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바람이’의 모습이다 ⓒ청주동물원 인스타그램
△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바람이’의 모습이다 ⓒ청주동물원 인스타그램

  미디어 속 동물원은 대부분 따뜻한 이미지로 담기곤 한다. 평온하게 휴식을 취하거나 재주를 부리는 동물, 그리고 화목하게 동물원을 방문한 가족의 모습처럼 말이다. 동물원에 간 경험은 평생토록 기억에 남는 유년 시절의 행복한 추억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동물원에 관해 들려오는 소식은 행복과 잔혹을 오가고 있다. 네이버 뉴스 창을 열면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의 쌍둥이 동생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기사와 더불어 관리 및 운영 부실로 인해 동물원에서 탈출한 동물이 끝내 사살됐다는 참혹한 소식까지 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이곳은 인간에겐 최고의 장소지만, 동물들에게도 좋은 곳일지는 단언할 수 없다. 동물원 속 동물들은 과연 행복할까. 이제는 그 환상에서 벗어나 우리 안 동물을 가까이 만나 볼 차례다.

 

결말이 정해져 있는 그들은
  7월 30일, SBS <TV 동물농장> 1131회에서는 일명 ‘갈비뼈 사자’, ‘바람이’의 모습이 송출됐다. 갈비뼈가 다 드러난 상태로 가쁜 호흡을 몰아쉬는 사자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이를 본 동물자유연대 이혜원 수의사는 “사람으로 치면 ‘감옥 내 독방’이라고 볼 수 있다”며 사자가 7년 동안 생활해 온 공간이 얼마나 좁은지 설명했다. 논란이 된 동물원은 8월 12일부로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동물원’이라는 공간에 머무르게 된 동물들은 야생에서 누리던 생태와 습성을 잃은 채 살아가기 마련이다. 또한 제한적인 공간과 관람객들로 인한 소음, 포식자와 가까운 위치에 배치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쌓인 스트레스는 목적 없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보이는 ‘정형행동’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사육되는 동물에게 주로 나타난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한자리를 빙빙 맴돌거나 같은 지점을 계속 왔다 갔다 왕복하는 증상이 있다. 이외에도 배설물을 먹거나 털을 뽑는 등의 자기 학대 행위, 하루 종일 누워서 자거나 무료한 듯 멍하게 앉아 있는 무기력한 행동을 보인다. 사육사는 이를 완화하기 위해 본래 서식지와 가장 유사한 환경을 마련해 야생에서 할 수 있는 체험을 제공해 주는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극심해진 동물들은 이내 동물원에서 벗어나려 한다. 올해만 해도 우리나라에 있는 동물원과 민간 사육 시설에서 네 차례의 탈출이 발생했다. 1월, 강릉시 옥계면의 동물농장에서 생후 6개월이 된 새끼 사자 두 마리가 우리를 나갔다가 두 시간여 만에 생포된 바가 있다. 이어 3월에는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사육하는 얼룩말 ‘세로’가 사육장에서 탈출한 뒤 서울 시내 일대를 활보해 SNS에서 화제를 모았다. 8월 11일에는 대구 달성공원에서 침팬지 ‘루디’와 ‘알렉스’가 청소하러 들어온 사육사를 밀친 후 사육장에서 도망쳤고, 이 일이 발생한 지 사흘 만에 경북 고령군에 있는 한 민간 목장에 있던 사자 ‘사순이’가 관리인이 청소하는 틈을 타 빠져나갔다.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삶을 살다
  동물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수달, 원숭이, 타조 등의 야생동물은 한 장소에만 머무르지 않으며 하루에 적게는 1~2km, 많게는 수백km까지 움직인다. 이외에도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진 퓨마나 지능이 높고 인간처럼 다양한 표정, 몸짓, 소리를 통해 다른 개체와 소통하는 침팬지 등 동물원이라는 장소에 맞지 않는 특성을 가진 야생동물이 많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야생동물은 ‘산이나 들에서 저절로 나서 자라는 동물’로 정의된다. 사단법인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 옥수호 사무처장은 “인간의 도움 없이 자급자족하며 자유롭게 생활하는 것이 야생동물”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야생동물은 인간에게 포획되거나 사냥당해 동물원에 있지만, 여전히 야생동물로 분류된다”며, “어떤 경우에도 인위적인 환경에 적절히 적응하지 못하기에 가축으로 분류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까지 극소수의 종만이 가축화됐으며, 야생동물의 가축화가 완료되려면 몇십 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처럼 야생동물은 동물원에서 제공하는 먹이를 먹으며 좁은 공간에 갇혀 살아도 고유의 본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동물복지 전문가는 동물원에서 제공하는 환경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이에 동물을 위한 정책 개발과 입법 행동에 힘쓰고 있는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이형주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동물원이라는 장소에 대해 “동물들이 원래 살았던 곳과 매우 다르기도 하고 제한된 공간에서 사육하는 것 자체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충분한 환경을 제공하는 게 본질적으로 어렵기에 관리와 환경에 관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물원 각각의 환경에 대해서는 “공영동물원인지 민간동물원인지에 따라 시설의 차이가 있고, 동물원 안에도 여러 사육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입장도 전했다.

