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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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결혼을 통해 완성되기도 하지만, 한계를 마주하기도 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 프란체스카는 남편과 영원을 약속한 뒤 찾아온 낯선 이와 사랑을 나누며 그 감정이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깨닫는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가치 속에서 결혼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 역할에 주목하며 두 등장인물의 관계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선을 알아봤다.

 

결혼, 거창하다가도 볼품없어지는

친애하는 프란체스카,

                         당신을 사랑하는 로버트.

  겉보기엔 평범한 연애편지로 시작하는 책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실은 다소 부도덕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 그리고 이미 결혼 후 두 아이를 둔 프란체스카. 길을 묻기 위해 멈춰선 집에서 마주한 그들은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나눈다. 그러나 프란체스카의 가족이 돌아오며 나흘간의 짧은 사랑은 막을 내린다.

  가족을 기다리며 집을 지키는 프란체스카에 비해 킨케이드는 집이라곤 필요 없어 보일 정도로 자유롭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정반대의 모습을 지닌 이들 이야기는 유려하고 아름답게 서술된다. 이에 독자들은 그저 마음 졸이며 아슬아슬한 사랑을 지켜볼 뿐, 섣불리 둘의 관계에 개입하지 못한다. 이 상황에 있어서 가장 좋은 해답은 프란체스카를 옥죄는 ‘부부’라는 이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한 번쯤은 프란체스카의 기혼 사실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순리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이혼이 어렵지 않았다면, 보다 자유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었다면.

  결혼(結婚)의 ‘결(結)’은 ‘맺다’의 뜻을 가진다. 이처럼 사회에서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자 종착지다. 그러나 프란체스카의 사랑은 결혼으로 마무리되지 않았다. 결혼 이후에도 운명처럼 킨케이드를 만나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리워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남편 리처드가 죽기 전까지 킨케이드를 다시 만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이는 영원을 약속한 남편을 위한 의리이자 의무로 해석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가 삶의 단 한 번만 오는 기회를 막은 셈이기도 하다.

  결혼이 반드시 완전함의 성질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야기의 결말이 아닌 절정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결혼이 주는 안정감, 그 이면에 운명적인 사랑을 쟁취하고 싶다면 결혼이라는 ‘정답’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최보영 기자 choiboyoung01@naver.com

 

환상처럼 흩어지는 사랑

  가정을 꾸리고 고향을 떠나 미국 오하이오주에 살고 있는 프란체스카. 그의 인생은 순탄하고 안정적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남에 대해 수군대기를 좋아하는 마을 사람들과 자신에게 무신경한 남편, 성향에 맞지 않는 오랜 시골 생활까지.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그에게 마을 사람들의 친절함과 가족을 위한 남편의 헌신은 그저 가식처럼 보인다. 때마침 찾아온 낯선 장발의 사진작가, 킨케이드는 나흘 만에 프란체스카의 인생에 깊숙이 파고든다.

  첫눈에 킨케이드에게 매료된 프란체스카는 그에게 가족과 함께 사용하는 공간은 물론 마음마저 모조리 내준다. 두 사람 모두 이러한 상황이 부적절함을 알고도 멈추지 않는다. 배우자와 아이들을 두고 다른 이와 사랑을 나눈다는 점에서 이는 명백한 ‘불륜’이다. 위험한 관계를 지속하면서도 프란체스카는 가정을 깨고 그와 도망갈 자신도, 가족들의 눈을 피해 연락할 의지도 없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부푼 마음을 지혜롭게 다루지도 못한다. 소속된 가정을 정리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모하게 또 다른 사랑을 탐냈을 뿐이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이들의 사랑을 일정 부분 이해하게 된다. 이는 장애 요인이 있으면 애정이 더 깊어지는 현상인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 때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두 집안의 앙숙 관계 덕분에 세기의 사랑으로 예찬받는 것처럼,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역시 프란체스카의 상황으로 인해 이들의 관계가 더 간절하고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짧았기에 빛났고, 이뤄질 수 없어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프란체스카가 가정을 택하지 않고 당시의 감정을 따랐다면 둘은 정말 동화처럼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을까. 나흘간 점화된 마음이 다 소진되고도 서로를 운명이라 부를 수 있는가. 결말을 보고서야 프란체스카는 안정적인 삶을, 킨케이드는 자유로웠던 한때를 그리워하며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그들은 현실적인 상황과 상대의 의사를 고려해 성숙한 선택을 내렸지만, 뒷날을 상상해 보면 이 사랑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안나영 기자 anana27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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