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인의 노래처럼 계절이 지나가는 요즘 하늘이 가을로 가득 차 있네. 동아 너도 아무런 걱정 없이 가을 속의 별을 다 헤아리며 이 가을을 나고 있겠지? 영화를 좋아하고 글쓰기도 좋아했던 너, 구태의연한 자기소개서와 독후감들 속에서 네 글은 얼마나 빛났던지, 학생들이 꼭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준 과제의 속 깊은 뜻을 파악한 네 글로 인해 나는 얼마나 안심을 했었는지...네가 알까? 

  동아야...오랫동안 다닌 학교를 드디어 졸업하고 원하던 직장에 취업한 네가 아무 기별 없이 인문관을 찾아온 뒤로 시간이 꽤 흘렀구나. 의외였던 만큼 정말 반가웠던 내 마음이 오롯이 전달되기에는 내 표현이 좀 약했지? 네가 수업마다 보여준 자기이해의 성장을 내가 얼마나 대견해하는지, 너의 내면의 힘이 자라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네가 이런 성장을 멈추지 말고 지속해줄 것을 내가 얼마나 응원하는지 전하고 싶었는데 갑작스런 너의 방문에 놀란 탓인지 여러 수업을 통해 쌓았던 우리 사이의 친분을 대놓고 드러내지 못했어. 

  늘 진지했던 너를 처음 만난 건 3학년 1학기 <상담심리학> 수업이었지? 여러 치료이론을 배우고 주요 개념들을 녹여낸 활동을 통해 적용해보는 것으로 이뤄진 수업. 기억나니? 너는 별지를 보태 네 경험과 그에 따른 감상을 자세히 전달하려 애썼던 거. 어떤 활동엔 네 울분이 가득 묻어났고, 정작 너는 덤덤하게 써 내려간 네 초기 기억이 너무나 가슴 아파 한동안 내가 먹먹하기도 했었어. 그리고 이어진 여름방학, 여유로워진 상황과 우연이 겹쳐 꽤 오랜 시간 동안 부담 없이 얘기를 했었지? 

  만났던 장면마다 동아 너는 스스로를 이해하고 내면을 더 깊이 파악하려고 부단히도 노력했었어. 그러자면 네 마음속 추운 기억을 떠올리고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데 용케도 그걸 해내더구나.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다양한 심리검사에 참여한 뒤 해석 원리를 배워 자신의 자료에 적용해보는 <심리평가>, 가족상담 이론을 배우고 관련되는 여러 활동을 통해 가족역동과 그 가족 속의 자신을 이해하는 <가족상담>을 들은 모든 학생이 다 너같지는 않지. 무엇이 널 다른 학생들과 이렇게 또렷이 구별되도록 만든 걸까? 넌 그게 뭐라고 생각하니? 

  너의 성장을 분명하게 확인했던 것은 <집단상담> 수업이었지. 중간고사 이전까지 이론을 배운 뒤 이후부터는 실제 집단상담을 했지. 엄마에게 받는 애정과 돌봄이 충분하지 않다고 서운해하는 다른 집단원에게 너는 네 지난날을 이야기해줬어. 그리고 너를 늘 슬프게 했던 과거의 엄마가 당신으로서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고, 자신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몰랐을 것이라며 그 엄마의 무지를 용서한다고 말했지. 그 순간 네 말은 가족으로 인한 생채기를 떠올렸던 집단원 모두를 따뜻하고 포근하게 감싸 안았었어. 동덕여대 재학 기간 동안 이렇게 자기이해라는 심리적 자산이 많아진 너는 그 자산을 바탕으로 얼마나 더 큰 부자가 돼가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어느 날 문득 갑자기 또 인문관을 방문해주지 않으련? 우리 그때는 학교 밖으로 나가 더 솔직하고 푸짐한 이야기를 나눠보자. 내 수업을 듣는 모든 학생들의 심리적 자산이 이전보다 조금 더 불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힘을 내볼게.

강지현 (사회과학대학 아동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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