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피씨월드코리아/토이테일즈 김갑연 대표

 

“장난감의 가장 소중한 사명은 끝까지 아이 곁을 지켜주는 거야.” 픽사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의 명대사 중 하나다. 하지만 우리의 친구는 낡고, 헤지고, 때론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해버리기도 한다. 그런 인형 환자들에게 새 삶을 선사하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병원, 토이테일즈의 김갑연 대표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무역회사 피피씨월드코리아와 인형 병원 토이테일즈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김갑연이라고 합니다.

피피씨월드코리아는 어떤 곳인가요
봉제 인형을 수출하는 회사로 출발해 벌써 24년째 회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2010년쯤 내수시장에도 관심을 두게 되면서 캐릭터를 디자인해 인형으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죠. 관공서, 국내 기업 또는 대학과도 협업하고 있습니다. 해양수산부의 ‘해랑이’가 대표적이에요.

인형 병원 토이테일즈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내수시장에 뛰어들면서, 인형 제작에 A/S가 필요한 순간이 생겼어요. 몇 년 전부터 케이팝이 유행하면서 아이돌을 본뜬 인형을 제작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졌죠.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를 캐릭터화해 인형을 만드는 거예요. 그 사업이 한창 붐을 일으켰을 때, ‘곰인이’라고 EXO의 멤버 카이를 본뜬 유명한 캐릭터가 있었어요. 당시 곰인이 같은 경우는 독특한 생김새 때문에 표현의 섬세함이 매우 중요했어요. 그런데 인형 대부분이 중국의 대형 공장에서 만들어지다 보니 품질이 고르지 않았어요. 그렇게 보호자들이 찾아와 인형을 성형해가기 시작했죠. 점점 입소문이 퍼지고, 수요가 늘면서 인형 병원 토이테일즈가 시작됐습니다.

‘인형 병원’으로 명칭을 정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수선이라는 말은 쉽게 자르고 붙이는 정도로 가볍게 느껴지죠. 하지만 저희 의뢰인들은 그 농도가 달라요. “제 동생 살려주세요”, “돈이 얼마가 들어도 괜찮으니 목숨만 살려주세요” 이렇게 부탁합니다. 가족처럼 귀중하게 여기는 거예요. 그래서 수선보다는 치료라고 불러요. 주변에 피부과, 성형외과, 정형외과 다양하잖아요. 인형도 똑같습니다. 안과도 있고 이비인후과도 있죠. 사람의 신체 부위는 인형에게도 적용되니, 그렇다면 이곳을 병원으로 하자고 마음을 먹었고 이후 인형 병원으로 공식적인 명칭도 바꿨습니다.

인형 병원을 찾아오는 보호자들의 주 연령층은 어떻게 되나요
20대 중후반이 많아요. 대략 20년 정도 된 환자들이 자주 찾아오거든요. 사실 지금 2030세대는 부모가 본격적으로 맞벌이를 시작한 세대라고도 볼 수 있어요. 어릴 때 부모가 아이에게 쥐여주고 간 인형이 자연스레 애착 인형이 된 거죠. 동생처럼 여기고, 없으면 불안해하고. 그 인형을 지금까지 소중히 갖고 있다가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치료 전 보호자와 상담할 때, 무엇을 위주로 상담하는지 궁금합니다
보호자의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을 우선으로 진행합니다. 가장 흔한 방법은 문자로 사진을 받는 거예요. 그러나 사진상으로는 모든 걸 파악할 수 없어요. 오래된 애들은 천 자체가 상해서 만져봐야 진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되도록 방문을 권장합니다. 제가 모든 걸 결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후에는 보호자에게 원하는 치료를 물어봐요. 예를 들면 실 하나가 튀어나와 있는 경우에도 절대 자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보호자가 있거든요. 모르고 자르면 큰일 나요. (웃음) 알아서 해달라는 경우는 제가 치료 대목을 정합니다.