 

끝없는 탈출 사고, 그 원인은
  동물들이 비극을 겪는 대부분의 이유는 열악한 환경과 관리 및 운영 부실이다. 이 때문에 야생동물 사육 허가 기준을 강화하고, 열악한 시설에 있는 야생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이하 카라)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전시 동물들의 탈출과 고통의 굴레를 끊어내기 위해선 ‘야생동물들을 위한 보호시설’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동물자유연대는 공식 홈페이지에 ‘탈출한 동물을 죽이고 모든 게 마무리됐다는 식의 대응책은 비극적인 죽음을 반복하게 만들고 있다’는 글을 게시하며, 인도적인 포획을 위한 전문화된 대안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앞선 사례에서도 동물원에서 탈출해 짧은 자유를 맛보다가 죽음을 맞은 동물들이 있다. 바로 대구 달성공원 침팬지 ‘루디’와 경북 고령군 민간 목장의 사자 ‘사순이’. 루디는 마취총을 맞고 회복하던 도중 기도 폐쇄에 따른 질식사로 폐사했으며, 탈출 후 목장에서 20m가량 떨어진 숲에서 쉬고 있던 사순이는 인명피해가 우려된다는 경찰과 소방본부의 판단으로 사살됐다. 이에 카라는 루디와 사순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 8월 20일 청도군 용천사에서 49재 중 초재를 진행했다. 옥 사무처장 역시 사순이의 죽음에 대해 “사살보다는 포획이 먼저였어야 한다”며 안타까운 입장을 표했다. 또한, “포획했다고 하더라도 사순이는 똑같은 환경에서 야생동물의 본성을 억누르며 좁은 철창 안에 살아야 했을 것”이라며 차가운 현실을 전하기도 했다.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묻자, “사살과 포획 중 무엇이 옳은지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기보다 국가 기관에서 야생동물의 사육 환경과 관리 실태 등을 파악해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야생동물의 연구와 종 보존을 위한 사육 이외에는 금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동물원 폐지를 외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들은 동물들이 계속해서 탈출하는 이유는 동물원 자체가 동물들에게 행복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을 보호해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는 데 있어 동물원의 존재 이유가 충분하다는 의견 또한 만만찮다. 그러나 이 대표는 “동물 보전과 보호를 동물원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동물원의 변화를 촉구했다.

 

동물원에 동물이 없다고?
  한편, 문제 많은 동물원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는 곳이 있다.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 기술과 산업을 이용한 ‘동물 없는 동물원’이다. 국내에서는 2019년 12월, AR과 VR 기술을 이용해 동물들을 실감 나게 구현하고 동물과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5G 멸종 동물 공원(LG 유플러스 X WWF 코리아)’과 ‘동물 없는 동물원(SKT X WWF)’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또한 미국 출신 사진작가 조엘 사토리(Joel Satore)는 10여 년간 촬영한 작품들로 ‘포토 아크(삼성 X 내셔널지오그래픽)’ 전시를 개최해 ‘멸종 위기 동물을 보호하자’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외에도 오는 14일, 상징적인 동물 착취의 공간인 동물원을 예술로써 재해석해 다양한 장르의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동물 없는 동물원 展’이 인사동 KOTE 3층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일본에도 ‘대자연 체감 뮤지엄’이라고 불리는 ‘오비 요코하마’가 있다. 비록 2020년 12월 31일부로 폐관했으나, 동물의 생태를 실물 크기의 영상으로 보면서 입체음향과 진동, 바람, 안개, 냄새, 온도 등을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이러한 동물 없는 동물원에 대해 일부 네티즌들은 ‘살아 있는 동물이 없으면 동물원이라고 할 수 없다’며, 제대로 된 경험과 체험을 하기 어려우므로 부적절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기존 동물원과 달리 동물들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는 충분한 의의가 있다.


  앞선 사례를 통해 반드시 동물을 우리에 가둬놓지 않더라도 동물원을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따라서 이제는 동물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동물원의 기능을 전환해야 할 때다. 더 이상 동물원은 인간의 유희를 위한 공간이 돼서는 안 된다. 그 이름에 걸맞게, 진정으로 동물들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안나영 기자 anana27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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