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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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직업과 점점 오르는 물가 속에서 당신은 무엇을 먼저 포기할 것인가. 타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과 그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지키고 싶은 사람. 영화 <소공녀> 속 등장인물 미소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집중하며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에 대한 두 기자의 상반된 시선을 알아봤다.

 

미소, 그 씁쓸함에 대해

  집 –10,000 가계부에 과감히 한 줄을 긋고 월세방을 나선 미소의 웃음은 아름답다. 그는 일상생활의 필수 요소인 의식주에는 관심이 없다. 마음에 두는 건 오직 위스키, 담배, 사랑뿐. 안온한 집과 포근한 옷 대신 4,000원짜리 담배와 위스키 한 잔으로 간신히 마음을 채우는 미소는 대학 시절 함께 밴드를 했던 친구들의 집을 오가며 생활한다.


  그러나 ‘같이’라는 단어 아래 빛났던 젊은 날은 갔다. 대기업에 입사한 문영과 담벼락 높은 집에서 가정을 꾸린 정미, 고된 시집살이를 하는 현정과 한 차례의 이혼을 겪은 대용, 그리고 가족과 함께 사는 록이까지. 각기 다른 현재를 살며 집‘은’ 갖춘 그들 앞에 집‘도’ 없는 미소가 나타난다. “너 아직도 담배 피워?”, “너 아직도 위스키 마셔?”라는 물음은 미소의 마음을 들쑤신다. 자유롭던 대학생 신분과 달리 책임질 것이 생긴 친구들에게 하룻밤을 청하는 모습은 미련해 보이기도 한다. 10년이라는 세월에 담뱃불은 힘없이 꺼졌고, 위스키 잔은 엎어지고 만 것이다.


  친구들의 날카로운 말보다 냉혹한 것은 현실이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사회에서 자신의 선호를 우위에 두는 것을 낭만이라 여기기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돈을 벌 수 있는 능력과 최소한의 사회적 관계는 취향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이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대인에게 안정적인 수입과 집 없이 자신의 이상만을 고수하는 미소의 인생관은 그저 위태로운 일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미소는 남자친구에게 “난 너만 있으면 행복해”라고 외친다. 과연 미소는 진정으로 행복할까. 문영의 회사로 향하며 마주친 대학생 밴드부는 추억을 되새기는 매개가 된다. 그러나 그럴 여유가 없다는 듯 현실로 복귀한 미소는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미소가 변함없는 모습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의 행복이 아닌 그 시절 행복했던 ‘미소’에 대한 그리움일지 모른다. 잠깐의 만족을 위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어두기보단 한 번쯤 거창한 꿈을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
 

최보영 기자 choiboyoung01@naver.com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세요

  집이란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쉼터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잠만 해결하는 장소일 수도 있다. 영화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에게 집은 좋아하는 것들이 비싸지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포기할 수 있는 선택지다. 하룻밤을 재워 주며 대뜸 결혼하자는 록이에게 미소는 말한다. “집이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난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


  미소는 친구들의 집을 떠돌고 가사도우미로 일당을 받으며 생계를 유지한다. 어려운 사정에도 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 그이지만, 결과주의적 사회는 미소에게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의식주에서 ‘주(住)’를 포기하고 기호 식품인 ‘주(酒)’와 담배를 선택하는 모습은 모순적이고 현실 감각이 결여된 듯 보인 것이다. 


  그러나 집의 유무가 행복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20년 동안 월급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 대출 이자로 나가야 하는 상황 속에서 ‘집이 감옥 같다’며 울먹이는 대용의 모습은 집이 있어야 안정적이라고 말하는 사회의 잣대와는 달리 매우 불안정해 보인다. 이는 위스키와 담배, 남자 친구만 있으면 충만한 행복을 느끼는 미소와 대비된 모습으로 제시되며 관객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개인의 취향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가장 먼저 매도된다. 그 취향이 사치품으로 생각된다면 더욱 쉽게 짓밟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미소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확고한 취향을 좇는 행동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몸소 보여 주고 있다.


  영화 <소공녀>는 미소의 삶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정형화된 성공과 행복의 이미지로 한 사람의 인생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할 뿐이다. 그 누구도 ‘걱정’이라는 가면 아래 타인의 삶을 지탄할 수는 없다. 미소를 안타깝게 여기는 우리의 삶은 사회가 만들어 낸 기준에 의해 자신의 행복을 포기한 결과일 수도 있다. 과연 우리는 미소를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안나영 수습기자 anana27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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