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교정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가 마치 코로나의 종식을 의미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코로나 이전의 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대학에 온 뒤 처음으로 마주하는 활기찬 교정은 그동안에 부재했던 것들을 상기시킨다.

  “그러니까 사람은, 사람이라는 존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혀로 맛보고, 그렇게 감각하는 자체만으로는 도저히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더라고.” 권여선의 소설 『전갱이의 맛』에 나오는 구절이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을 대면하지 못하던 시기에도 나는 여전히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원하면 느낀 걸 쓰고 공유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못내 답답했으며 숨이 막히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가득한 학교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서야 나는 그동안 느낀 답답함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자신이 느낀 것을 타인과 공유하고 싶어 수없이 쓰고 말한다. 하지만 언어라는 소통의 매개체는 굉장히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 지난 몇 년간은 이런 불안정한 매개체인 언어(말)를 보조하는, 아니 어쩌면 보조 그 이상의 역할을 하는 비언어적 소통 수단 사용에 상당한 제약이 있었다. 컴퓨터 화면을 통해 마주 볼 순 있었으나, 화면엔 담기지 않는 호흡이나 손짓 등의 다양한 비언어적 메시지는 전달될 수 없었다. 코로나 이전엔 다들 체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로지 언어로만 내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기가 이리 힘들다는 것을. 이젠 말로 담아낼 수 없는 어떤 에너지와 진심을 전할 수 있다. 텍스트를 사이에 두고 생기던 거리감과 오해를 극복할 수 있다.

  오로지 텍스트로 적어내는 문학을 공부하는 나 역시도 느끼는 모든 걸 텍스트로 옮긴다는 건 정말 어렵다. 소통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으로 언어가 생겨난 지 수천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언어만으론 완전한 소통을 해낼 수 없는 우리 인간의 존재가 보잘것없단 생각도 든다.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처사일 지도 모르겠다. 말이 내 온기와 진심과 뜻을 모두 전한다면 그건 전능한 신(神)일 테니. 우린 한낱 인간이기에 서로를 마주하지 못한 시간을 괴롭게 기억한다. 그렇기에 다시 마주하고 생기와 온기를 느낄 수 있게 된 이 순간을 소중히 여겼으면 한다. 온몸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이 순간을.

이찬희 학생 논설위원 (문예창작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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