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 소개할 사연은 서울특별시 장위동에 거주 중인 23살 김수인 양께서 보내주셨습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동덕여대 컴퓨터학과에 재학 중인 김수인입니다. 제가 이번 학기를 끝으로 대학 입학 후 3년간 몸담았던 학보사에서 퇴임하게 됐는데요. 임기가 끝난다고 생각하니 99%의 시원함과 1%의 섭섭함이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나마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려 사연을 적어 보냅니다.
처음 제가 학보사에 들어온 계기는 아주 단순했습니다. 신입생이었던 저는 기자가 되고 싶었던 것도, 언론에 큰 관심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블로그 이웃이 대학 시절 학보사 출신이었다는 게 멋져 보여서 학보사에 지원해 합격했습니다.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 보도기사를 쓴 다음 사수 기자님의 피드백을 받았을 때가 뇌리에서 잊히지 않습니다. 제가 보낸 기사의 모든 문장에 빨간 줄이 그어져 있었어요. 사형선고 같았죠. 기사를 고치고 보내고 또 고치고 보내고···. 하루는 팩트체크를 제대로 안 해서 사수 기자님께 크게 혼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나날의 반복이었습니다. 방학? 없었습니다. 방학마다 평가/개편/홍보/기획 회의 그리고 기사 스터디(필사, 제목 등)로 도무지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내가 이번 호만 마무리하고 나간다’라는 마음을 계속 품고 있었습니다.

  아뿔싸! 나간다고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저는 6개월이 지나 수습기자 딱지를 떼고 금세 정기자가 됐습니다. 익숙해져서 할만할 줄 알았건만 이에 따라 맡은 매수와 책임 또한 늘어났기에 더더욱 숨이 막혔습니다. 내 기사뿐만 아니라 밑 기수 수습기자의 기사도 퇴고해야 하고 거의 매달 원고지 기준 20매가 넘는 분량의 글을 작성해야 했습니다. 물론 학업과 아르바이트도 병행한 채 말이죠. 주위 사람으로부터 “너 기자 할 거야? 학보사 그만두고 그 시간에 전공 공부해~” 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만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또 한해가 흘러 3학년, 어쩌다 보니 데스크단까지 됐습니다. 문화부장이라는 직책도 맡았고요. 그리고 이때부터는 단순히 기사를 쓰는 것을 넘어 학보, 학보사의 운영에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구성원 개개인의 기사 작성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모두의 마음이 다치지 않고 즐겁게 일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까. 학보사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 과연 이런 노력과 마음이 제대로 전달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야속하게도 저는 지금 퇴임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금까지가 학보사에 몸담았던 만 3년 동안의 요약입니다. 학보사 기자로 생활하면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났습니다. 또한 완벽하지 않더라도 마무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수없이 취재 요청을 거절당하면서 마음의 맷집이 커지기도 했습니다. 경험 속에서 배우고 느끼고 성장했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건 함께해 준 학보사 구성원들이 없었다면 긴 시간을 버티지 못했으리라는 것입니다. 항상 뒤에서 저희를 든든히 받쳐주신 서린, 서진 조교님, 좋은 본보기가 돼 준 59, 60기 기자들, 2년간 함께 고생한 62기 기자들, 이후에 남아서 학보사를 이끌어 줄 63기 기자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을 함께 나누며 성장해 준 61기 보영, 영은, 한비 기자까지. 이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네~ 수인 양의 대학 시절은 학보사와 학보로 가득하군요. 오랜 시간 함께 했던 만큼 후련함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그 반짝거리는 시간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다가올 미래를 향해 새로이 나아갈 수인 양을 응원하면서 노래 띄워드릴게요. 레드벨벳의 My dear.

김수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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