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입 디자이너 심우진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글을 쓰고, 글자를 디자인하는 심우진입니다. 작년 12월까지 산돌연구소에서 근무했습니다.

타입 디자이너는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요
  여러 사람들이 쓸 수 있는 폰트를 만드는 직업이죠. 비즈니스로 연결을 하자면,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무슨 폰트가 필요한지 찾고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 한마디로 폰트로 먹고 사는 직업입니다.

디자이너 님이 생각하시는 이 직업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가장 클래식해요. 고전이죠. 활자보다 오래된 게 그리 많지 않아요. 의식주 정도만 있겠네요. 그렇지만 의식주는 역사에 얼마 안 나오거든요. 그런데 글자는 돌로 새겨 넣었으니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요. 본질적인 태초의 그래픽을 다룬다는 재미와 자부심이 있습니다.

타입 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역량이나 자질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폰트 하나를 만들려면 아무리 짧아도 6~7개월은 잡아야 해요. 길면 몇 년씩 가죠. 그래서 집요함과 끈기가 있어야 해요. 물론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어요. 모든 영업의 기본, 소통 능력이죠. 말을 안 하는 사람, 거짓말하는 사람, 공격적인 사람, 나를 싫어하는 사람. 누구와도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필요한 정보를 얻어야죠.

타입 디자이너가 되는데 도움이 되는 활동을 추천해 주신다면요
  폰트 한 벌을 만들어 보는 것을 추천해요. ‘한글타이포그라피학교’처럼 폰트 제작을 가르쳐 주는 곳이 있거든요. ‘한 벌’은 한글만 최소 2,350자 정도 돼요. 쉽지 않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벌을 완성해 보는 거예요. 딱 한 바퀴만 완주하면 보이는 게 있죠. 학생들은 퀄리티에 대해 걱정하기 마련인데, 회사에서는 가능성을 보기 때문에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너네가 하는 일 나도 해 봤어” 하며 보여 주는 패기가 중요하죠.

고딕이나 명조 등 언뜻 보기에 비슷하게 느껴지는 폰트들은 세세한 차이를 짚어내는 게 핵심일 것 같습니다. 이런 폰트를 제작할 때 특별히 고려하시는 점이 있나요
  디테일이 무엇을 위한 건지 주목합니다. 예를 들면 명조체는 오래 읽는 글에 쓰는 폰트예요. 그래서 대부분 작게 써요. 글자는 작아야 가독성이 올라가거든요. 이후 명조체를 사용한 글을 읽을 때 어디서 잘못 읽히는지, 언제 오래 읽기 힘든지 파악해서 글씨를 보완하는 게 디테일의 영역이 되는 거예요.

업계 종사자들만이 집착하는 폰트 디테일은 무엇인가요
  사람마다 다르지만 저는 붙는 거, 소위 ‘떡 지는 거’를 되게 싫어해요. 어려운 글자를 예시로 들어 볼게요. ‘웃’, ‘우’에 ‘ㅅ’이에요. ‘웃’과 ‘읏’은 구분하기 힘들어요. 이렇게 언저리에 그 덩어리들이 있어요. 걔네들이 읽다 보면 은근 불쾌해요. (웃음) 그런데 그런 것들을 좀 확실하게 띄워 주잖아요? 그러면 또 글자가 못생겨져요. 제가 집착하는 게 그거예요. 예쁜데 애매해질까, 뚜렷한데 못생겨질까.

각종 행정기관이나 기업에서 자체 폰트를 의뢰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폰트도 브랜드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타입 디자이너로서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나요
  너무 좋죠. 어느 나라의 구청이 전용 서체를 만들겠어요. 어쨌든 독특하다는 거는 주목할 만한 거잖아요. 굉장히 중요한 흐름이고, 세계적으로 드문 일이에요. 경제적으로 얘기하면, 폰트 하나를 만들 때 돈이 많이 드는데, 동양은 글자가 많아서 서양에 비해 개발비가 최소 서너 배 이상 들어요. 근데 기업이나 관공서가 이런 부담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폰트로 브랜딩을 하고, 심지어 이를 통해서 재미를 봐요. 이게 반복되면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이 실력을 쌓을 수 있는 순환 고리가 형성되는 거죠.

2019년 ‘산돌 정체’라는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진행하셨던 프로젝트인지 궁금합니다
  도전입니다. 디자인은 크게 보면 두 개로 나눌 수 있어요. 기존 것을 깔고 만든 디자인과 새롭게 시작하는 디자인. 정체는 후자의 경우예요. 새로운 토대를 만들었기 때문에 참고한 게 많이 없어 힘들었어요. 근데 쉬운 건 하기 싫어서 원초적인 것에서 시작했고요. 이런 폰트는 만드는 것도 큰 명예지만, 한 유형을 만든 것이기에 다양한 폰트가 계속 파생되면서 새로운 계보가 생길 수 있어요. 그래서 이런 폰트는 앞으로도 많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산돌 정체를 소개하는 영상에서 하신 ‘종이에서 전자로 바뀌어가는 흐름에도 장렬하게 싸우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패러다임이 바뀌면 사람들은 그것을 막 쫓아가요. 그런데 그렇게 가면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마무리를 잘하고 가야지, 그냥 놓고 가면 어떡해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간다고 전부 바뀌지 않아요. 그래서 현존하는 것을 잘 정리한 상태로 가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할 때 기존의 바탕이 없으면 뛸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우리 역사를 봤을 때 과연 제대로 된 뼈대를 만들어 놨냐,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아직 만들 수 있는 기반 시설이 존재할 때 이것을 닦아놓고 디지털로 가야겠다. 이런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마지막이다’라고 얘기하고 싶었던 거죠.

마지막으로 타입 디자이너를 꿈꾸는 동덕여대 학생들을 위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단한 결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뭐가 됐든 그냥 막 그려 봤으면 좋겠어요. 대학생은 ‘그냥 해도 되는’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그냥 해야 해요. 사회에 나가서 ‘그냥 했어요’ 하면 곤란해질 수 있지만, 대학생은 그냥 해도 되고, 그게 업인 사람들입니다. 계획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전제로 하는 거잖아요. 아직 경험이 부족한데 어떻게 계획을 세워요. 대학생은 계획보다는 부딪히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얻는 게 더 많을 때예요.


김다연 기자 redbon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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