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의 청년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미싱사에 취직했다. 하루 15시간 이상을 일하며 체감한 건 절망적인 노동 현실과 개선되지 않는 근로기준법.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결국 1970년, 스물두 살의 젊은 생명은 스스로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항거했다.


  그의 이름, 故전태일. 한국사를 배웠다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다. 그의 죽음엔 과장된 해석이 존재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결과적으로 수많은 이들이 그의 노고를 기억한다. 그런데 몇 주 전, 비슷한 이유로 또 하나의 죽음이 발생했다. 임금 문제로 2월부터 1인 시위를 벌이던 택시 기사 故방영환(55·남) 씨가 분신을 시도한 것이다. 법으로 사납금제가 금지됐으나 그가 일하던 택시 사업장은 편법을 써 직원들의 임금을 깎아 왔다. 그의 분신은 추석 연휴를 앞둔 26일에 벌어졌고 10월이 돼서야 세간에 알려졌다.


  지난 10일에도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다.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한 유튜버 ‘나다움’, 故표예림(27·여)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게시한 영세상을 통해 ‘무엇이든 표현하는 남자(이하 무표남)’로부터 저격, 스토킹 등의 2차 피해를 입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무표남은 입장문을 올려 명복을 비는 한편, 표 씨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매도하며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표 씨는 가해자와의 녹음본과 학교폭력으로 인한 상담 확인서도 모자라 죽음을 증거물로 제출했다.


  이외에도 억울한 죽음은 수없이 많다. 학부모들의 억지 민원에 버티다 못한 교사는 죽어 나가고, 여자 군인은 성차별적인 발언을 맞닥뜨리며, 간호사는 선배에 의해 영혼까지 불타 버린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아픈 이들을 돕고자 하는 그들의 심성은 허무하게 무시당한다. 교육대학교 재학생들의 SNS 프로필 사진은 여전히 검은 리본이고, 군인과 간호사를 희망하는 학생들은 꿈을 이루기도 전에 꿈을 잃을 두려움에 몸서리친다. 직업적 소명을 따르기엔 고려할 것이 너무 많아졌다.


  ‘자살률 세계 1위’, 이 불명예스러운 수식어에서 벗어나려면 그 사연을 더 유심히 들여다봐야 한다. 약 50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국민을 비롯해 후세 대통령까지 주목하던 분신 항거는 이제 그냥 ‘자살’이 됐다. 잠깐의 관심은 아무런 결과도 가져오지 못한다. 메마른 한국 사회에 잠시 내리는 소낙비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죽음에 이르는 이들에게 때론 장마가 필요하다.


최보영 대학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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