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이랑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말을 사용해 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다. 가난, 분노, 불평등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는 그 재료로 노래와 영화, 책을 택했다. 2017년, 한 시상식에서는 ‘월세가 없다’며 트로피를 즉석에서 경매에 올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렇듯 이랑다운, 이랑만이 선보이는 블랙코미디에는 늘 씁쓸한 반응이 터져 나온다. 그럼에도, ‘웃어, 유머에’.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마포구 망원동에 살고 있는 이랑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랑 님의 직업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냥 자영업자라고 생각하는데요. (웃음) 1인 면세 사업자예요. 사업자 등록증 종목에는 가수, 작가, 화가, 작곡가, 영화감독, 1인 미디어 콘텐츠 창작자, 녹음이 있고요. 사업의 형태는 수리 및 기타 개인 서비스업입니다.
  대학에서는 영화 연출을 전공했고, 졸업한 뒤에는 웹드라마 감독을 했어요. 둘 다 이야기가 들어있는 영상이기 때문에 만드는 데는 별 차이가 없거든요. 영화과를 나와도 졸업하고 바로 영화를 만드는 건 무척 어렵기도 하고요. 동시에 음악 활동도 계속했어요.

음악을 시작한 계기는요
  대학에 들어갔는데 주변에 기타 치면서 노는 친구들이 있어 같이 어울리기 시작했어요. 연주할 수 있는 노래가 없어서 아무 노래나 지어 부르다가 노래를 만들게 됐습니다. 그저 ‘놀이’로 시작했는데, 만들어 놓은 곡이 스무 개를 넘어갈 때쯤 1집 <욘욘슨>을 내게 됐어요.
  음악은 제가 하는 다른 일에 비해 하는 사람도 덩달아 즐겁다는 장점이 있어요. 예를 들어, 영화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들 때는 신경 쓸 게 너무 많아서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아요. 책을 쓸 때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음악을 할 때는 관객은 물론 노래하고 연주하는 사람도 즐길 수 있더라고요. 제가 음악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더 그렇죠. 공연을 가끔만 하니까, 무대에서의 시간이 굉장히 귀하게 느껴져요.

앨범을 만들 땐 어떤 과정을 거치시나요
  가끔 스스로 과제를 주는 편이에요. 2집 <신의 놀이>를 만들 때는 ‘후렴이 없는 노래를 만들자’라는 목표를 세웠어요. 일반적으로 A-후렴-B-후렴 이런 식으로 노래가 구성되는데, 저는 판소리처럼 쭉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걸 좋아해서요. 그리고 보통 기타를 치면서 작곡하는데, 3집 <늑대가 나타났다>는 ‘기타 말고 다른 악기를 중심으로 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하다 보면 15~20곡 정도가 모여요. 그 상태에서 앨범을 구성하다가, 중복되는 주제의 곡이 있다면 제외하기도 하고요. 주제 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곡을 더 만들기도 하죠. 그래서 시간이 되게 오래 걸려요.

창작물을 통해 특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매번 바뀌는 것 같습니다. 어쩔 땐 창작물을 통해 제가 했던 말을 다시 창작물을 통해 번복하는 경우도 있어요.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선보인 <왜 내가 너의 친구라고 말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낭독극에서 ‘나는 왜 몰라요’라는 곡을 발표했는데요. 2집 <신의 놀이>에 수록된 ‘나는 왜 알아요’라는 곡을 되돌리는 노래예요. 제가 ‘나는 왜 알아요’라는 노래를 만들 때 했던 생각은 이거였어요. ‘나는 세상을 다 알 것 같은데 왜 아직도 괴롭지.’ 근데 한 10년 정도 지난 지금은 ‘나는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지’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제가 작년에 운전 면허를 땄는데요. 택시는 많이 타봤지만 운전대를 잡은 건 처음이라, 도로의 체계가 낯설었어요.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해서 움직이는 게 충격으로 다가온 거죠. 이걸 서른일곱에 알게 됐으니까, ‘눈 뜨고 사는데도 어떻게 모를 수 있지’ 하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노래에 이런 문장을 썼어요. ‘나는 왜 다 모를까, 다 모르면서 왜 다 안다고 말했을까.’

