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까지 본교 학우를 대상으로 제36회 동덕문화상 공모가 진행됐다. 시 부문 여태천(시인·국어국문학전공) 교수, 소설 부문 홍순애(국어국문학전공) 교수, 사진 부문 윤종구(회화전공) 교수가 심사를 맡았다. 이번 호의 5~7면은 동덕문화상 당선작으로 꾸며졌다.

<동덕여대 학보사>

 

| 시 부문 당선작 |

서기 - 임은영(문예창작 21)

 

물이 닿는 곳
에서 많은 것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뜬구름이라든지 내 상념이라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함께하지 않았던 기억이라든지

당장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던 말도
놓아보니 다 푸르렀다 알아서 흘러갔다

마음을 써가며 밝혔던 초들이
누군가의 생일로
또 누군가의 기념일로 돌아가고
아픈 줄 모르고 잘 지냅니다
그런 인사말로 쓰였다

잠이 무던한 곳에서
누군가의 아침을 같이 보면
간헐적으로 살아 있는 기분
간밤에 비를 내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함께이지 않은 여름

눅눅한 편지를 도로 접는 날이면
가까스로
물 닿는 곳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돌아눕는 뒷모습이 물에 흩어진다
어딘가에 도착했다가
다시 이곳에 흘러든다
바람이 되었다가 비도 되었다가

아무튼 모든 것이 되돌아왔지만
끝없이 피고 지는 물 아지랑이 사이로
모르는 꿈을 꾸었던 것 같다

 

시 당선 소감

  시도 일기도 편지도, 거창하게 쓰지 않으려고 하는데 자꾸만 거창해져 여러 번을 썼다 지우고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좋아한다고, 잘하고 싶다고 말하는 게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시를 좋아하고 잘 쓰고 싶은데요. 그렇게 말하면 어디선가 책임이 따라붙는 것만 같아집니다.
  제가 아끼던 세 편의 시를 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또 제 시를 시간 내어 읽어주시고 선정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직도 확신을 받고 싶어 하는 어린 마음을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제 시처럼, ‘모름은 확신에서’ 온다고 믿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치열하게 쓰겠다던 고등학생의 수상소감, 아직도 마음 둘 곳을 모르겠다던 스무 살의 일기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 시를 함께해 주고 있는 스터디원들에게도 이 소식을 전하고 싶어집니다. 같이 오펜하이머 얘기를 하고 싫었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지루한 시들에 대해 이야기했던 시간이 모두 애틋했습니다. 함께 10대를 통과한 우리가 오래도록 서로의 시를 읽어주었으면 합니다. 아주 나중에는 그것이 시가 아니더라도,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가 되더라도, 그랬으면 합니다. 앞으로 시도 소설도 수상소감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들이 거창한 소감이 아닌 고백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시 심사평

  올해 동덕문화상에 응모한 작품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현재의 고민을 억지스럽게 꾸미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신의 특별한 사유와 경험을 언어로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논의되었던 작품은 구도와 장치를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의미의 전달력을 높이려고 했던 「점점점점점점점」과 ‘구멍’을 통해 작품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하나로 응축시켜 보여주었던 「검게 눈을 감으면」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시공간적 이미지로 바꾸는 데 성공적이었던 「서기」였다. 
  ‘서기’란 무언가를 기록하는 사람이다. 누구나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삶을 기록한다. 그 방식이 문자가 아니라 이미지와 영상으로 바뀐 지는 오래다. 하지만 여전히 글로 자신의 삶을 기록하며, 어떤 이는 타자의 삶까지 기록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보편적인 삶과 세계를 비유의 형식으로 기록하는 일을 한다. 그 일이 역사가 되기도 하며, 때로 문학이 되기도 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기록이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삶이 어떤 것인지를 성찰하게 되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서기」에서 “물이 닿는 곳”은 화자의 경험, 달리 말해 삶이 상징적 세계의 의미로 드러나는 시간이자 장소다. 작품은 물이 어디론가 닿는 과정에서 “마음을 써가며” “초들”을 밝히고 내면의 풍경을 천천히 기록해 간다. “간헐적으로 살아 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으며, 그래서 긍정적인 내일을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뜬구름” “상념” “하지 않았던 기억” 등 대체로 상징적 질서의 세계에서는 무의미해 보이는 것들이 기록의 대부분을 차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아니면 안 될 것 같던 말”은 언제나 놓치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지나고 보면 흘러가는 물과 같다. 그러나 상징적 질서의 세계가 아니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작품은, 삶이란 물이 흘러가는 것이라는 보편적 비유의 틀에 갇히지 않고 그 과정이 꿈을 꾸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의미를 전달하는 데 특별히 애를 쓰지 않으려는 태도는 이 작품이 지닌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성장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기록은 경험을 다시 떠올려야 하고 어떻게든 받아들이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몇 배나 더 고통스럽다. 젊음은 언제나 어수선하고 불안하고 두려운 시기였다. 응모자가 “눅눅한 편지”를 접고 “물 닿는 곳에 도착”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서기」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축하한다.  

