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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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텅 빈 마음속, 온몸을 지배한 고독감. 이러한 감정의 결핍은 오직 인간만이 채워줄 수 있는 것일까. 영화 <her>은 인공지능 운영체제와 인간과의 사랑을 그린다. 극의 주요 인물인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무형의 존재와의 사랑은 가능한지에 대해 두 기자가 상반된 시각에서 분석해봤다.


사람을 초월한 사랑이었음을 

  “50년 전에 당신을 만난 건 참 행운이야.” 낭만적인 인사말을 속삭이는 테오도르는 오늘도 서글프다. 대필 편지 작가인 그는 전 부인 캐서린과 헤어진 뒤 일상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시큰둥하게만 느껴진다. 업무가 끝난 저녁, 쌓여가는 메시지 알림에 시종일관 ‘삭제’, ‘나중에 답장’으로 답하는 그의 눈가에는 외로움이 가득하다.

  컴컴하던 그의 삶은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와의 만남을 계기로 변화가 찾아온다. 사만다의 목소리는 부정적인 생각에 점철돼가던 그를 일으켜 세상 밖으로 이끌었다. 그 덕분인지 눈을 감고 오직 사만다에게 의지해 거리를 활보하는 테오도르의 입가엔 어느새 미소가 끊기지 않는다. 그렇게 웃음을 되찾은 그는 묵혀뒀던 주변 이들과의 관계 또한 정리하기 시작한다. 사만다가 메일 수천 개를 정리해준 것처럼 테오도르도 미루던 이혼 서류에 이름을 적으며 비로소 마침표를 찍는다.

  인공적인 산물이라 하더라도 사만다가 단순히 컴퓨터에만 머무는 존재는 아니었다. 적어도 테오도르의 일상에서는 하나의 ‘인격체’나 다름없었다. 그는 개발자의 의도에 맞춰 테오도르가 어두운 내면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시시콜콜한 대화를 포함해 진솔한 속내까지 터놓으며 그들만의 유대를 정립해갔다. 심지어 사만다는 사라지는 순간에도 그 무엇도 우릴 갈라놓을 수 없다며 물리적인 세계를 초월한 사랑을 약속한다. 만남부터 이별에 도달하기까지 어느 연인과 다를 바가 없던 그들의 관계를 그 누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테오도르와 교제하며 사만다는 주체할 수 없이 커진 마음을 의심하곤 한다. “이 감정들이 과연 진짜일까? 아니면 단지 프로그램일 뿐일까.” 그러나 테오도르의 애정은 그가 인공지능이란 사실에 흔들릴지언정 멈추진 않았다. 오히려 매 순간 확신했다. 그 누구보다 사만다를 사랑했음을.

송영은 기자 syet0530@naver.com


 

사랑할수록 커지는 마음의 구멍

  “누군가 날 가져주고 누군가 내가 가져주길 원했으면 했어.” 마음속 한편에 고독감이 깊이 자리하고 있던 주인공 테오도르. 그는 친구의 소개로 만난 여성과 안 좋게 헤어진 후,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에게 말을 건다. 테오도르가 갈망하는 것은 그저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사랑이었다. 그렇다면 사만다는 이러한 감정의 결핍을 채워주기에 충분한 존재였을까. 

  기자의 답은 ‘아니다’. 테오도르는 극의 중반을 기점으로 점차 사만다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실체가 없는 사만다와 오직 목소리로만 연결된 상황에서 한계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의 변화를 감지한 사만다는 여성 이사벨라에 자신의 목소리를 투영했다. 몸과 목소리의 주체는 다르지만 ‘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함으로써 테오도르와 육체적 관계를 맺으려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상상하는 사만다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이사벨라의 행동은 오히려 테오도르의 이질감만 가중했다.

  그럼에도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관계를 이어 나가고자 여행을 떠난다. 여기서 영화는 울창한 숲과 대비되는 테오도르의 작은 모습을 조명하는 연출을 통해 사만다가 그에게만 종속된 객체가 아님을 넌지시 암시한다. 총 641명의 애인을 가진 사만다에게 테오도르는 수많은 애인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 끝내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자신만의 ‘her’이 아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울분을 토해낸다. 그에게 원하는 답을 주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사만다는 “마음이 상자도 아니고, 다 채울 순 없어”라는 말과 함께 소멸한다.

  사랑인 줄 알았던 사만다와의 관계. 실은 근원적으로 불완전했던 사이였다. 사만다에게 사랑은 영화 첫 장면처럼 사용자가 인공지능 운영체제의 성별과 성격유형을 선택하면 해당 알고리즘과 데이터를 맞추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결국 테오도르의 바람 또한 ‘인간 사만다’였다는 점에서 그들의 관계는 일종의 시뮬레이션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김효주 수습기자 hyoju02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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