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동어르신복지관에서 만 6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도봉동어르신복지관에서 만 6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월곡의 한 카페에 자리한 키오스크다
△월곡의 한 카페에 자리한 키오스크다
△화장실을 ‘RESTROOM’으로 표시한 한 공연장의 모습이다
△화장실을 ‘RESTROOM’으로 표시한 한 공연장의 모습이다

  한국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정보화 시대를 맞이해 차가운 기계들이 우리를 점령했다. 세계로 뻗어가는 대한민국은 이제 한글보다 영어가 자연스러울 지경에 이르렀다.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소비 중심의 활동만이 진가를 인정받는다. 이러한 세태에 쉽게 방치되는 존재는 다름 아닌 ‘노인’이다. 오늘도 노인 소외는 보편화된다. 그들의 더딘 발걸음으로 급변하는 사회를 따라가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환경에서 그들도 삶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지는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자기기 보급은 증가, “쓸 줄 몰라요”
  기자는 우리 주변 어르신들의 디지털 사용 실태를 더 가까이에서 파악하고자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도봉동어르신복지관(이하 복지관)으로 향했다. 이곳은 어르신의 자존감 및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감을 고취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2005년에 설립된 노인여가복지시설이다. △사회교육사업=평생교육 프로그램 △특화사업=맞춤형 스마트폰 1:1 교육 △공모사업=스마트폰 1:2 교육을 진행하며 어르신들의 디지털 활용 능력을 기르는 데 일조하고 있다.

  맞춤형 스마트폰 1:1 교육을 받은 적 있는 김태이(80·남) 씨에게 해당 교육에 대한 만족도를 물었다. 그는 덕분에 좋은 스마트폰 기능을 많이 알게 됐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를 포함한 고령층에게 스마트폰의 길은 좁고도 험난했다. “다음(Daum)이 카카오(Kakao)와 통합되면서 통합 아이디를 사용하라고 뜨기에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핸드폰 가게를 갔더니 새 계정을 만들어줬어요.” 이어 그는 “노인은 사기 전화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어 지인들에게 폰뱅킹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꺼려진다”고 덧붙였다. 복지관에서 김 씨에게 스마트폰 1:1 교육을 진행한 자원봉사자 A 씨에 따르면, “앱 광고가 너무 많이 떠서 어르신들은 본인도 모르는 새 앱을 설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스마트폰을 소지하더라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바깥의 기계는 손안의 기계보다 노인들을 더 곤란케 한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많은 것들이 무인(無人)화되며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키오스크(kiosk)1)다. 농림축산식품부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 외식업체 중 키오스크를 사용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 1.5%, 코로나 이후 2020년 3.1%, 2021년 4.5%로 매년 꾸준히 증가했다. 김 씨에게 키오스크를 이용해본 경험이 있는지 묻자, 그는 “근처에도 안 간다. 손자와 함께 있을 때도 아이조차 사용법을 잘 몰라 결국 결제를 포기했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실제로 노인들은 키오스크 사용에 큰 고충을 겪고 있었다. 작년에 한국소비자원이 20대부터 60대 이상 소비자 500명을 대상으로 키오스크 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 500명 중 233명(46.6%)은 기기를 이용하면서 불편함 혹은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어려운 조작법으로 불편을 겪은 사례는 연령 구분 없이 모두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기기 오류(70.8%)로 인한 불편을 1순위로 꼽은 20대와 달리, 60대 이상의 경우 조작 어려움(53.6%)을 1순위로 꼽았다.