최근 제작하신 단편 영화 <잘 봤다는 말 대신>은 독립영화감독 ‘민정’과 ‘새벽’이 ‘잘 봤다’는 말 대신 새로운 말을 찾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같은 독립영화감독으로서 ‘잘 봤다는 말 대신’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그냥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 같아요. 팬분들과 잠깐 인사할 때는 ‘잘 듣고 있어요’, ‘잘 봤어요’ 하고 갈 수밖에 없지만, 동료나 친구들이 ‘잘 봤어’라고만 하면 되게 서운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 또, 먼저 물어보기는 어려워요. 겁이 나서요. 그래도 기회만 된다면 이 일을 같이 오래 하는 사람들과 많이 얘기하고 싶습니다.
  이 직업을 유지하는 건 나이가 들수록 어려워서, 동료들이 점점 사라져요. 저도 1, 2집을 낼 때까지만 해도 일 찾는 게 힘들었어요. 그래서 나이가 있고 이미 유명하신 작가분들을 만나면 ‘저 사람은 얼마나 대단하길래’ 싶어서 신기하더라고요. 한 번은 어떻게 유명해졌는지 여쭤본 적도 있어요. 중년 여성 작가님이셨는데, 되게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버티면 유명해져!”라고 하셨어요.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저도 일을 오래 하니까 알겠더라고요.

‘영화’라는 일의 매력을 꼽자면요
  영화과에서 가장 처음 배우는 게 자신을 모델로 하는 캐릭터를 구상해 보는 거예요. 그런데 영화에는 주로 두 명 이상의 인물이 출연하고 서로 갈등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우선 나와 비슷한 인물을 두고, 나랑 부딪힐 만한 사람을 창작해요. 그 사람이 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지 역으로 설계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되게 재밌어요. 다른 직업이라면 ‘저 사람 싫어, 피하고 싶어’에서 끝나는데 감독은 ‘그 사람은 왜 그 사람이 됐을까’까지 계속 생각해야 하니까. 다양한 삶을 오랫동안 상상하는 일이라 매력적인 것 같아요. 하면 할수록 이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어요.

일을 많이 하다 보면 지칠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랑 님만의 ‘쉬는 시간’이 궁금합니다
  휴식을 안 취하는 것 같은데요. (웃음)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요. 아프면 조금씩 고쳐가면서 일을 하는 것 같아요. 몸을 고쳤다가, 고친 몸으로 또 썼다가, 또 고치고…. 제 직업상 모든 게 자극이 되고, 순간마다 다 생각할 거리가 되기 때문에 쉴 틈이 없어요. 어떨 때는 숨도 못 쉬게 벅차요. 오래전부터 불면증도 앓고 있는데, 전원이 꺼지지 않는 컴퓨터처럼 머릿속에 너무 많은 생각이 존재해서 버거울 때도 있습니다. 이 직업의 매력과 즐거움은 분명히 있지만요.

마지막으로 동덕여대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20대가 정말 괴로웠어요. 모든 게 뜻대로, 계획대로 안 되더라고요. 지금까지 살아본 경험상 ‘계획’과 ‘예정’이라는 말은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것 같아요. 이제는 그냥 지금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됐어요.
  실제로 약을 먹고 죽어보려고 한 적도 있는데, 지금은 그때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가 들수록 더 다양하게 괴롭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이 주는 재미도 있거든요. 이 ‘재미’가 ‘깔깔’, ‘랄랄라’ 하는 재미는 아니더라도 앞으로의 일들이 궁금해서 더 보고 싶어졌어요. 요즘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죽음은 언젠가 한 번 찾아올 테니, 그 전에 스스로 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최보영 기자 choiboyoung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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