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살인 예고 글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살인 예고 글이다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확산된 칼부림 예고 목록이다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확산된 칼부림 예고 목록이다

 

 지난 7월 21일, 서울특별시 신림역 한복판에서 30대 남성이 무차별적인 흉기 난동을 일으켰다. 해당 사건으로 인해 일반 시민 1명이 숨지고, 3명이 상해를 입었다. 그로부터 2주 뒤인 8월 3일,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AK플라자에서 20대 남성이 휘두른 칼부림에 통행하던 시민 2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다쳤다. 이에 그치지 않고, 17일에는 신림동의 한 등산로에서 30대 남성이 여성을 성폭행 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위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이 일련의 사건이 동기도, 대상도 구별되지 않는 일종의 ‘묻지마’ 범죄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의 일상은 한순간에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살아남는 것’에 가까워졌다.

 

‘묻지마’가 뒤흔든 평범한 일상
 시민들의 두려움은 고스란히 인터넷 클릭 수로 드러났다. 네이버 급상승 검색어 이력을 제공하는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지난 8월 쇼핑 생활·건강 분야의 클릭량 1위는 다름 아닌 ‘호신용품’이었다. △너클 △삼단봉 △호신용 스프레이 등이 생활용품 분야의 상위 검색어를 차지하기도 했는데, 해당 기간 동안 합계된 성별 비중은 △남=38% △여=62%로 성별에 상관없이 검색량이 확연히 늘어났다. 또, 인터넷 쇼핑몰 ‘쿠팡’에서는 호신용 삼단봉의 구매율이 급격히 상승해 일시적으로 품절 대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평범한 일상에 침범한 공포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도심 한가운데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흉기 난동에 일부 시민은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대학생 A 씨는 “번화가 같이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닌 이상 되도록 안 가고 있다”며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묻지마 범죄에 대한 불안감을 전했다. 유튜브에서는 일반인도 간단히 따라 할 수 있는 호신술 영상이 실시간 급상승 동영상에 오르기도 했다. 총 533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한 호신술 쇼츠(Shorts) 영상에는 “현시대에 가장 필요한 영상”, “신림역 사건을 보고 검색해서 왔다” 등의 댓글이 이어지며 범죄 대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늘어났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한편, 불안심리로 인해 웃지 못할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서울 지하철 9호선에서 아이돌 그룹 BTS ‘슈가’의 솔로 콘서트를 관람한 후 귀가하던 팬들이 가수의 실시간 방송을 시청하면서 지른 환호성에 시민들이 놀라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가스가 누출됐다”, “흉기 난동이 일어났다”는 신고가 이어지자 열차는 급히 신논현역에서 정차했고, 혼란에 빠진 승객들이 뒤엉키는 바람에 7명이 부상을 입어 병원에 옮겨졌다. 을지로4가역으로 향하던 2호선 열차 안에선 한 승객이 지른 비명을 흉기 난동 사건으로 착각한 다른 승객들이 대피하다가 4명이 다쳤다. 이러한 지하철 흉기 난동 오인은 지난달 총 8회나 발생했다.

 

