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억 원. 한 명의 고립·은둔 청년에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한 명의 청년이 다시 사회로 이행됐을 때 버는 비용이기도 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에서 2020년 추산한 고립·은둔 청년 37만 명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약 555조 원을 지켜낼 수 있는 셈이다.

 

△청년허브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혁신파크 미래청이다
△청년허브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혁신파크 미래청이다

  사단법인 씨즈는 이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히 헤엄치고 있다. 2010년, 대한민국 최초로 청년세대 주도의 사회혁신가 육성을 표방한 이들은 ‘서울시 청년허브’를 위탁 운영하며 청년들과 동행하는 중이다. 여기서 운영하는 온라인플랫폼 ‘두더지땅굴’과 청년 공간 ‘두더집’은 온오프라인에서 고립·은둔 청년 당사자 간의 소통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외에도 현재 진행 중인 사업에 대해 알아보고 청년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씨즈 고립청년지원팀 김영호 팀장과 청년허브 취약청년발굴지원팀 김수진 매니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봤다.

 

△은평구에 위치한 ‘두더집’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습이다 (사진 제공: 사단법인 씨즈)
△은평구에 위치한 ‘두더집’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습이다 (사진 제공: 사단법인 씨즈)

‘두더집’은 어떤 곳인가요
  청년허브에서 작년에 ‘말랑말랑모임터’라는 이름으로 시범 운영했던 청년 공간이에요. 사업을 기획하면서 ‘우리가 청년 공간을 만드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작년에는 ‘서울청년센터 오랑’, ‘무중력지대’ 등 이미 청년 공간이 많았거든요. 없었던 것을 새로 만드는 게 아닌 만큼 차별화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기존의 청년 공간은 대부분 에너지가 충분히 있는 청년들을 위한 장소라는 인식이 있더라고요. 그곳에 방문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에너지요. 그래서 저희는 저활력 청년도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쉼터를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고립·은둔 청년들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만, 집이 반드시 편한 장소가 아닐 수도 있어요. 취업이나 이직을 준비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사회적 관계가 끊어지고 고립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부모님의 재촉은 더 심해지니까요. 그래서 집보다 더 집 같은 장소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두더집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는 곳이에요. 실제로 의자에 앉아 있거나 누워만 있다가 가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청년들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작년 8월에 개소해서 5개월 동안 운영했는데요. 이 근방에 사는 청년들이 올 수 있게끔 은평구 내에서만 소소하게 홍보를 진행했어요. 그런데 서울 전역은 물론 경기도에서도 찾아오셨고 누적 600명 정도가 방문했습니다. 정말 놀랐어요.
  올해는 이용 시간을 개편했어요. 원래 업무 시간에만 운영하던 것을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저녁 8시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했죠. 공간에 방문한 청년들끼리 대화를 시작하면 은근히 시간이 빨리 가서 많이 아쉬워하세요. 이렇게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게 별것 아니게 보일 수 있지만 굉장히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와요. 고립·은둔 청년들의 가장 큰 욕구는 사회적 관계거든요. 이렇게 계속해서 사람을 사귀고 타인의 얘기를 듣고, 자신의 속마음도 털어놓다 보면 특별한 조치 없이도 우울함이 자가 치유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희는 그런 분들을 위해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뿐이에요.

 

  비슷한 사연을 공유하는 그들은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위안을 얻는다. 백수만 출근할 수 있는 가상의 회사, ‘니트컴퍼니’도 바로 이러한 믿음을 토대로 생겨났다. 2019년, 10명 내외로 ‘백수’들을 모집해 활동하던 ‘니트생활자’는 ‘니트컴퍼니’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본격적으로 문을 열었다. 이들은 3~4개월마다 약 100명의 고립·은둔 청년을 채용해 △생활 업무(양치, 이불 개기) △취업 준비 업무(자격증 공부, 시험 준비) △취미 업무(그림 그리기, 산책하기) 등을 수행한다. 소소한 목표를 달성하며 작은 성취감을 얻는 것이다.


  씨즈에서도 지난달 13일부터 ‘신비한 연구일지’라는 챌린지로 고립·은둔 청년들의 소박하고도 대단한 첫걸음을 독려하고 있다. 참여자들은 자체 제작한 캐릭터 ‘럭끼’와 함께 단어 그대로 집에 이끌리는 힘을 뜻하는 ‘집-중력(Home-Gravity)’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게 된다. 이는 힘이 강할수록 집 밖으로 나가기 어렵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고립·은둔 청년이 집에 오랜 기간 머무는 이유는 단지 다른 사람들보다 집-중력이 크기 때문이라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이렇게 씨즈는 과거 만연했고 현재도 존재하는 ‘청년’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사회가 생각하는 청년과 실제 그들의 모습은 어떻게 다를까.