여태천(시인·국어국문학전공) 교수 

 

| 사진 부문 당선작 |

옆 바다 - 이소정(회화 20)

 

사진 당선 소감

  언제부터인가 사진 찍는 행위가 삶의 일부가 되었다. 길을 걷다가도 마음에 드는 장면을 발견하면 카메라부터 드는 버릇이 생겼다. 순간에 대한 기록과 영감을 찾기 위한 나의 여정이었다. 여름날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시간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때는 유명해서 사람이 북적거렸던 짜장면집에 낡은 세월이 내려앉았다. 시간은 겹겹이 쌓여 곳곳에 스며들었다. <옆 바다>는 바다 옆에 있는 어느 짜장면집에서 발견한 이야기이다. 그곳은 수많은 세월 동안 얼마나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을까?
  나는 우리의 뒤편에 있는 언제나 당연시되는 풍경에 집중한다. 그러한 풍경은 그냥 지나치기 쉽기에 다시 한번 뒷걸음질 치며 다가와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이다. 내가 보는 시각들이 세상 밖에 나와서 여러 사람들과 같이 음미할 수 있게 돼 기쁘고 감사하다.
  동덕문화상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대학에 처음 입학했던 1학년 시절 기대감에 부풀어 뭣 모르고 지원을 했다가 처참하게 탈락했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매년 지원을 하려고 기회를 엿봤는데 매번 바쁘다는 이유로 못하다가 막 학년이 돼서야 다시 지원하게 되었다. 사실 은연중에 두려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작년 재작년보다 올해가 더 바빴지만, 이대로 졸업하기엔 아쉬워서 또다시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1학년 때와 다른 점은 기대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를 즐기면서 지원했다는 점이다. 대학에 다니면서, 결과를 떠나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기며 그 과정 그대로를 인정하는 정신을 배운 것 같다. 사진 찍는 행위도 이와 닮은 구석이 있다.
  동덕문화상은 내게 대학 생활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친구이다. 대학 생활을 의미 있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 모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사진 심사평

  올해 동덕문화상 사진 부문에는 19명의 학생이 총 100여 점의 사진을 출품했다. 예년에 비해 두 배가량 많아졌다는 점에서 학생들의 관심도가 높아진 것 같아 상당히 고무적이다. 심사 기준은 주제의 일관성이 없거나 평범한 구도의 사진, 주제감이 불분명한 사진은 배제하였다. 이러한 기준으로 보았을 때 3명의 학생 사진으로 추려졌다. 이 사진들은 보는 관점에 따라 장단점을 다르게 볼 수 있겠으나 나의 경우는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좀 남다르고 내용이 풍부하면서도 구성이 정리된 사진에 더 마음이 갔다. 그래서 선정한 사진이 ‘옆 바다’라는 제목의 사진이다. 이 사진은 지방의 어느 중식당 실내 풍경을 찍은 것인데 부감 시점으로 찍어서 나 역시도 같은 눈높이에서 호기심을 갖고 식당 내부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탐색하도록 만들었다.
  이 사진의 매력은 우선 구도를 들고 싶다. 사진 속 식당에는 23년도 7월과 8월 달력이 벽면에 줄지어 부착돼있는 점이 매우 이색적이다. 달력을 비스듬히 화면 중앙을 향하도록 과감하게 배치한 점은 시간이라는 이 사진의 주제감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달력의 끝부분 하늘색으로 도색된 골조의 일부는 달력과 완만하게 각을 이루면서 공간의 입체감이 강조되었다. 개업 당시부터 설치된 듯 여겨지는 거울은 앞으로 약간 기울어진 탓에 식당의 바닥 면에 배치된 집기들을 고스란히 반영할 뿐만 아니라 실내 공간을 굴절되어 보이게 함으로써 회화의 콜라주 기법을 연상시킨다. 여기에 수직의 흰색 원형 기둥이나 벽면 또한 부감법으로 기울어지게 보여 시각적으로 불편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점들이 한 시점에서 한순간에 포착된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사전 계획에 의해 구성된 한 점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와 더불어 사진 속 사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식당 주인의 성향에 대한 호기심을 저버리기 힘들다. 같은 해 7, 8월 달력을 중복해서 부착해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영업 목적상 장점에서였을까? 아니면 달력을 준 분들과의 친분을 저버리기 어려워서였을까? 나는 한참 동안 사진을 살펴보면서 이 궁금증을 지워버리기 어려웠다. 거울은 또 어떠한가. 기울어진 거울을 대담하게 화면 상단에 포착해 넣지 않았다면 이 사진이 지방의 어느 허름한 중식당의 실내를 찍었다는 점과 내부 상태을 관람자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사진은 절묘하게도 식당 내부 이곳저곳을 채우고 있는 용기들을 거울의 사각형 안에 하나로 묶어 놓았다.

