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입을까 고민하다 옷장에서 두꺼운 스웨터를 꺼냈다. 어느새 주변에서 들리던 매미 소리는 사라졌고 청명한 햇살과 차갑지만, 맑은 가을의 공기가 다가왔다. 무더운 여름을 지나 선선한 가을이 온 것이다. 이렇듯 계절과 계절 사이의 변화를 느낄 때, 매년 이맘때쯤인 나의 생일을 지나 보낼 때, 나이 육십을 바라보는 부모님이 이제는 부추가 이에 잘 낀다고 하실 때, 시계 초침의 째깍째깍 소리는 점차 커져 심장을 쿵쾅쿵쾅 두드린다.

  어느덧 내가 대학교 3학년이라는 것도 쏜살같이 지나는 시간을 체감케 한다. 신입생이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아직 사회에 나갈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지만 “○○이 어디 취직했대”처럼 들려오는 동기, 선배,  엄친아·엄친딸의 근황에 부랴부랴 쫓기듯 미래를 바라보는 고민을 시작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같은 것들 말이다. 이게 다 저 못된 시간이 계속해서 흐르는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의식하는 것은 기쁜 일이다. 만약 지금 고통받고 있거나 하늘을 나는 듯이 기쁘다고 해도 거시적으로 보면 이 순간은 아주 찰나의 파편처럼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누구나 탄생하고 죽는다. 그리고 시간은 그사이를 공평하게 지나간다. 또한 인생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자신이 남긴 무수히 많은 단편 사건의 족적일 뿐이다. 그것들이 모여 무엇을 형상화할지는 당장은 예측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제외하고 남는 것은 지금을 인식해 순간을 얼마나 충만하게 살아내느냐로 귀결된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친구 미켈레 베소가 사망했을 때 그의 누이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이제 그는 나보다 조금 앞서 이 이상한 세상을 떠났다. 이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아인슈타인의 글을 보며 나는 이 짧고 덧없는 과정에 어디쯤 와있나 상상한다. 그리고 다시 시계를 바라본다. 지금, 이 순간을.

김수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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