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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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가 벌레가 된다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떠올려 본 적 있는가. 그레고르 잠자는 하룻밤 사이에 해충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괴상한 모습으로 가족과의 공생을 꿈꾸는 그레고르와, 그를 마냥 반길 수 없는 주변인들. 평생토록 쌓아온 권위와 능력을 상실한 그레고르는 여전히 인간일까. 사람으로 태어나 벌레로 죽은 한 '존재'의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를 두 기자의 상반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럼에도, 인간이었던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잠에서 깬 그레고르는 평소와 달라진 몸의 감촉을 느끼고 당황한다. 하지만 별다른 의심 없이 침대 아래로 발을 디딘 순간 그레고르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음을 깨닫는다. 딱딱한 등, 바스락거리는 껍질, 수두룩한 다리까지. 그는 그제야 자신이 벌레의 모습으로 변했음을 알고 당황한다. 하지만 벌레가 됐다고 해서 생계를 포기할 수는 없다. “가족을 저버릴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있으니까.”

  인간은 어떠한 순간에도 인간으로 존재하는가. 책 『변신』은 존재의 타당성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레고르는 여동생이 방문을 열고 끼니를 가져다 줄 때면 황급히 몸을 웅크려 소파 아래로 도망치곤 했다. 등이 찢어질 듯 고통스럽고, 통통한 배가 터질 것만 같아도 이유는 단 하나, 가족을 위해서였다. 이 모든 행동은 배려에서 비롯됐다. 고통을 감내하면서 타인의 감정을 우선시하는 존재를 우리는 벌레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무료함을 참지 못하고 거실에 모습을 드러낸 그레고르를 향해 아버지는 사과를 던졌다. 등에 음식물이 처박혀 썩어가는 비참한 모습에도 가족들은 그를 동정하지 않았고, 식사를 가져다주던 여동생의 발걸음조차 뜸해져 갔다. 가족의 유일한 기둥이던 그레고르는 쓸모없는 짐이자 혐오스러운 괴물로 전락했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까지 그레고르는 제 죽음으로 가족의 평화를 되찾길 꿈꿨다.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잃었음에도, 그가 여전히 인간임을 보여주는 지점이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현대인의 모습은 벌레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경계선에 놓인 도덕성이란 덕목은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는 요소다. 가족을 위한 생을 살다가, 가족에 의해 숨을 거둔 그레고르는 끝까지 인간다웠다. 상대를 헤아리는 마음을 잃고, 이기적 타인으로 변모하는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성의 종말이다. 이것이 그레고르를 외면한 채 달아난 가족이 되려 벌레에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지은 기자 jieuny924@naver.com


겉은 벌레, 속은 인간?

  “어느 날 아침 어지러운 꿈속을 헤매다 눈을 뜬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의 몸이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충격적인 문장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갑작스레 해충으로 변해 버린 그레고르 잠자의 혼란스러운 생애를 담고 있다. 외판원으로 일하며 성실히 일했던 그는 하루아침에 해충으로 변하게 된다. 일반적이지 않은 겉모습으로 인하여 일자리를 잃는 것은 물론, 가족들마저 그를 멀리한다.

  이같이 우스꽝스럽고 괴상한 소재 뒤에는 많은 시사점이 자리하고 있다. 인간의 형체를 띠고 있지 않으며 노동력까지 잃어버린 그를 과연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책 속에서 인간의 가치는 노동력으로 좌우된다. 과거에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졌던 가장이라 할지라도 현재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상태라면 자본을 축내고 기생하는 해충으로 취급받는다. 이를 통해 돈으로 엮여 있던 허위적 인간관계를 비롯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물질이 지닌 위력이 드러난다.

  한편 해충으로 변한 본인의 모습을 보면 대개는 놀라기 마련이지만, 그는 놀란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다. 더불어,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노력과 의지 또한 보이지 않는다. 그저 기본적인 욕구에만 의지해 동생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며 간신히 연명할 뿐이다. 자신의 존재를 화폐가치에 빗대어 확인해 왔던 그는 본인이 해충으로 변한 것보다 경제력을 잃은 것을 더욱 심각하게 여긴다. 책 말미에는 세속적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느끼기도 하지만, 그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생산력을 잃은 사람은 그저 알맹이 없는 빈 껍데기일 뿐이다.

  겉모습으로 인해 경제력을 잃어 자립할 수 없어진 그는 인간성까지 상실하게 된다. 수동적인 태도로 삶을 이어가고, 자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의 모습은 차마 ‘인간’이라고 칭하기 어렵다.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그레고르. 어쩌면 그는 경제적 굴레에 지쳐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한 것일지도 모른다.

안나영 기자 anana27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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