윤종구(회화전공) 교수

 

 

|소설 부문 당선작|

제철 - 곽예령(문예창작 22)


“토마토도 비명을 지른대.”
명숙은 작은 텃밭 앞에서 쭈그려 앉아있었다. 명숙이 뒤에서 지켜보던 지영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소리야. 토마토 잘 키우는 법이나 검색하랬더니.”
“아니 진짜야. 스트레스 받으면 소리를 낸대. 뽁뽁뽁- 하고.”
명숙은 얼마 전 아파트 단지에 있는 텃밭을 분양받았다. 단지 내에 텃밭이 열 개 정도밖에 없어 경쟁률이 셌다며 아주 좋아했다. 명숙은 지영이 내려온 지 몇 시간을 텃밭의 장점 나열하는 데 열중했다. 각 텃밭이 떨어져 있어서 다른 집안 식물이랑 비교할 일 없으며, 햇빛을 잘 드는 곳을 분양받아 쑥쑥 자랄 것이라고 했다. 텃밭은 한 평 남짓한 작은 공간으로 대부분이 상추나 심어보려고 텃밭에 지원했다. 그러나 명숙은 처음부터 토마토를 키우겠노라고 결심했다. 키우고 싶은 이유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는데, 지영도 굳이 따져 묻지 않았다. 병철이 떠난 이후로 명숙이 이렇게나 활기찬 모습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그것으로 되었다.
“근데 토마토를 지금 키우는 게 맞아? 잘못된 거 아냐?”
“언젠가 키우는 게 맞는 계절이 오겠지. 그럼 그때 괜찮아지는 거지, 뭐.”
지영은 삼 년간 다니던 작은 가구 회사를 그만뒀다. 만화를 그리고 싶었고 공모전 여러 개에 출품했지만 낙방했다.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버티기엔 생활에 부담이 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돈이라도 벌어보자는 마음으로 회사에 취직한 뒤, 그곳에서 세 번의 해를 지나쳤다. 세 번째 해를 끝마치던 겨울에 지영은 퇴사 선언을 했다. 회사를 나가겠다고 말했을 때 상사는 짜증스러운 말투로 갈 곳은 있냐고 물었다. 지영은 아직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걱정돼서 하는 말이라며 지영의 퇴사를 만류했다. 상사가 이야기를 늘어놓을수록 걱정은 본인을 향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지영은 그때 퇴사를 선택한 것이 옳았다고 확신했다. 지영이 단호한 태도를 보이자, 상사는 그럼 이번 프로젝트까지만 끝내고 나가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이번 프로젝트’란 딱 떨어지는 일이 아닌 여유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가라는 뜻이었다. 소기업에서 여유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고, ‘프로젝트’를 끝내느라 봄을 온통 소비했다. 
여름이 되어 지영은 회사에서 퇴사했다. 곧바로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지냈던 반지하 월세방을 뺐다. 지영은 자신이 지금껏 얼마나 집을 잠자는 곳으로만 활용했는지 알았다. 방에서 챙기고 나갈 건 아무리 해 봤자 옷과 화장품, 밥솥, 그나마 비싸게 주고 산 극세사 이불뿐이었다. 그 외는 삼만 원 정도 하는 간이식탁이나 화장대 같은 가구들이었고, 이 정도면 뽕은 다 뽑았다고 생각하며 버렸다. 방을 빼기 전까지 지영은 냉장고에 처박힌 반찬들을 모조리 처리하는 것에 집중했다. 도통 언제 싸줬는지도 모르는 반찬들도 많았는데, 음식에서 시큼한 느낌이 나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버려지는 음식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반찬을 만든 명숙의 마음이 아까워서였다. 냉장고를 비우고 헌 옷들까지 마저 버린 뒤 홀가분하게 월세방을 떠날 준비를 했다. 박스에 짐을 다 옮겨 담았더니 상자 여섯 개가 나왔다. 지영은 그것이 자신의 5년을 대변하는 것 같아 두려웠다. 
직장을 그만두고 방을 빼 명숙의 집으로 택배를 보내기까지 지영은 명숙과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았다. 명숙이 이유를 물으면 이렇다 명료하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지영이 갑작스럽게 일을 그만두고 본가로 돌아간 이유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게 된 엄마 때문만은 아니었다. 병철이 죽고 명숙의 집으로 들어가기까지는 시간의 간격이 있었다. 지영이 결심한 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명숙에게 퇴근길에 전화를 걸던 날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지영은 아주 막막하거나 힘이 들 때 명숙에게 미래를 약속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를테면, 만화로 성공하면 나중에는 세계 일주를 시켜 주겠다 따위의 터무니없는 약속 말이다. 그날 또한 지영은 지쳐있었고, 명숙에게 물었다. 나중에 내가 돈을 많이 벌면 뭐 하고 싶어? 명숙은 대답했다.
“이제는 하고 싶은 게 없어. 늙어서 그런가. 그냥……, 쉬고 싶어.” 
지영은 지하철 환승 구역을 걷다가 자리에서 멈춰 섰다. 명숙의 나른한 목소리가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순간 지영은 아주 조급해졌다. 병철이 떠나간 뒤라서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라도 지영에겐 절망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어떤 말보다, 아주 허무맹랑한 바람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도, 심지어는 죽은 병철이 보고 싶다며 처절히 울부짖는 명숙의 모습을 직면해야 했을지라도, 명숙의 말이 지영에겐 훨씬 위협적이었다. 

