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뉴진스'의 멤버 '다니엘'이 뮤직비디오에서 축구 유니폼을 입고 나온 모습이다 ​​​​​​​​​​​​​​ⓒHYPE LABELS
△ 아이돌 '뉴진스'의 멤버 '다니엘'이 뮤직비디오에서 축구 유니폼을 입고 나온 모습이다 ⓒHYPE LABELS

  대학생 A 씨의 장롱은 의류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항상 입을 옷이 없다며 습관적으로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한다. 하지만 그렇게 산 옷은 몇 번 입지도 않은 채 또다시 옷장에 들어간다. 큰 경각심은 없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땐 새로 사 입으면 되니까.

떴다 떴다 한국 유행
  이는 비단 A 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개성보다 유행이 더 중요한 사회에 살고 있다. 지난해 휴먼클라우드 플랫폼 ‘뉴워커’가 실시한 현대인의 최신 트렌드 민감 정도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833명 중 절반을 넘는 이들이 ‘트렌드에 민감하다’고 답했다. 또한, 응답자 중 22.6%가 트렌드 분야에서 ‘패션’에 가장 많은 관심을 표했다. 실제로, A 씨 집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거주했던 미국인 Zaria는 서울의 번화가를 거닐 때면 ‘미국과 다르게 다들 비슷한 패션의 옷을 입고 다녀서 그들만의 개성이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20세기 후반부터 구축되기 시작한 빠르고 효율적인 시스템의 영향으로 자국민들의 문화 수준은 빠르게 변화했다. 그 결과, 한국에는 문화 전반에 걸쳐 금세 ‘떴다지는’ 풍조가 자리 잡았다. 배달 산업의 주가는 하늘을 찔렀고 △대만 카스테라 △인형뽑기방 △흑당 버블티 등과 같은 유행 거리는 우후죽순 생겼다가 사라지곤 했다.

  국내 패션 업계 또한 이 분위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이는 기존 의류 시장에서 통용되던 생산·소비의 법칙을 파괴했다. 패스트 패션은 1~2주에 한 번꼴로 단기간에 신상품을 끊임없이 기획해 새로움을 선호하는 소비자층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친환경인 ‘척’하는 의류업계들
  그렇게 구매된 옷은 재빨리 식는 유행에 맞춰 쉽게 버려졌다. 그리고 버려진 옷들은 오늘날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떠올랐다. 영국의 한 자원순환단체의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매초 쓰레기 트럭 한 대(2.6t) 분량의 옷이 소각·매립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겨울임에도 폭풍이 몰아치고 170년 만에 가장 많은 비가 내리는 등 이상기후 현상을 여러 차례 겪었다. 그 가운데 패션산업은 ‘전 세계로 극심한 환경오염을 초래하는 산업’ 2위에 선정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처럼 환경 파괴의 주요 요인으로 패션산업이 주목받자, 일부 의류 브랜드들은 친환경적 사업방안을 제시했다. 대표적인 패스트 패션 기업 ‘H&M’은 2030년부터 100% 친환경 제품을 개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는 그저 마케팅 수단으로 벌인 ‘그린워싱1)’에 불과했다. 추후 기업들은 친환경 캠페인 기구인 체인징 마켓 파운데이션(이하 CMF)에 의해 고발당했다. CMF 측은 “패스트 패션 기업들이 친환경 제품을 출시하긴 했지만 정해진 기준을 충족하지 않은 채 생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환경에도 코어(core)가 필요해!
  패스트 패션을 진심으로 개선할 의지가 없어 보이는 건 소비자들도 매한가지다. 최근 △바비 코어 △발레 코어 △블록 코어 등 일명 ‘놈코어(normcore) 패션’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바비 인형, 발레, 스포츠의 특성을 적용한 일상복이라는 의미로, 국내의 경우 K-POP 아이돌이 유행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뉴진스’가 뮤직비디오에 축구 유니폼을 입고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놈코어 시대가 열렸다. 편한 소재의 스포츠 유니폼을 입고 나온 코디가 일상에서도 흔히 활용되며 개성 있는 블록 코어(bloke+normcore)룩이 탄생한 것이다. 발레 코어 역시 여성 의류 쇼핑몰 ‘에이블리’에서 3개월 만에 검색량이 293배가량 대폭 증가하며 인기를 방증했다. 본래 코어 패션의 시작은 평범함과 개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이 역시 계속되는 변화 속 부화뇌동하는 소비자들에 의해 유행으로 번져갔다. 이는 유행을 따르지 않되, 평범하지만 개성을 추구한다는 놈코어의 의미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중요한 건 패션과 환경이 공존하는 마음
  그렇다면 진정 미래를 위해 패션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은 ‘안 만들고 안 사는 것’뿐일까. 의(衣)생활은 생존에 있어 필수 3요소 중 하나다. 즉, 앞선 방법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 대안으로, 여기 친환경적 생산과정에 더해 ‘오래’, ‘자주’ 입을 수 있는 의류인 ‘슬로 패션’이 있다. 폐품을 재활용해 가방을 손수 만드는 스위스의 업사이클링 브랜드 ‘프라이탁’은 ‘허투루 돈을 쓰지 않겠다’는 철학으로 가방의 제조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을 통틀어 소비되는 자원을 절약하며 슬로 패션을 선도하고 있다.

  소비자도 이젠 유행을 이끄는 대중에게 마냥 현혹돼서는 안 된다. 지난 학기 패스트 패션 관련 환경 프로젝트를 진행한 정효림(모델 23) 씨는 편하게 오래 입는 ‘빈티지 패션’을 즐겨 입는다며, 우리의 선택이 곧 환경과 밀접해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빈티지 패션 외에도 낡은 옷들을 수선해 입거나 그동안 묵혀둔 장롱 속 옷들을 재판매하는 방식으로 슬로 패션을 실천할 수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가랑비처럼 계속 내리는 실천을 통해 지구를 초록빛으로 물들여야 할 때다.

1) 그린워싱: 겉으로만 친환경 이미지를 갖기 위해 관련 활동을 하는 기업의 행동

김효주 기자 hyoju02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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