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장만 더...!” A 씨의 방에는 똑같은 앨범 여러 장이 비닐만 제거된 채 쌓여간다. 그 옆 휴대폰에서는 좋아하는 아이돌의 곡이 담긴 플레이리스트가 24시간 반복 재생된다. 이는 아이돌 팬의 평범한 일상에 지나지 않지만, 환경적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현재 생산되는 대부분의 앨범 케이스와 CD는 플라스틱 소재이며, 커버와 구성품은 코팅지로 제작돼 재활용이 불가하다. 또한 환경부에 따르면 음원 데이터를 전송하는 데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약 2억~3억 5,000만kg으로, 1시간 동안 음악을 듣는 경우 2.5개의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쓰는 것과 같다. K-POP에 대한 애정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의 환경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기업이 쏘아 올린 앨범 사재기
  글로벌 K-POP 음악차트 ‘써클차트’에 의하면 작년 한 해 K-POP 실물 앨범 판매량은 5,708만 9,160개(상위 400위 기준)다. 이는 우리나라 인구인 5,162만 8,117명을 넘긴 수치로, 9월까지 집계된 2022년 실물 앨범 판매량은 벌써 6,000만 개에 달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똑같은 CD가 든 앨범이 이렇게나 많이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두 가지 요인은 포토카드와 팬 사인회다. 앨범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포토카드가 무작위로 들어있다. 그렇기에 원하는 포토카드를 갖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나올 때까지’ 앨범을 사들여야만 한다. 또한 앨범을 사면 팬 사인회 응모권이 부여되기 때문에 당첨률을 높이기 위해 수백 장의 앨범을 구매하는 팬들도 있다. 앨범 판매율을 높이기 위해 소비자들의 간절함을 이용한 기업이 과잉 소비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초록 부름에 응답하라
  이와 같이 과열된 K-POP 문화와 함께 야기된 환경 파괴 문제, 하지만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재고하고 건강한 소비 형태를 만들어가기 위해 애쓰는 이들도 있다. 바로 2021년 3월, 전 세계 K-POP 팬들이 주도해 취미와 동시에 지구를 지킨다는 명목하에 출범한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이다. 

 

△케이팝포플래닛이 ‘멜론은 탄소맛’ 캠페인 참여 독려를 위해 유튜브에 게시한 영상이다
△케이팝포플래닛이 ‘멜론은 탄소맛’ 캠페인 참여 독려를 위해 유튜브에 게시한 영상이다

  케이팝포플래닛에서 현재 진행 중인 캠페인 ‘멜론은 탄소맛’은 국내 스트리밍 기업에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스포티파이, 유튜브 뮤직, 애플뮤직과 같은 해외 스트리밍 기업은 이미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데이터 센터를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그저 계획에만 그칠 뿐 아직까지 구체적인 실현 방안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에 해당 플랫폼은 이번 달 9일, 캠페인에 참여 의사를 밝힌 팬이 1만여 명을 넘자 청원과 성명서를 각 기업에 전달해 멜론, VIBE의 재생에너지 전환 목표를 받아냈다. 
 

  환경을 살리기 위한 K-POP 팬들의 움직임이 확산되자 엔터테인먼트사도 ESG 경영으로 화답했다. 올해 8월 JYP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 최초로 ESG 경영 보고서를 발간해 플라스틱 실물 CD를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디지털 기반 앨범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디지털 기반 앨범이란 앨범 구입 시 포토카드만을 실물로 전달하고 제작 비하인드 영상, 가사집 등은 디지털 코드를 통해 받는 방식이다. 지난 1월 발매된 빅톤의 세 번째 싱글 앨범 ‘Chronograph’도 포토카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1Takes’ 앱으로 시청할 수 있는 ‘플랫폼 앨범’을 시도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친환경’, 이대로 괜찮을까
  그러나 급속도로 퍼진 ‘친환경’의 물결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도 했다. SM은 11월 9일부터 23일까지 ‘SMile for Earth’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아티스트의 손글씨를 새긴 대나무 칫솔과 케이스, 광목 파우치를 판매했다. 대나무 칫솔은 분해되는 기간이 짧고 소각될 때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적다는 면에서 기존 플라스틱 칫솔의 훌륭한 대체제로 꼽힌다. 그러나 제작 과정 및 소각·매립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온실가스와 해외 배송으로 인한 방대한 탄소발자국 등을 고려했을 때 ‘그린 워싱’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실제로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 B 씨는 “환경에 도움이 되지 않겠다 싶어도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글씨가 프린트됐다는 문구를 보니 결제창으로 손이 향할 수밖에 없었다”며 친환경으로 포장한 기업의 상술을 지적했다.

 

  지난달 개최된 ‘인천 펜타포트 음악 축제’는 쓰레기와 탄소 배출량 감소를 목표로 푸드존에서 다회용기를 사용하고 벼룩시장 등 친환경 팝업스토어를 운영해 3일간 총 27만 개의 일회용품을 절감한 바 있다. 이처럼 행사는 물론이고 용기내 챌린지, 제로 웨이스트 상점 등 일상에서도 친환경이 성행하고 있는 요즘. 수면 위로 떠오른 환경 문제를 외면하고 아이돌 산업의 성과만을 위해 달리는 기업에게 K-POP 팬들은 외친다. “죄책감 없이 K-POP 할 권리를 보장하라!”

최보영 기자 choiboyoung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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