명숙에게 지영은 늦게 가진 아이였다. 명숙이 이상한 낌새를 차리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사십 중반이 넘은 시점이었다. 명숙보다 나이가 많은 병철에게는 더욱 더디게 찾아온 딸이었다. 지영을 업고 다니면 항상 사람들은 명숙에게 할머니냐고 물었다. 지영은 처음엔 듣기 싫다고 소리를 지르다가 나중에는 우리 엄마라고 똑똑하게 말했다. 할머니 같은 엄마를 둔 아이는 금방 성숙해졌다. 지영은 크면서 이렇다 할 사고가 없었다. 그런데 택배가 집 앞으로 하나둘 도착하자 명숙은 사건이 터진 뒤라는 것을 직감했다.
지영은 집에 도착하자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명숙이 쏟아낼 질문들에 구색 좋은 대답을 준비했지만, 정작 명숙은 아무 말이 없었다. 지영은 짐을 대충 풀고 침대에 누웠다. 창 너머의 소음은 아래에서 들려왔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악 하고 지르는 소리, 테니스장에서 공 튀기는 소리. 아래를 향하는 소리였지만, 위로 포효했다. 자신보다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지영은 익숙하지 않았다. 발소리, 오토바이 소리, 술에 취한 이들의 목소리는 항상 지영의 위에서 들려왔다. 반지하에서 살 때는 그것이 아무렇지 않았는데, 자신이 항상 소리와 수직 관계에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지영이 방에서 나왔다. 명숙은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지영이 소파로 슬며시 가서 명숙 옆에 앉았다. 티브이에서는 매일 똑같은 시간에 하는 일일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30분짜리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영은 명숙이 전보다 조용해졌다고 생각했다. 명숙은 드라마를 볼 때 꼭 캐릭터에게 꾸짖었다. 악역이 나쁜 짓을 할 땐 아무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주인공이 멍청한 짓을 하면 한마디씩 말을 덧붙였다. 저런 멍청한, 아이고…… 지 인생 지가 골로 보내는구나. 그런데 명숙은 화면 속 주인공이 어떤 위기에 빠져도 남 일처럼 지켜만 보았다. 저녁은 시켜 먹을까? 지영이 슬며시 명숙에게 말했다. 그러자. 명숙은 짧게 대답했다. 
짜장면이 도착하고 거의 다 먹을 때쯤이었다. 지영이 조용히 입을 뗐고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까지 벌어졌던 일련의 과정을 브리핑하듯 밀어냈고, 그래서 집에서 좀 살겠다고 말을 할 때까지 되받아치는 말 없이 고요했다. 명숙은 마지막 단무지 한 점으로 짜장면 그릇에 남은 소스를 쓸어 모아 입에 넣었다. 아삭한 단무지가 입에서 잘게 쪼개지는 소리를 들으며 지영은 차마 눈을 치켜뜨지 못하고 밑으로 깔았다. 단무지가 꿀꺽하고 넘어가는 소리와 곧이어 명숙이 말을 하려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도 들렸다. 
“내가 요즘 뭐 하나를 키우고 있는데 한번 봐볼래?”
짜장면을 다 먹은 뒤 명숙과 지영은 나갈 채비를 했다. 지영은 거실을 훑어보았다. 화분이 부쩍 많아진 걸 볼 수 있었다. 명숙이 식물을 좋아한다는 건 처음 안 사실이었다. 지영이 화분을 바라보자 명숙은 꽃이 자란 화분을 보여줬다. 다 죽어가던 걸 심어서 물만 줬는데 꽃이 자랐다며 신나 했다. 시큼한 흙냄새와 지긋이 나는 꽃냄새가 섞여서 났다. 지영은 집을 잔잔히 메운 향기에 조금 위안을 받았다. 명숙과 지영은 아파트 1층으로 내려가 텃밭으로 갔다. 낮은 나무 울타리 안에는 축축하게 젖어있는 까만 흙만 보였다. 지영이 키우는 법은 아냐고 물었고, 명숙은 원래 막 키워야 잘 자라는 법이라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씨앗은 다이소에 천 원 주고 사 온 거라 죽어도 그만이라는 논리였다. 그럼 이건 중국산인가? 지영이 장난스러운 말투로 물어보자 명숙은 내가 키우면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성질을 냈다. 그래 잘 키워봐. 지영은 대답했다.


