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한국과 일본 양국 간 감정의 골은 그 어느 때보다 깊었다. 한국을 상대로 단행한 일본의 수출 규제에 한국인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건 ‘NO JAPAN 운동’까지 벌였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곳곳에는 거대한 한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불매 운동을 벌이던 한국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이 연달아 흥행하고, 일본 캐릭터 소비가 유행처럼 번지는 중이다. 시소처럼 변덕스럽게 움직이는 한-일 관계 속, 몸소 느껴본 현지의 분위기는 어떨까. 두 기자가 멀고도 가까운 이웃, 한국과 일본 사이를 분석해봤다.

 

① 일본에서 만난 한국

 길거리에 한글 간판이 가득하고, 상점마다 K-POP이 끝없이 흘러나오는 이곳은 일본의 중심지, 도쿄다. 현재 뜨거운 논쟁의 대상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갈등과 과거부터 이어져 온 혐한, 수출 규제 문제 등 한-일 관계는 좀처럼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하지만 이 같은 사회적 갈등이 무색하게도, 최근 일본에는 한류 열풍이 불며 젊은 세대 사이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다.

△ 시부야 타워레코드에서 K-POP 앨범을 구매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모습이다
△ 시부야 타워레코드에서 K-POP 앨범을 구매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모습이다

 이런 한류의 인기를 현지에서 체감해 보고자 본지가 직접 일본 레코드 샵인 시부야 타워레코드를 방문해 봤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건 입구부터 가득 쌓여 있는 걸그룹 ‘뉴진스’의 최신 음반이었다. 5층에서는 걸그룹 ‘트와이스’와의 콜라보 팝업 카페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내부 공간은 현지 팬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라주쿠의 애니메이션 굿즈 가게 또한 이색적이었다. 매장 곳곳에는 보이그룹 ‘더보이즈’의 포토카드가 진열돼 있었고, 여러 굿즈를 활용해 아이돌 포토카드를 꾸미는 한국 팬들의 문화 또한 함께 설명돼 있었다. 일본 게이오대학원에 재학 중인 한국인 유학생 이정환(27·남) 씨 역시 최근 일본 내 K-POP 열풍을 몸소 실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게이오대학 내에 있는 K-POP 댄스 동아리에 견학한 경험이 있다는 그는 “동아리의 경우 20~30명 정도의 인원수를 유지하는 것이 보통인데, 현재 이 동아리에만 7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며 현지의 열띤 반응을 전했다.

 

△ 신오쿠보의 한국 음식점이 일본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광경이다
△ 신오쿠보의 한국 음식점이 일본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광경이다

 이와 더불어 코리아타운으로 유명한 도쿄의 신오쿠보 길거리 곳곳에도 한글 네온사인과 간판이 즐비했다. △네네치킨 △동대문엽기떡볶이 △설빙 △홍콩반점0410 등의 한국 프랜차이즈 매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며, 인파도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 화장품을 판매하는 매장 역시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눈길을 끄는 것은 따로 있었는데, 바로 걷던 중 우연히 발견한 ‘한국어 자판기’다. 해당 기계는 음료를 하나 구매할 때마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한국어를 QR코드로 알려주는 식이었다. 이처럼 한국 문화와 더불어 한국어를 향한 관심도 높아졌기에, 최근에는 ‘한일믹스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긍정 표현 ‘알았어’와 일본식 종결 어미 ‘데쓰(です)’를 합성한 ‘아랏소데쓰’, ‘귀여워’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키요이’가 대표적이다.

△ 일본 길거리에 설치된 ‘한국어 자판기’의 모습이다
△ 일본 길거리에 설치된 ‘한국어 자판기’의 모습이다

 

② 이제는 YES JAPAN?

 반면 한국의 일본 문화 소비도 만만치 않다. 최근 들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다양한 일본 콘텐츠가 빠르게 유행하고 있다. 누적 관객 수 500만 명을 넘은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에 이어 농구 붐을 일으킨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그리고 유명 일본 일러스트레이터가 창작한 만화 ‘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치이카와)’까지. 요즘 젊은 한국인들의 문화생활에 일본 애니메이션과 캐릭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식생활도 마찬가지다. 최근 서울 한복판에는 일본식 술집 ‘이자카야’를 흉내낸 선술집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실제로 서울 번화가를 걸어보면, 한글 대신 일본어로 가득한 간판과 일본식 인테리어를 한 가게들이 가득해 마치 일본에 온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또한 캔 음료임에도 생맥주 거품을 그대로 재현한 ‘아사히 슈퍼 드라이 생맥주’가 최근 SNS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며 품절 대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치솟는 인기에 힘입어 지난 7월 일본 맥주 수입량은 2000년 이후 사상 최대치에 달했다.

