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G 엔터 3D 애니메이션 모델링 슈퍼 바이저 조균성

 

 

우리의 유년기를 함께했던 TV 속 친구들을 기억하는가. 매일 웃게, 때로는 울리기도 하던 캐릭터들은 어른이 된 우리 안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캐치! 티니핑>을 비롯한 다양한 흥행작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선두 주자를 달리고 있는 SAMG 엔터 조균성 모델링 슈퍼 바이저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SAMG 엔터테인먼트에서 모델링 슈퍼 바이저로 일하고 있는 조균성입니다. 모델링을 쉽게 표현하자면 가상의 3D 공간에 모델을 만들어 가는 건데, 제 역할은 이를 관리·통솔하는 거예요. 

 

해당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반마다 꼭 그림 잘 그리는 애들 한두 명씩은 있잖아요. 제가 그런 애 중 한 명이었어요. (웃음) 자연스럽게 전공도 하고, 무사히 졸업해서 여기까지 왔죠. 결정적으로 이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천공의 성 라퓨타>인데요. 제가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애니메이션을 접할 길은 보통 불법 복제 테이프밖에 없었어요. 하필 <천공의 성 라퓨타>는 자막도 없어서 번역된 책을 펼쳐두고 동시에 봤던 기억이 나요. 막연하게 그림만 그리고 싶은 중학생이던 저는 그때 결심했죠. “나도 애니메이션을 해야겠다.” 

 

ⒸSAMG 엔터
ⒸSAMG 엔터

 

여태까지 참여하신 작업물 중 대표작 또는 대표 캐릭터는 무엇인가요
 대표 작업물이라고 하면 <캐치! 티니핑> 시리즈 속 티니핑 친구들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미라큘러스: 레이디버그와 블랙캣> 시리즈를 꼽고 싶어요. 가장 애착 가는 캐릭터도 해당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히어로 ‘블랙캣’이자 주인공의 남자친구인 ‘아드리앙’이고요. 사실 이 시리즈가 한국·프랑스·일본 3국의 합작이라 제작 과정에서 꽤나 애를 먹었어요. 초창기 아드리앙은 프랑스 회사의 디자인이었는데 도통 제 마음에 들질 않아서 몇십 번의 수정을 거듭했죠. 한참이 걸렸지만, 결과적으로는 대만족이라 유난히 더 기억에 남습니다.

 

애니메이션이 제작되는 단계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우선 어떤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기획이 나오면, 이를 바탕으로 큰 줄기를 만들어요. 이후 스크립트 시나리오를 짜고, 시나리오에 맞춰 메인 캐릭터와 세계관을 구축하죠. 그다음이 제 담당인 모델링이에요. 모델링을 거친 3D 작업물은 사실감을 더하는 렌더링 과정을 지납니다. 이를 통해 영상물이 완성되면, 그에 맞는 효과음와 배경음을 제작해 입혀요. 이후 최종 편집까지 거쳐야 비로소 TV 또는 극장에 상영됩니다. TV 방영 시리즈 26편을 제작하려면 대략 80명의 인원이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을 들여야 해요.

 

3D 애니메이션 모델링 과정에서 가장 까다로운 작업은 무엇인가요
 이건 사실 제작자마다 다를 텐데, 저는 유기적인 요소라고 생각해요. 형태가 정해져 있는 책상, 의자 같은 사물은 구현이 쉽지만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은 굉장히 다루기 까다롭거든요. 따라서 처음에 2D 디자인이 나오면 캐릭터 또는 소품의 구조적인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게 최우선입니다. 예를 들어 톱니바퀴 모델이라면, 작은 톱니바퀴들이 잘 맞물려 자연스레 움직일 수 있는지 판단하는 거죠.

 

캐릭터의 생동감 넘치는 표정과 움직임을 위해 참고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기술이 지금만큼 발달하지 않아서 모든 애니메이터의 책상 앞에 거울이 하나씩 꼭 있었어요. 캐릭터를 그릴 때 본인의 얼굴을 보며 표정을 묘사하는 거예요. 거울방이라는 것도 존재했는데, 안에 들어가서 직접 움직여 보거나 동료들의 동작을 녹화해서 참고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즘엔 인터넷이 발달해서 검색 한 번이면 돼요.

 

일을 하며 생긴 나름의 직업병이 있다면요
 이건 일을 하기 전부터도 그랬는데, 출퇴근할 때나 공원, 놀이동산 같은 곳을 놀러 가면서도 타인을 많이 관찰하는 편이에요. 외모나 의상을 보면서 캐릭터를 떠올리기도 하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거나 애니메이션을 봐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사실 재미가 없어요. (웃음) 보는 내내 저걸 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까 고민하게 되니까요.

 

현재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은 아동을 주 소비층으로 삼고 있는데요. 다양한 연령층을 위한 ‘어른용’ 애니메이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른용 애니메이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근래 들어서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이런 요구가 늘어나겠지만 사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아요. 또, 시간과 자본을 굉장히 많이 투입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특정 단체나 기업의 지원이 없으면 제작이 힘들죠. 냉정하게 말하면 어른용 애니메이션은 돈이 안 돼요. 이러한 이유로 아동 애니메이션이 주를 이루고 있는 거고요.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상황이 좋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올해 개봉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상영관에도 많은 40대 아저씨들이 아이의 손을 잡고 갔어요. 40대들도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대잖아요. 한국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라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는 ‘어른용’ 애니메이션의 흥행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인생 캐릭터 또는 닮고 싶은 캐릭터가 있으신가요
 닮고 싶은 캐릭터라기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좋아하는 캐릭터가 하나 있어요. 아니, 한 사람이죠. (웃음)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에서 주인공 철이와 함께 다니는 ‘메텔’인데요, 금발의 긴 생머리와 검은색 옷이 특징인 신비로운 분위기의 여성이죠. 점점 빠져들게 하는 서사도 갖고 있고요. 메텔은 어렸을 땐 제게 엄마 같은 존재였고, 청소년기 때는 연인이자 이상형이었어요. 지금은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캐릭터입니다.

 

좋은 애니메이션이란 무엇일까요
 목표를 달성한 애니메이션이요. 모든 애니메이션은 다 각자의 목표가 있거든요. 누군가에게 기쁨과 웃음을 주거나 감동, 더 나아가서 슬픔을 전하기도 하죠. 감정을 전달한다는 그 목적을 이뤘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요.
 

 

창작자이자,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의 목표는요
 아직도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에는 ‘빨리, 빨리’라는 조급함이 있어요.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작업임에도 제한된 환경 때문에 마음이 급해지는 거죠. 어떻게 보면 나름의 기술력이라 사실 해외에서 하청이 자주 들어와요. 하지만 우리나라만의 질 높은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면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제 개인적인 목표도 이와 상응하는데, 아동 애니메이션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청소년, 어른도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물론 이를 위해선 무수한 노력이 필요하겠죠.

 

마지막으로 동덕여대 학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면 일의 고충을 털어놓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종종 “너는 그래도 네가 좋아하는 거 하잖아”라는 이야기를 들어요. 여러분 중에서도 꼭 애니메이션이 아니더라도 음악을 좋아한다거나, 아니면 요리를 즐겨 하는 등 관심사가 명확한 분들이 있을 텐데요. 의심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정말 그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될 날이 올 거란 말을 전하고 싶어요. 비록 지금은 애정 없는 분야에서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더라도, 언젠가는 꼭 감춰뒀던 꿈에 도전해 봤으면 해요. 내가 사랑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건 생각보다 더 행복하거든요.


이지은 기자 jieuny9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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