 
병철은 지난해 칠십육 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자신이 가장 바라던 형태의 죽음이었다. 원래 일어나던 시간에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명숙은 그의 죽음을 조용히 알아차렸다. 병철은 ‘후회 없다’는 말을 죽기 전에 자주 하곤 했는데, 명숙은 병철이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명숙은 수고했다는 말을 더 많이 해줄 걸 후회했다. 자신이 병철에게 어떻게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명숙은 대화의 테두리만 넌지시 기억했다. 점점 그녀의 기억은 흔적으로 변해갔다. 
병철이 떠난 후 명숙은 병철의 부탁을 따르기로 했다. 납골당을 고를 때 투명 유리창으로 된 곳이 아닌, 안이 보이지 않는 납골당을 선택할 것, 그리고 사진은 걸어두지 말 것. 그 두 가지였다. 납골당 앞에 서서 굳이 걸어놓은 사진을 보며 울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영은 약속을 내심 따르지 않길 바랐다.
지영에겐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언젠가 병철은 술에 취해 엄마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보고 싶은데 얼굴이 기억이 안 난다며 건조한 표정으로 읊조렸다. 병철은 9살 때 엄마를 잃었고,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 중학교 때부터 가장이 되었다. 두 누나를 시집보내고 남동생을 서울로까지 보내어 공부시켰다. 본인은 대학을 못 갔지만 남동생은 육군사관학교에 입학시켰다. 지영은 병철이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설화를 듣는 것만 같았다. 고난과 역경을 거친 병철이 마치 위인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병철이 거짓말로 지어낸 게 아닌지 의심했다. 그러나 위인전과 확실히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병철이 영웅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지영의 집이 보일러도 안 나오는 시골구석으로 들어갈 동안, 지영의 고모는 서울에 빌딩을 세웠고 작은 아빠는 제주도에 펜션을 지었다. 
“슬퍼하겠지. 근데 내 얼굴 보며 울지 마.” 
병철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지만, 지영은 그 부탁을 이행할지 고민했다. 지영은 사진을 걸어두고 싶었다. 납골당 앞에 서서 병철의 한순간이 찍힌 모습을 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무런 사진 없이 글자만 놓여있다면,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을 불러낼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되면 또다시 연기가 가득한 거리를 걸을 것이고, 그 길 끝엔 자책의 시간이 놓여있을 걸 알았다.

밤이 되고 비가 내렸다. 거리에 사람이 일제히 사라지고 아파트 층마다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명숙과 지영은 늦은 점심 탓에 때를 놓쳐 야식을 먹기로 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로 배달을 중단한 곳이 많았다. 명숙은 전이나 해 먹자고 했고 지영은 포장해 온다며 말렸다. 명숙은 지영의 말을 무시하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시큼한 김치 냄새는 거실까지 퍼져나갔고 명숙은 김치를 칼로 다졌다. 튀김가루와 대파, 참치를 물과 함께 섞었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둥글게 펼쳤다. 기름에 튀겨지듯 구워지는 소리와 고소하고 느끼한 냄새가 났다. 두둑 두둑. 지영은 빗방울이 창문을 연신 쳐대는 소리가 마치 모스부호 같다고 생각했다. 누가 밖에서 제발 좀 들여보내 달라는 것 같아서 창밖을 골똘히 바라보았다. 바람은 창문과의 충돌에 옅은 신음을 내었다. 전기장판 때문에 바닥은 따듯했고 공기는 쌀쌀했다. 기억을 불러오기 좋은 온도였다.
지영이 중학교 때 신도시로 이사하였다. 병철은 회사를 그만두고 주식을 시작했다. 회사에 다닐 땐 주가가 치솟았고, 거짓말처럼 회사를 그만둔 이후에는 폭락했다. 병철은 생활이 어려워져도 계속 주식을 붙들었다. 명숙의 설득 끝에 주식을 놓고 일자리를 잡았다. 병철은 기차를 타고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지역으로 가서 일을 시작했다. 병철은 거기서 작은 원룸에서 생활을 계속했고 이주마다 한 번씩 명숙이 가서 반찬을 채워줬다. 병철과 떨어지게 되자 상황은 점차 나아졌고 청약 당첨까지 되어 신도시에 이사 오게 되었다. 지영이 처음 이사를 왔을 때, 회색 도시라는 것을 처음 경험했다. 새 아파트만 줄지어 있고 무언가 부족해서 덧붙여진 건물이 없었다. 신도시의 어떤 곳도 계획 없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영이 병철에게 문자로 집의 장점을 나열해서 보냈다. 빨리 아빠가 이 집에서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첨부해서 보냈다. 병철은 곧이어 답장이 왔다. 뜻대로 되는 게 없잖니. 문자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막걸리를 마셨더니 명숙과 지영은 금방 취기가 올라왔다. 티브이에서는 연예인들이 사주를 보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인생 그래프를 만들어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를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한 연예인은 그래프가 들쑥날쑥했는데, 다들 힘들게 살았다고 위로해주고 있었다. 명숙은 그 장면을 보고 힘들게 안 산 사람이 어디 있냐며 소리쳤다.
“네 아빠 인생 그래프를 노래로 만들면 트로트 정도는 될 거다!”
“그 노래 가수는 꺾기를 엄청나게 해야겠네.”
명숙은 깔깔대고 웃었다. 지영도 예전에는 누가 더 불쌍한지 자랑하는 것 같은 장면이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했습니다’로 결론을 맺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영은 이제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타인의 인생을 보면 볼수록, 안타까운 인생이란 누구에게나 해당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누가 더 불쌍했는지 겨루는 일 따위에는 승자는 없다는 걸 알았다.
명숙은 옛날이야기를 잔뜩 풀어놓았다. 대부분 지영이 미웠던 이야기를 했다. 계란후라이 노른자가 터졌다고 밥을 안 먹었다는 이야기, 자전거를 혼자 익혔다고 평생을 징징거렸다는 이야기. 지영은 빨리 명숙을 재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넌 착한 딸이었어. 명숙은 초점 없는 눈으로 지영을 바라봤다. 지영은 명숙을 방으로 들여보냈다. 지영은 명숙이 침대에 누울 때까지 지켜보았다가 방에서 나왔다. 또 밖에서는 두둑 두둑. 지영은 속이 답답한 게 아무래도 나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두껍게 떨어지고 있었다. 지영은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신도시의 산책로를 걸었다. 비릿한 흙냄새가 났다. 가로등 간격이 넓어서, 밝았다가 완전히 어두워질 때쯤에 또 하나의 가로등이 다시 나오는 식이었다. 아빠는 나를 어떻게 기억했을까. 지영은 생각했다. 한 걸음을 뗐을 땐 좋은 기억을 찾아냈고, 다른 한 발을 마저 움직였을 땐 그 기억을 회수했다. 결국 마지막 걸음엔 그것들을 모두 부정하는 기억만이 떠올랐다. 지영은 그 자리에서 멈췄다.