개원 초창기에 겪으신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기술적인 어려움은 없었어요. 다만, 보통 인형이 오래되면 얼굴이 찌그러지는데, 새로 솜을 넣고 수선하면 천이 펴지면서 새것처럼 형태가 변해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보호자들의 애착이 매우 강하다 보니 그걸 싫어하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나의 손때가 묻어 찌그러진 상태 그대로를 원하는 거죠. 이처럼 매번 다양하고 세밀한 요구사항을 반영하는 게 살짝 힘들 때가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함께한 보호자와 제가 똑같은 눈을 가질 수는 없거든요. 물론 저희는 늘 최선을 다하지만요.

인형을 치료하는 과정에 대해 간략히 알고 싶습니다
우선 치료는 한 사람이 다 하지 않아요. 다섯 명을 기본으로 꾸려진 치료팀은 하는 일이 모두 다릅니다. 상태가 심각해 모든 사람의 손을 다 거쳐야 하는 경우가 있고, 때로는 두 명만 거쳐도 되는 일이 있죠. 우선, 제가 내린 진단을 종이에 꼼꼼히 적습니다. 그런 다음 원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뒤 치료가 진행되고, 끝나면 회복실에서 머물게 됩니다. 이후에는 치료가 완료된 사진을 보호자와 주고받으며 소통하죠. 정성을 담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요.

치료에 있어 가장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고객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원하는 만큼. 안 그러면 사고가 나요. 우는 일도 있고, 원상복귀 시키라고 화내기도 하고. 물론 더 잘해줘서 예쁘다고 좋아하는 보호자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고 보면 돼요.

지금까지 인형 병원을 운영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치료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20대 후반의 딸을 가진 아버지가 오신 적이 있어요. 딸에게 물려준 인형을 보여줬는데 그게 본인의 아버지, 즉 보호자의 할아버지가 남기신 유품이래요. 그 인형을 딸이 가지고 있다가 너무 오래돼 천이 삭으니까 치료를 맡긴 거예요. 최대한 비슷한 천을 제작해 이식하고, 기존의 천은 안으로 뒤집어 복원해 드렸어요. 나중에 따님이 그 인형을 들고 할아버지 묘에 찾아갔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똑같아서, 기뻐서 보여주려고. 그런 경우를 보면 마음이 짠하죠.

대표님께 인형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저는 특별히 인형에 어떤 의미를 가져본 적이 없어요. (웃음)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완구 판매와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한 거였죠. 사실 처음에는 공무원을 했어요. 그 뒤에 들어간 회사가 완구회사였죠. 사업을 하다 보니까 적성에도 맞고, 보는 눈도 있는 것 같고. 또 제가 생각했던 대로 만들어 나가는 게 좋았어요. 거창하게 ‘인형은 나의 무엇이다’라기보다는 이젠 그냥 내 삶의 동반자라고 해야 하겠죠.

대표님만의 경영 철학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진정성을 가지고 하자’입니다. 품질은 모두 실력에서 나와요. 좋은 질과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경쟁하는 것, 그리고 고객과의 마감을 정확하게 지키는 것.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잘 해내는 것이 결국 진정성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래에는 인형 병원의 수요가 더 늘어날 거예요. 젊은 치료사 친구들을 키워서 이 사업을 물려받게 하고 싶어요. 또 한국인이 꼼꼼하고 솜씨가 좋잖아요. 병원도 세계로 뻗어 나가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든 보호자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요
천 자체에도 생명이 있어요. 일종의 수명이죠. 몇십 년 지나면 삭는 게 당연한 걸지도 몰라요. 세탁기나 탈수기 사용은 천에 좋지 않다는 걸 명심해주세요. 좋은 상태를 최대한 오래 유지하고 싶다면 되도록 손빨래하세요. 또 계속 만지다 보면 털이 빠지기 쉬워요. 따라서 옷을 입혀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최대한 적게 만지세요. (웃음)

마지막으로, 동덕여대 학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무엇이든 한 분야에 집중하다 보면 실력도 쌓이고 기회도 찾아오죠. 자신이 상품이 돼야 해요. 난 아직 배고프다는 ‘헝그리 정신’도 중요하죠. 쌓은 노력은 다 자신의 것이 돼요. 목표가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달려보세요.


이지은 기자 jieuny9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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