 한편 양지의 문화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한국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지뢰계’, ‘멘헤라’ 등 일본의 음지 문화를 따라한 패션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지뢰계는 모노톤의 옷과 함께 통굽 부츠를 신는 것이 특징으로, 환락가를 떠돌아다니는 일본의 비행청소년들이 자주 입는 패션을 뜻한다. 또한 멘헤라는 영어 ‘mental’, ‘health’, ‘error’의 합성어로 애정결핍을 보이는 사람이 입을 듯한 패션을 일컫는다. 더불어 일본 호스트바 캐릭터 ‘다나카’의 유행으로 홍대에는 일본의 ‘메이드 카페’를 따라 한 카페도 등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비교적 유해한 문화 역시도 성행하는 현 상황에 일각에서는 “일본 음지의 문화를 수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③ 한-일, 이대로 괜찮을까

 급속도로 전개된 문화적 교류 덕일까. 올해 양국 간의 인적 교류 역시 매우 활발했다.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 관광객은 총 66만 명으로, 이는 전체 외국인 방문객의 19.2%에 해당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한국인의 일본 방문도 비슷한 처지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의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올해 상반기 외래방문객 1,072만여 명 중 총 313만 명이 한국인으로, 전체에서 가장 많은 수에 달했다.

 

△ 일본 디지털 영토 주권 전시관에 다케시마 홍보 전시물이 게재된 모습이다
△ 일본 디지털 영토 주권 전시관에 다케시마 홍보 전시물이 게재된 모습이다

 문화적 교류로 인해 서로를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는 남아있다. 바로 영토 및 역사 문제다. 지난 8월 15일, 일본 기상청은 7호 태풍 ‘란’의 북상을 예고하는 기상 정보를 나타내기 위한 지도에 독도를 다케시마이자 자국의 영토로 표기했다. 심지어 일본 영토 주권 전시관에는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전시물을 게시했으며, 디지털 전시관과 해당 유튜브 계정에도 이와 같은 자료와 영상이 올라와 있는 상태다.

 

키노쿠니야 도서 검색대에서 혐한을 검색한 모습이다
△ 키노쿠니야 도서 검색대에서 혐한을 검색한 모습이다

 혐한과 관련된 이슈 또한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1월 후쿠오카에 있는 스시집에 방문한 한 한국인 관광객은 ‘와사비 테러’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사진 속 스시 안에는 한눈에 봐도 비정상적인 양의 고추냉이가 발견됐다. 또, 지난달 일본에선 『한국인으로 태어나 일본인으로 산다-신일본인에 의한 일한 비교론』이라는 혐한 서적이 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실제로 일본 서점 키노쿠니야 신주쿠 본점에서 ‘혐한’이라는 단어를 검색하자 약 4,450개의 관련 서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국내 교보문고 사이트에서 ‘반일’에 대한 도서를 검색했을 때, 207건이 도출되는 것과는 크게 차이 나는 모습이다. 

 ‘사지 않겠다’던 한국과, ‘조센징은 돌아가라’던 일본. 그러나 문화와 관광에 있어서는 이를 잠시나마 잊은 듯하다. 오랜 기간 갈등을 빚어온 두 나라가 보다 의미 있는 발전을 도모하려면 더 이상의 방관은 독이 될 뿐이다. 일본은 2차 가해를 멈추고 역사와 사회 전반에 걸쳐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한다. 한국 역시 과거를 잊은 채 일본의 좋은 것만 누리려는 소비 행태를 경계해야 한다. 가깝고도 먼 일본과 한국, 서로의 밝은 면만 골라 소비하기에 앞서 무엇이 중요한지 먼저 생각해 볼 때다.

김수인 기자 cup0927@naver.com
이지은 기자 jieuny924@naver.com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