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살면서 절대 잊지 못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필자는 ‘썩은 과일바구니’라 답하겠다.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 필자가 소속됐던 학생회는 친구, 선생님 모두에게 ‘성실한’ ‘모범생’ 단체로 불렸다. 그러나 임기 중후반쯤, 우리 사이에 꽤 큰 싸움이 벌어졌다. 이 분란은 끝내 활동에 지장을 만들었고, 결국 담당 선생님의 귀에도 들어갔다.

  썩은 과일바구니는 그런 우리를 두고 하셨던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빛깔만 좋은 엉터리 과일들이 맨 위에 놓인 과일바구니. 사실 그 안은 모두 썩어있는 꼴이라고 했다. 고작 십몇 년밖에 살지 않았던 우리에게는 이 말을 감당할 면역이 없었고, 당시에는 모두가 그 선생님의 표현을 원망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생각해 보면, 우리는 썩은 과일바구니가 맞았다. 주변의 좋은 평가와 인정으로 거만해져 있었고, 그래서 썩은 과일들을 못 본 체했다. 그러나 썩다 못해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안쪽을 들여다 봤던 것이다.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 사실은 칭찬 뒤에 숨어있는 믿음과 신뢰가 더욱 흥을 돋운다. 그러나 이런 ‘좋은 평판’에 자만했다가 마주친 폭풍우는 너무나도 거셌다. 줄곧 무시한 썩은 과일이 세상에 드러나자, 인정은 비난으로, 신뢰는 힐난으로 바뀌어 매섭게 몰아쳤다. 

  이를 겪은 후 한 단체의 대표를 맡으니 ‘좋은 평판’을 더 경계하게 됐다. 다시는 과일바구니를 엉망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간혹 썩어가는 과일들을 눈치채지 못하는 대표들을 만난다. 그럴 때면 그들이 정말 모르는 것인지, 어린 시절의 필자처럼 애써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에게도 묻는다. 혹시 지금, 당신의 과일바구니가 썩어가고 있진 않은가?

김한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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