지영은 어릴 적 집에 돌아오면 하루에 있던 일들을 병철에게 다 말했다. 병철은 평소에 어떤 말을 해도 묵묵하게 대답만 했지만, 지영이 일과를 조잘되는 시간은 유일하게 그녀에게 주어지는 성과의 시간이었다. 하루에 착한 일을 했으면 그것에 대해 아낌없이 칭찬해줬다. 지영은 만약 좋은 일을 하지 않았으면 말을 꾸며냈고 그럴 때마다 병철은 귀신같이 반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착한 행동을 한 것 같으면 그것을 부풀려 말했다. 
어느 날에는 지영의 작은 아빠가 집에 왔다. 병철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을 때도 자신의 누나는 미워했지만, 동생은 보듬었다. 지영이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 명숙은 작은 아빠는 병철의 첫 번째 자식이라고 했다. 지영의 작은 아빠는 자주 전화가 오지도 않았고, 명절에도 만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작은 아빠가 제주도에 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영은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제주도에 산다고 해서 전화 비용을 추가로 내야 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병철은 오랜만에 만나는 동생 때문에 명숙과 장을 보러 나갔다. 집에는 지영과 그녀의 작은 아빠 둘이 남았다. 작은 아빠는 지영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어봤고 지영은 최대한 열심히 대답했다. 작은 아빠를 기분 좋게 하면 병철에게 칭찬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요즘 엄마 아빠는 싸우시니?”
“저는 잘 몰라요. 근데 컴퓨터 방에서 큰 소리가 나는 건 들었어요.”
“지영이 네가 엄마한테 잘해드려. 다른 여자 같았으면 벌써 네 아빠 같은 남자는 떠났어.”
지영의 작은 아빠는 지영에게 오만 원을 쥐여 줬다. 하룻밤을 자고 간다던 그는 당일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지영은 병철에게 오늘 있던 말을 하려고 컴퓨터 방으로 들어갔다. 병철의 표정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표정이 굳어있었고 컴퓨터도 꺼놓은 채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래서 지영은 작은 아빠와 있었던 일을 더 자세히 말하기로 했다. 그날 있던 대화를 최대한 기억해내서 전달했고, 용돈까지 받았다는 것도 자랑했다. 다른 여자였으면 아빠 같은 남자를 떠났을 것이라던 대화를 말하기까지도 막힘없었다. 떨리는 동공과 애써 웃음 짓는 입꼬리. 정말 그랬냐며 재차 묻던 목소리까지. 지영은 지금까지도 병철의 얼굴을 잊지 못했다.

