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해 고민해본 적 있는가. 플라톤은 사랑을 네 가지 종류로 정의했다. 육체에서 기인하는 에로스, 도덕적 사랑인 필리아, 혈족애로도 일컬어지는 스토르게, 무조건적 사랑의 아가페. 당신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으며, 어떤 사랑을 받고 있는가. 

  사람은 태어나 완전히 자랄 때까지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을 경험에서 비롯되는 본능의 일부분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은 스스로 겪은 감정일수록 타인에게 잘 전달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남에게 사랑을 주기도 쉽다. 반대로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은 사랑을  주기 어려워한다. 그렇게 사랑은 주고받는 이들이 고착화됐고, 대가 없는 사랑은 손해라며 손익관계를 따지는 이들도 등장했다. 자신이 받은 사랑도 대가 없는 사랑이었다는 것을 망각한 채 말이다.

  이처럼 무조건적 사랑이 부재한 곳에는 비극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소년부 판사로 재직했던 천종호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가 분석한 소년범 1,875명 중 897명은 부모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더불어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의 논문에 따르면, 교도소 수용자 중 51.2%가 아동·청소년기에 가정폭력을 겪은 이들이었다. 사랑의 부재, 그 끝에는 사회의 균열만이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법’에 대해 배워야 한다. 책 『사랑의 기술』의 저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학습하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불확실의 연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타인과 함께 사랑에 참여했을 때, 비로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받기만 해서는 안 된다. 배려, 존중, 이해를 통해 나눔의 미학을 깨닫고, 대가 없이 사랑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사랑하는 법’이다.

김한비 편집장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