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노트북 앞에서 몇 번을 다짐했습니다. 담백하게 쓰자고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칫 너무도 감정적인 글이 돼버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시작이 더뎌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잘 쓰고 싶다는 욕심만 앞서네요. 기쁜 마음에 술술 쓸 줄 알았던 퇴임사도 여전히 똑같이 헤매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학보사의 기자로, 더 나아가 편집장으로 생활하는 일은 늘 헤맴의 연속이었습니다. 낯선 사람과 부딪히며 정보를 얻어내는 일, 중심을 갖고 조리 있게 글을 써 내려가는 일, 문맥과 표현을 점검하고 퇴고하는 일, 그리고 구성원의 이견을 조율하고 결정 내리는 일까지. 무엇 하나 확신을 가지고 임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정체를 느끼며 괴로워하기도 했습니다. 뭘 위해 이토록 애쓰고 있을까, 부담감에 울어버린 날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과거가 된 지금에서야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 망설임과 불안함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냈단 걸요. 헤맨다는 건 고민이 많다는 뜻이고, 고민이 많다는 건 그만큼 진심이라는 거겠죠. 늘 마음을 다해 헤맬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는 모든 일에 굉장히 의미를 두는 사람입니다. 편집장이 되고 난 뒤부터는 늘 마지막에 의미를 두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회의, 마지막 조판, 마지막 퇴고 그리고 이 퇴임사는 기사 형식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글이 되겠네요. 솔직히 많이 아쉽습니다. 다시 하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미련도 남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 모든 과정을 해왔다는 것에 무엇보다 큰 의미를 둬보려고요. 스스로를 칭찬하며 씩씩하게 마무리하겠습니다. 기자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일들은 끝이 나더라도 그 본질은 끝이 아니니까요.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도 다져봅니다.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은 항상 많았습니다. 그래서 학보사의 소속원이 됐을 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이 가장 기뻤습니다.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게 뿌듯했습니다. 그런 일을 이어 나가며 세상에 더 열린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건 그다지 어렵지도 않고 망설일 필요도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도 몸소 느끼며 매 순간 감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유롭게 목소리를 낸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진리와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매번 제 안의 가장 강력한 신념을 따랐습니다. 저는 항상 사람을 되새겼습니다.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일을 사람들끼리 모여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솔직히 지금까지 해왔던 성과들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수많은 얼굴들이 지나갈 뿐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언제나 저의 큰 이유가 돼줬던 얼굴들에게 전합니다. 진부하지만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요. 무너질 뻔했던 순간에 계속할 수 있었던 건 다 덕분입니다. 가끔 그들은 자신이 나한테 얼마나 큰 영향을 줬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다면 맘껏 자부했으면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덜 괴롭고 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소소하지만 아주 힘든 바람입니다. 하나의 욕심을 더해서 그 삶에는 저도 조그만 이유이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더 나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글 쓰고 생각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담백하게 쓰자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결국 또 감정적인 글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치지 않으려고요.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열심히 퇴고를 해왔는데 이번 한 번만큼은 괜찮지 않을까요? 

  기사는 고치면 고칠수록 좋아집니다. 어떤 글이라도 마찬가지라고 하네요. 그런데 가끔은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의 글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도 마찬가지겠죠. 갈고 닦으면 완전해질지는 몰라도 덜 온전해집니다. 이 글을 지금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저 자신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완전해지려는 노력은 이어가되 그 과정에서 온전한 나를 잃지 않길 바랍니다.


전감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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