지영은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날 지영의 작은 아빠는 병철에게 돈을 줬다. 병철이 차마 그 돈을 받지 못하자 그는 말했다.
“형이 나한테 이 정도는 받아도 돼.”
그날 이후 병철은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해외 음식이 싫어 여행도 가지 않던 병철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병철은 도움을 주는 게 익숙한 사람이었지 받아본 적은 없던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병철에게 가장 행복했던 때를 물어보면 17살이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가장으로서 가족과 힘들 사람들에게 충분히 지원해 줄 수 있던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지영에게 병철은 착하게 굴지 않으면 아침이 오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어리석은 짓이라고 병철을 만류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지영은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 어릴 적 자신을 막고 싶었다. 그 방에 들어가지 말라고,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상상 속으로는 아무리 자신의 입을 막아도 말을 계속됐고 병철의 얼굴 또한 똑같이 보였다. 수없이 시간을 되돌려 자신의 동생이 했던 말을 복기했을 병철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작은 아빠가 내뱉던 말을 돌이켜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해 나갔을 그의 모습은 아주 외로워 보였다. 컴퓨터도 켜져 있지 않은 어두운 방에 앉아서 분명 행동을 후회하며, 지금과 다른 결과물을 도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고민하며 과거를 깊숙이 파고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을 전달한 자신을 원망했을 수도 있다고 지영은 생각했다. 차라리 말이나 하지 말지 그랬냐고 미워했을지도 몰랐다. 지영은 과연 병철이 마지막 순간에도 그때의 기억을 지니고 있었을까 알고 싶었다. 제발 그 순간을 아주 까마득하게 잊어버렸기를 간절히 바랐다. 지영은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지영은 다시 또 과거의 그 순간에 서 있었다. 눈을 감고 양을 불러도 이제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지영은 병철의 방에 들어갔다. 그때와 다른 집이었지만 병철이 사용하던 의자는 같았다. 컴퓨터엔 먼지가 쌓였고, 화면 테두리에는 노란 포스트잇이 더덕더덕 붙어있었다. 포스트잇엔 아이디나 메모가 있었다. 날려썼지만 날카로운 글씨체는 병철의 것이었다. 메모 속 글자들은 서로를 침범했다. 지영이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의자가 앞뒤로 흔들렸다. 의자 다리를 보니 의자 앞에 있는 다리와 뒤에 있는 다리가 길이가 달랐다. 의자 앞부분에 있는 다리는 끝이 마모된 채로 있었다. 의자가 처음부터 이렇게 나왔을 리 없었다. 지영은 병철이 의자 가장자리에만 걸터앉아서 그렇게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등받이에 온전히 기대지 못한 채로, 의자를 앞으로 저치기도 하고 컴퓨터로 다가가려 의자 끝에만 걸쳐 앉았을 것이다. 불안할수록 가장자리에 쏠려있었을 병철의 모습을 그렸다. 지영은 병철과 똑같은 자세로 의자에 앉았다.
명숙은 슬며시 방으로 들어왔다. 씻은 방울토마토를 지영에게 건넸다. 윤기 나고 매끈한 붉은빛의 방울토마토였다. 지영은 텃밭의 토마토가 벌써 이렇게 자란 거냐고 물었다. 마트에서 사 온 것이라고 대답을 듣자 역시 때깔이 좋아 보였다고 말했다. 그놈들은 도통 안 자라. 지영이 방울토마토 하나를 입에 집어 넣었다. 알맹이를 씹자 상큼한 즙이 밖으로 터져 나왔다. 알이 단단하게 팽창된 토마토도 있었지만 물러서 찌그러진 토마토도 많았다.
“네 아빠는 생전 물 흐르는 과일은 안 먹었는데, 이건 잘 먹더라.”
명숙과 지영은 토마토를 싹 다 먹어 치우고 산책하러 나갔다. 거리 위 나무들은 완전한 초록빛은 아니었다. 서서히 가을이 돼가는 것 같았다. 그것은 지영이 여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이제 뭐 하고 살 거니. 만화나 그려봐야지. 그거 좋네. 서로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반응을 주고받으며 걸었다. 산책로에는 주말이 아니어도 사람이 많았다. 레깅스를 입고 달리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거칠게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에게 조심하라고 명숙은 소리쳤다. 그리곤 아이들이 너무 예쁘다고 웃어 보였다. 명숙에게 지영은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냐고 물었다. 응. 이곳에서 쉬고 싶어. 명숙은 대답했다. 바람은 선선하게 불었고 잠시 쉬어가자며 앉은 벤치는 그늘 때문에 약간 서늘했다.
“엄마는 내가 정말 미웠던 적이 언제야?”
“글쎄 엄마는 그런 건 워낙에 잘 잃어버려서.”
“그래도 그걸 어떻게 잊어.”
“어떻게 그런 마음이 쉽게 생기겠어. 생겼다한들 그걸 오래 간직하겠니?”
“정말 그럴까.”
“정말이야. 아빠도 똑같아. 잘 잊지.”
“다행이다.”