포용하는 미래 꿈꾸는 디지털 리터러시
  김 씨의 경험을 포함한 노인 디지털 소외는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에 관한 논의로 이어진다. 디지털 리터러시란 전자기기를 사용할 줄 아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를 활용하여 수집한 정보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매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발표하는 디지털 정보 격차 실태 보고서를 살펴보면, 2021년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접근수준은 93.1%로, 그중 70대 이상의 디지털 정보화 접근수준은 84.4%이다. 그러나 이들의 디지털 정보화활용수준은 43.3%로 접근수준의 절반을 겨우 넘는다. 이처럼 기본적인 이용 능력만을 습득한 노인들에게 최신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는 무용지물이 돼버린 셈이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정보 이용환경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 맺을 수 있는 능력도 포괄하고 있다. 본교 사회복지학과 이희정 교수는 “디지털 소외가 개인의 경제‧사회‧문화적 불평등을 초래하며 사회적 소외로 이어질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취약 계층의 사회적 고립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유니버설 디자인2)’ 적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교수는 우리나라 디지털 교육에 대해 “고령층 내에서도 디지털 역량과 활용 수준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집단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개인의 능력과 욕구에 맞춰 1:1 혹은 소수의 인원을 대상으로 디지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표했다. 더불어, 그는 정보 기기 사용의 부작용은 노인에게만 한정돼 있지 않기에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은 모든 연령층에서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각 세대 간 삶의 경험은 다를 수 있기에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낄끼빠빠’ 모르는 ‘폼생폼사’ 외국어 표기
  한편, 영어 사용도 노인들의 애로사항 중 하나이다. ‘Open’과 ‘Close’로 표시된 가게 영업시간, ‘Restroom’으로 표시된 화장실 등 어디에나 즐비한 영문 표지판은 영어가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눈앞의 단어가 영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노인들의 상황은 다르다. 복지관 반장과 방학 1동 주민자치위원회 감사를 맡고 있는 김 씨는 “주민자치 회의에서 영어 간판을 한글로 바꾸자는 얘기를 많이 한다”며 고령의 주민들을 대표해 불편함을 호소했다. 외국어가 남발하는 현 상황에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청년층도 마찬가지다. 읽기 쉬운 한글을 놔두고 굳이 왜 영어를 쓰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그렇다면 외국어는 왜 우리나라에서 활개를 치고 있을까. 바로 우리나라가 외국어를 한국어보다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에서 성인 남녀 오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0년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에 따르면 외래어 및 외국어 사용 이유에 대해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서=41.2% △외래어나 외국어로 된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능력 있어 보여서=22.9% △우리말보다 세련된 느낌이 있기 때문에=15.7% 순으로 답했다. 즉, 일종의 고급화 전략으로 외국어 또는 외래어를 남용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간판, 메뉴판 등은 생산자와 소비자 간 일종의 상호교류가 이뤄지는 과정”이며, “외래어 간판이 세계화 시대에 어울린다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지만, 사실 그 간판이나 메뉴판 중 상당수는 언어적 오류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노인들에게 영어를 교육하기보다 외래어를 모르는 모든 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외래어와 한글을 함께 적는 것이 올바르다고 전했다.

함께하는 개인으로서의 우리나라
  이 교수가 본지와의 대화에서 거듭 강조한 부분은 바로 세대 간 공존이다. “청년 세대라고 모두가 같지 않듯 노인 세대도 마찬가지”라는 그의 말처럼 우리는 사람을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 바라봐야 한다. 또한 온전히 각자의 차이를 존중하는 노력을 통해 진정한 연대를 실현해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다. 한국전쟁 이후 어떤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30년 만에 수출 100억 신화를 쓴 위대한 경제 발전을 우리는 ‘한강의 기적’이라 부른다. 그 결실은 1988년, 88올림픽으로 이어졌고, 세계를 향한 문을 열며 약진에 약진을 거듭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찾아왔지만 이마저도 우리나라만큼 빠르게 극복해낸 나라는 없었다. 이렇듯 ‘빨리빨리의 민족’은 쉼 없이 빠른 속도로 국력을 키우고 국부를 창출해냈다. 그러나 성장의 이면에는 언제나 소외된 ‘개인’들이 있었다. 2023년, 이제는 등을 돌려 그들과 마주 볼 차례이다.

1) 키오스크(kiosk): 공공장소에 설치된 무인 정보 단말기. 주로 정부 기관이나 은행, 백화점, 전시장 등에 설치되어 있으며 대체로 터치스크린 방식을 사용함
2) 유니버설 디자인: 성별, 연령, 장애 유무 등에 제약받지 않고 모두가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말함

김다연 기자 redbon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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