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한 점, 구불대는 선, 명확히 이름 지을 수 없는 모양. 이것들이 모인 그림을 우리는 추상화라고 부른다. 추상화는 사물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내는 것이 아닌 창작자가 느낀 심상을 순수한 점·선·면으로 표현한 그림을 말한다. 이러한 추상화를 제일 처음 그린 사람은 누구일까. 대다수는 칸딘스키나 몬드리안을 추상화의 선구자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보다 일찍 추상화를 그리고 탐구한 이가 있다. 바로 스웨덴의 여성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다.

  힐마는 스웨덴에서 태어나 스톡홀름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신지학에 빠져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시각화하는 그림을 그렸다. 신지학은 신비적인 체험을 하거나 계시받는 경험을 통해 영적인 세계를 알게 된다는 철학이자 종교다. 힐마의 그림을 본 철학자이자 신지학자인 루돌프 슈타이너는 “앞으로 50년 동안 누구도 이 그림들을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신지학’을 추앙하는 ‘여성’이 그린 ‘추상화’는 당시에는 이해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수백 년이 지나서야 이해되는 그림. 그래서 작품을 숨겨야 한다면 화가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그림들이 세상에 밝혀지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힐마는 충격으로 잠시 작업을 중단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림을 그려나갔다. 일생 1,000여 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을 정도로 작업에 열중했다. 2018년 구겐하임 미술관은 ‘미래를 위한 그림’이라는 제목으로 힐마의 회고전을 열었고, 60만 명이 이 전시를 찾아왔다. 은폐됐던 최초가 이해받을 수 있는 시대를 만나 베일이 벗겨진 순간이었다.

  이따금 우리가 하는 일들은 우리를 의심케 한다. 재차 확인받고 싶을 것이고 빛을 받지 못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힐마의 그림이 현대에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계속해서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어제의 내가 그렸기에 오늘도 그릴 수 있고, 그리는 것이 다른 무언가로 바뀌어도 이어 나갈 힘이 생기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숨겨져 있을지라도 우리는 은폐된 우리만의 것을 계속해서 그려나가야 한다. 그것이 최초가 아니라고 오판될지라도, 은폐된 최초에 싸인 베일이 비로소 벗겨지는 순간이 머지않아 찾아오니.

배예진 학생 논설위원 (회화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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