끝없는 모방 범죄, 그 원인과 예방책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지속적으로 올라온 범죄 예고 글 또한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작성자들은 밤낮없이 글을 게시하며 범죄를 일으킬 특정 시간과 공간을 언급했고, 그중 일부는 본인이 몇 명을 살해할지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칼부림 예고를 표기한 예고 지도 사이트 ‘테러리스(Terrorless)’가 등장하기도 했는데, 이는 네티즌 사이에서 무서운 속도로 공유되며 출시 하루 만에 접속자 5만 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모방 범죄, 그리고 연쇄적인 살인 예고 글을 바라보는 전문가의 시선은 어떨까. 본교 커뮤니케이션콘텐츠전공 김수희 교수는 해당 현상이 “일종의 모방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전했다. 평소 관심을 갈구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이들이 주목받기 위한 수단이자 사회를 향한 일종의 불만 표출로 이러한 게시글을 작성하는 양상을 보인 것이다. 신림역 사건 발생 이후 살인 및 흉기 난동 예고 게시물을 올린 사례는 총 469건으로, 223명의 작성자가 검거되고 22명이 구속됐다. 경기남부경찰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실제로 작성자 중 대다수는 ‘재미’ 또는 ‘관심’을 이유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대적인 살인 예고 글에 맞서 정부는 도심 곳곳에 경찰특공대와 장갑차를 배치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긴급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전국 247곳에 경찰관 1만 2천여 명을 배치해 순찰과 검문검색을 시행하겠다고 선포했지만, 일각에서는 지하철에서 이뤄진 갑작스러운 몸수색 등의 강압적인 검문은 인권 침해와 다름없다는 반응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에 김 교수는 “비상 범죄 대책은 최대한 시민에게 불안감을 조성하지 않는 효율적인 방식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경찰은 비상설 기구였던 ‘긴급현장상황반’과 ‘신속대응팀’을 통합해 발 빠르게 범죄 현장을 제압할 수 있는 ‘초동대응팀’을 신설했다. 이와 더불어 특별치안활동을 더욱 강화하는 등 흉악 범죄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근본적인 대책이다. 김 교수는 “물론 범죄 그 자체도 주목해야 하지만, 해당 유형의 범죄가 꾸준히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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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보도 뒤에 감춰진 건
 서현역 사건의 가해자 최원종(22·남)은 범행 직전까지 소셜미디어에 ‘신림역’, ‘흉기’ 등을 검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림동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 최윤종(30·남) 또한 지난 5월 발생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언론의 과열된 범죄 보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등장했다. 칼부림 사건 직후 소셜미디어에서는 범행 현장을 담은 사진이 모자이크 없이 공유되고, 범죄자의 체포 영상이 돌아다니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범죄 행위를 담은 자극적인 미디어는 모방 심리를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며 무분별하게 노출된 미디어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일부 언론이 ‘신림동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가 은둔형 외톨이였다’, ‘서현역 사건의 가해자가 특목고 진학에 실패한 영재였다’와 같이 범죄자의 사생활에 초점을 맞추는 지엽적인 보도를 내보내는 상황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피해자와 가해자 둘 중 어디에 초점을 맞추는가’, ‘사건을 어떻게 묘사하는가’에 따라 사건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 일부 언론은 “신림역 사건의 가해자 조선(33·남)이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은 결핍으로 폭력성을 보였다”와 같은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는데, 범죄자의 정신적 상태, 발언 등에 초점을 맞춰 심리를 분석하는 보도에 대해 김 교수는 “추측성 보도를 할 수는 있지만, 이런 식으로 가해자에게 과도하게 포커스를 맞춰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전했다.

 한편, 피해자 유가족의 호소는 멈추지 않았다. 서현역 사건으로 뇌사 판정을 받고 끝내 숨진 故이희남(60대·여) 씨의 유가족들은 언론을 통해 이 씨의 신상과 생전 사진을 공개했다. 또 다른 피해자인 故김혜빈(21·여) 씨의 유가족 역시 예술가를 꿈꿨던 김 씨의 삶을 언론에 제보했다. 남겨진 가족들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주목받는 현실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피해자는 가려진 채 범죄자에게 모든 서사가 부여되는 현 상황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

 2020년 3월, 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을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민주언론실천위원회는 긴급지침으로 보도에 ‘악마’, ‘짐승’과 같은 표현을 자제하도록 권고했다. 이러한 용어가 범죄자의 가해 행위를 축소하거나, 가해자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타자화해 예외적 사건으로 인식하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가해자는 여전히 불우한 서사를 가진 ‘악마’였고, 피해자는 그저 ‘피해자’에 머물렀다.

 지난 14일 진행된 재판에서 피고인 최원종은 심신미약을 포함한 정신병력을 앞세워 감형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들의 사연은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우리 사회를 공포에 물들이고 있는 ‘묻지마 범죄’, 진정으로 묻지 말아야 할 것은 범죄자의 비겁한 서사뿐이다.

이지은 기자 jieuny9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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