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을 위해 무수한 피와 뜨거운 투쟁으로 희생한 선조들, 6.25 전쟁에 참전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진 용사들. 그들이 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21년 국가보훈부(이하 보훈부)에서 실시한 ‘보훈의 의미에 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2018년부터 3년간 ‘보훈’ 관련 소셜빅데이터 언급량은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만 급증했고, 나머지 기간에는 검색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더불어 사회 전반의 보훈 의식 수준은 보통(45.9%) 또는 낮다(32.2%)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이처럼 세월이 흘러 빛바래져 가는 국가유공자들의 위대한 업적은 한낱 이벤트성을 띠며 과거의 유물로 전락해 가고 있다.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려는 정부의 조처 또한 여전히 미비한 상태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대대손손 잘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열악한 국가유공자의 삶에서 ‘호국보훈’은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까. 

 

△ 순국선열 중 서훈을 받은 사람은 단 2%, 그중 유족보상금을 받은 사람은 23%에 그친다
△ 순국선열 중 서훈을 받은 사람은 단 2%, 그중 유족보상금을 받은 사람은 23%에 그친다

비슷한 처지, 서로 다른 신세
  독립유공자의 보훈급여 대상은 독립운동을 한 당사자와 유족 또는 가족 1인으로 지정하고, 그 범위는 △배우자 △자녀 △손자녀 △며느리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유공자의 사료가 추후에 발견돼 독립유공자 선정 및 등록이 늦어졌을 때는 자손들이 적절한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2021년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은 증손자녀까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현재까지 별다른 발전 사항은 없다.

  또한 보훈법에서는 ‘독립운동에 가담해 6개월 이상 옥고를 치른 자’만을 서훈 대상자로 여겨 독립유공자로 인정한다.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에 따르면 현재 독립을 위해 항거하다 순국한 애국선열은 약 15만 명으로 추산되나, 그중 서훈을 받은 사람은 2%(약 3,500명)에 불과하다. 대다수가 후손이 없거나 이름도 모른 채 역사 속에 묻힌 것이다. 이렇듯 국가를 위해 헌신했으나 증명조차 어려워 독립유공자로 등록되지 못한 이들이 곳곳에 있다. 광복회 성북구지회 홍순기 회장은 “현재 성북구에 수권자가 96명이지만, 사실상 유가족은 더 많다”고 말했다. 이어 “보훈회관에 책정된 예산이 많지 않아 건강식품을 선물하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식사를 대접하는 정도밖에 해줄 수가 없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한편 6.25 참전용사들은 이 마저도 ‘그림의 떡’이다. 다른 보훈 대상자들과 달리 참전유공자는 당사자만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이들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이 되더라도 혜택이 가족 또는 유족에게 승계되지 않는다. 결국 전쟁 후유증을 겪는 6.25 참전용사의 옆을 지켜가며 수고를 감내해 온 배우자라 하더라도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은 없다. 6.25 참전용사유공자회(이하 참전유공자회) 성북구지회 이영우 회장은 “참전유공자회가 창설할 적에 인원이 3천 명 이상이었으나 이제는 연령이 많다 보니 파악된 인원이 280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참전유공자회원들은 평균나이 92세로, 머지않아 회의 존속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속히 ‘유족 회원자격승계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가를 위해 헌신했지만… 초라한 환대
  수권자나 국가유공자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 혜택은 미미하다. 현재 국가에서 6.25 참전유공자에게 매달 지급하는 보훈급여금은 단돈 39만 원. 여기에 서울시에서 지급하는 참전명예수당 10만 원을 더해도 50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내년 서울시에서 5만 원을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여전히 국가를 위해 헌신한 대가로는 한없이 부족할 뿐이다. 지난 6월 부산에서는 80대의 6.25 참전용사가 생활고에 시달려 마트에서 반찬을 훔치다 검거된 일도 있었다. 그는 매달 정부 보조금 60여만 원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보훈급여 인상은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보훈급여가 소득으로 책정되면 다른 복지 혜택 대상에서 배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훈부에서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늘어난 보상금으로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잃는 바람에 올해 보훈급여를 포기하는 사람은 634명으로, 작년에 비해 6배 이상 증가했다. 실제로 이들 중 87.7%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또는 차상위계층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보훈급여금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6월 기준 약 43만 명이 보훈 대상인 가운데 이 중 약 3만 명이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에 속한다. 이들은 보훈급여 안전망이 구축되지 않은 현실에서 소득수준의 경계에 걸친 채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고 있다.