 

고립·은둔 청년은 ‘누구’인가요
  씨즈가 관리하는 블로그 ‘슬기로운 은둔생활’에 보시면 소개말이 이렇게 적혀 있어요. “살다 보면 고립될 수도 있고 은둔할 수도 있습니다.” 유명 대학을 졸업하고도 고립되는 경우가 많아요. 회사에 들어갔다가 적응에 실패하기도 하고요. 혹은 간호학과나 사회복지학과처럼 진로가 정해지는 학과를 졸업하고 취직했는데, 실무에 돌입하니 적성에 안 맞아서 좌절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유달리 한심하고 게을러서 고립되는 건 아니에요.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거죠. 그렇지만 누구나 고립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빠져나올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실패할 수 없는 사회가 됐어요. 정확히 말하면 한 번 실패하면 다시 돌아오기 힘든 사회요. 우리 사회는 특히 나이에 집착하잖아요. 20대 중반에 졸업해서 후반에는 직장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삶의 방식이 정형화돼있죠. 저희가 만난 고립·은둔 청년 중에는 고시생, 공시생분들이 많았어요. 하나의 목표만 두고 5~6년을 공부했는데 시험에 붙지 못해서 결국 은둔하게 된 거죠. 그분들은 당연히 본인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만큼 지식이 쌓였고, 그 과정을 견뎌낸 것만 해도 엄청나게 값진 경험을 한 거라고요.

우리 사회에서 고립·은둔 청년의 위치는요
  “청년인데?”, “가장 힘이 있을 나이 아냐?” 청년 지원 사업을 오랫동안 하면서 이런 말들을 가장 많이 들었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젊은 애들 도와줘서 무엇 하나”, “노력을 안 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비꼬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고립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시선이 보편적이었던 거죠. 2016년에 처음 서울시에서 청년수당을 지급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겨우 50만 원밖에 안 되는 돈을 ‘구직활동에 썼네, 안 썼네’로 말이 많았습니다. 본래 목적은 청년이 어떤 방향으로든 쓸 수 있게 제공하자는 의미였는데 결국에는 성공과 실패, 이분법으로 귀결되는 게 안타까워요.
  지금은 그래도 많이 나아졌죠. 이제 막 청년세대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단계라 시범 운영되는 사업들이 정책화되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4월 13일에 서울시에서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종합지원대책을 발표할 예정이에요. 30일에 그 자료를 봤는데, 그게 이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신호탄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는 청년들을 돌아봐야 할 때
  지난달 20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활동 상태를 ‘쉬었음’이라고 답한 청년층은 49만 7,000명이었다. 이는 2003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쉬었음’은 취업 준비, 진학 준비, 입대 대기와 구분되는 개념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다는 뜻이다. 2019년부터 현재까지 청년층 ‘쉬었음’ 인구는 증가 추세이며 동시에 청년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2만 5,000명 감소한 385만 3,000명을 기록했다.


  이와 함께 ‘청년 고독사’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14일, 보건복지부는 ‘2022 고독사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매년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3,000여 명 중 절반은 50~60대의 중장년층이지만, 계속해서 증가하는 청년 고독사 비율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2030세대의 고독사 원인은 ‘자살’이 압도적이다.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고독사는 △20대=56.6% △30대=40.2%로 전체 연령층 중 청년층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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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청년들의 외로운 죽음은 최근 영화로도 풀어졌다. 지난 2월 8일 개봉한 영화 <다음 소희>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청년 ‘소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직장에서 수많은 실습생 가운데 ‘실적 1등’이 되기 위해 밤새도록 일하지만, 법의 사각지대로 인해 약속된 돈을 받지 못한다. 청년의 순수한 노력에도 사회의 잔인한 부조리는 멈추지 않는다. 소희를 끊임없이 옭아맬 뿐이다. 점차 미소를 잃어가던 소희는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고, 단순 자살처럼 보이는 이 사건을 파헤치던 형사 유진은 말한다. “막을 수 있었잖아. 근데 왜 보고만 있었냐고.”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거친 파도 속에서 청년들은 별다른 해답이 없다. 그저 끝도 없이 밀려난다. 또 다른 ‘소희’가 생겨나는 건 시간문제다. 씨즈와의 지속적인 상담으로 최근 취업에 성공한 은둔고수 A 씨는 김 팀장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일요일만 살았던 저에게 금요일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항상 우울한 일요일을 살아가던 A 씨는 몸이 힘들더라도 내일이 기대되는 금요일을 살게 됐다.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토요일의 재미도 알았다. 니트(NEET), 그 잔혹한 단어가 더 이상 청년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이제는 니트(Knit)처럼 촘촘한 지원 정책을 마련할 때다.


최보영 기자 choiboyoung01@naver.com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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