실 앞에는 신당역 살인 사건 피해자 A 씨를 기리는 추모 공간이 마련돼있었다. 정면에서 바라보자 차곡히 쌓인 흰 꽃다발들과 수백 개의 메모지가 빼곡했다. 눈에 띄는 메모를 읽어가다 뒤를 돌아봤다. 기사로 접했던 신당역과는 달리 평범하고 고요했다. 화장실을 오고 가는 시민들이 기자를 계속해서 지나쳐가고 있었다.

1) 페미사이드(Femicide): 여성(Female)과 살해(Homicide)를 합친 말로, 여자라는 이유에서 혹은 여자라는 점을 노리고 살해하는 것. 여성에 대한 혐오 및 증오범죄도 이에 포함됨
2) 힘패시(Him+Sympathy): 권력자인 가해자 남성과 피해자 여성이 있을 때 권력자 남성에게 이입하고 연민하는 상황

송영은 기자 syet05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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