  수도권과 외곽지역의 의료지원 간극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국가유공자는 보훈병원과 보훈위탁병원(이하 위탁병원)을 이용해 의료비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위탁병원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보훈병원이 먼 경우 국가유공자가 거주지 인근에서 편하게 진료를 볼 수 있도록 민간병원에 진료를 위탁하는 제도다. 성북구는 △동부병원 △서울의료원 △우신향병원 등이 위탁병원으로 선정돼 있고, 월곡 부근에는 에스메디센터, 美치과가 보훈 대상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도심 내에서 위탁병원은 잘 갖춰진 편이었다. 그러나 눈을 조금만 돌려도 상황은 달라진다. 예컨대 전남 무안군의 위탁병원은 단 두 곳이다. 이 중 같은 몽탄로에 위치한 화산마을회관에서 위탁병원인 무안병원에 간다고 가정하면, 지도 앱상으로 도보로만 1시간 45분이 걸린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배차시간 간격이 1시간인 800번 버스 한 대를 기다려야 한다. 교통시설이 열악한 시골에서 거주하는 국가유공자 A 씨는 “몸이 좋지 않아 멀리 나갈 수가 없어 혜택을 포기하고 근처 병원에서 진료받는다”고 말했다. 결국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은 위탁병원조차 갈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보상금 외에도 교통비 지원이나 의료지원처럼 생활과 맞닿은 복지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자 지난 8월, 보훈부는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을 확대 중이라는 정책을 내세웠다. 이러한 정책에 홍 회장은 “예우를 받는다는 자긍심은 든다”고 전했지만, 곧이어 “나이 들어 운전하는 사람이 몇 없기에 고속도로 통행료나 주차장 무료 등은 실질적인 혜택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난 5년간 국가보훈부에 편성된 예산은 국가 전체 예산 중 1% 남짓이다
△ 지난 5년간 국가보훈부에 편성된 예산은 국가 전체 예산 중 1% 남짓이다

내년 보훈 예산도 “안녕하지 못합니다”
  지난 8월, 정부는 2024년 우리나라 예산의 규모가 656.9조 원으로 편성됐다고 발표했다. 그중 국가 보훈 예산으로 편성된 금액은 6조 3,948억 원으로 전체 예산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매년 국가 보훈 예산은 꾸준히 증액되고 있으나, 세부 명단을 살펴보면 보훈의료복지 예산은 올해와 비교해 244억 원가량 삭감됐고 생활안정지원 예산 또한 약 7억 원이 줄었다. 이에 따라 보훈 대상자와 그 가족을 위해 제공되는 의료 서비스나 생활조정수당, 주택 지원 등의 경제적 뒷받침이 축소되면 이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도모하고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기 어려워진다.

  또한 이번 예산 편성안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제복의 영웅들’이다. 정부는 작년 국가유공자를 향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6.25 참전용사를 대상으로 지급됐던 조끼 형태의 단체복을 제복으로 바꾸는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올해는 이를 월남참전유공자까지 확대하며, 제복 지급 사업에 219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유공자들의 열악한 경제적 사정을 걱정하는 일부 국민들의 반응은 마냥 좋지만은 않다. 생활비 지원도 넉넉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와 관련된 예산은 삭감하고 부수적인 사업에 많은 돈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작년 보훈 예산은 약 344조 원으로 정부 예산의 4.6%를 차지해 세계에서 가장 비중이 컸다. 호주 또한 보훈 대상자가 우리나라에 비해 적지만 정부 예산 대비 보훈 예산 비율은 1.4%로 우리나라보다 높았다. 보훈 예산 내 의료복지 예산은 더욱 차이가 난다. △미국 △캐나다 △호주에서는 약 30~40%를 국가유공자의 진료 및 재활을 위해 이용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올해 예산 중 약 12%에 그치는 금액인 7,865억 원을 보훈의료복지로 쓰고 있다. 이처럼 유공자를 향한 예우가 잘 갖춰진 ‘보훈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보훈 예산은 현저히 낮으며, 일상에서 필요한 의료복지 또한 부족한 실정이다.

 

늦었지만 보훈의 정신으로
  지난 6월에 국가보훈처가 보훈부로 승격되면서 국가유공자들은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높아진 부처의 위상만큼이나 보훈가족과 국민들의 눈높이에 부응할 수 있도록 국가를 위해 희생·헌신한 분들의 보상수준을 지속적으로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가유공자 평균 연령은 71세, 독립유공자 혜택의 마지막 승계자인 손자녀들 또한 대다수 환갑을 넘겼다. 정부는 이들의 발자취가 서서히 사라지기 전에 괄목한 변화를 이뤄내야만 한다.

김다연 기자 redbon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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