지영과 명숙은 산책로에서 돌아와 아파트 단지 내를 돌았다. 아파트 사이 구석진 곳이 있으면 그곳에 텃밭들이 있었다. 상추가 빽빽하게 자리 잡아 서로를 덧대고 있는 텃밭도 있었고, 꽃을 심고 작은 팻말에 이름을 적어 박아둔 곳도 있었다. 명숙의 텃밭 앞에 도착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영은 쭈그려 앉아 텃밭을 조심히 관찰했다. 그러다 구석진 곳에 무언가 돋아난 것을 발견했다. 앉은 상태로 몇 걸음 옆으로 가니 초록색 줄기가 보였다. 아주 짧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굵어지고 금방 열매가 자라날 것 같았다. 와, 이게 자라네. 지영은 감탄하며 자리에 일어섰다. 
“토마토는 언제가 제철이야? 지금 맞아?”
“토마토가 제철이 있냐? 그냥 열매가 나면 그게 그놈의 철인 거지.”
지영은 아버지의 납골당에 사진을 걸어 두지 않기로 결심했다. 병철의 납골당 앞에 있을 때, 혹은 병철이 그리워질 때 아주 미운 기억이 떠오른다면, 기꺼이 과거 속으로 끌려가 그곳에 서서 병철을 바라보았다. 혹여나 병철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걸 들키면, 그는 절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해줄 걸 알았다. 나는 여전히 쉽게 잠들지 못해요. 지영이 말하면 뜻대로 되는 게 없잖니, 하고 병철은 대답할 것이다. 그때마다 지영은 가슴이 뻥 뚫리듯이 시원해지다가도 금세 마음속에 다시 들어차는 안개를 느꼈다. 온전히 개운해질 수 없는, 그날 그 방에 지영은 또 서 있었다. 

 

소설 당선 소감
  소설 「제철」은 감정으로부터 시작된 소설입니다. 유달리 모든 것이 가혹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나를 받치고 있던 지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고, 나를 재정립할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이 소설의 뻔한 이야기들은 나에게서 시작될 겁니다. 내가 나를 들여다볼 때도 따분하다고 느끼는데, 남들은 어떻게 안 그러겠습니까. 그래도 ‘나’를 펼쳐놓고 그것을 집요하게 바라보는 것은 큰 위로가 됐습니다. 나에게 소설은 여전히 그 역할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저의 삶에 잠시라도 스쳐 가셨던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 모든 게 저에게는 자극이었고, 순간들을 포착하는 것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특히 가족들에게 더 빛나는 문장을 선물하고 싶었는데, 그것은 아직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문장의 끝자리에는 마침표 대신 쉼표가 있습니다.
  가을도 추워지고 세계는 점점 얼어붙습니다. 이 시대에서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나를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얻은 게 있다면, 내가 이 소설을 쓰며 독자에게 주고 싶던 마음은 한 자락의 위로였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무슨 글을 쓸 수 있을지 심지어는 계속 쓸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지만, 분명한 건 나의 이야기는 당신에게 가닿기를 치열하게 고민할 것입니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거든요.

 

소설 심사평
  심사를 하면서 초록의 얼룩을 지닌 채 작은 사과나무에 매달려 햇볕을 쬐고 있는 풋사과가 생각났습니다. 한입 베어 물면 달큼한 사과 향이 입안을 헹구고 서걱이는 사과 알갱이들이 입안 가득 과즙을 만드는 풋사과. 미학적인 측면에서나 완성도의 측면에서는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소설가에 대한 꿈의 열정이 느껴져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눈여겨본 작품 중「전조」는  요즘 유행하고 있는 재난소설을 연상하게 하는 소설로, 지진으로 인한 엄마의 죽음이 상처가 되어 트라우마를 겪는 딸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좋고 트라우마에 대한 심리서술이 설득력 있게 잘 서술되어 있는 작품이지만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부분과 분량이 조금 아쉬웠습니다.「의리와 으리」는 남편과의 이혼과 할머니의 죽음을 겪는 여성의 이야기인데, 남편의 외도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담하게 잘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혼과 죽음을 결말에 하나로 묶는 서술도 완성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두 개의 이야기를 병렬하다 보니 전체 이야기에 대한 초점이 흐릿해진 점이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제철」은 안정감과 완성도 측면에서 눈길이 가는 소설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엄마가 있는 신도시에서 작은 텃밭을 가꾸는 이야기입니다. 큰 사건들의 연쇄 없이도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구성되고 있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안정된 문체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강렬하지는 않지만 삶의 따뜻한 정서가 내재돼 있고, 이야기를 계속해서 읽게 만드는 문체의 힘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구성과 문장력에 있어 동덕문화상으로 당선되기에 손색이 없을 만큼의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당선을 축하하며 앞으로 좋은 소설가로 성장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홍순애(국어국문학전공) 교수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