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은 성인이 되고, 경제적 활동이 가능케 되면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나와 본인의 힘으로 자립하곤 한다. 그러나 요즘 사회에서 성공적인 자립을 하기란 쉽지 않다. 주택난과 취업난 같은 문제에 부딪혀 자립을 억지로 외면하는 ‘캥거루족’이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초적인 생활에 문제가 없는 이들도 자립에 어려움을 겪는 요즘,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도 계속해서 인생을 살아가야 할 장애인들에게 ‘자립’이란 막막한 현실 그 자체다.

  그래서 그들의 부모는 자식의 홀로서기를 위해 오늘도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린다. 사단법인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주최로 벌어진 ‘2023 전국 오체투지’는 지난달 15일 제주도청을 시작으로 다가오는 7일 서울 국회 앞까지 전국 12개의 지자체 시·도청을 돌며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해당 오체투지를 통해 △모두를 위한 통합교육 보장 △발달장애인 노동권 보장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생활 권리 보장을 촉구하는 중이다.

 


탈(脫) 수용이 필요해
  자립을 위해선 시설 수용이 아닌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갖춰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 마련된 생활 공간은 보호보다는 격리의 의미를 지닌다. 이 때문에 장애인 거주시설 이용률도 매우 낮은 편이다. 2022년 기준 국내 등록된 265만 2,860명의 장애인 중 거주시설을 이용하는 인구는 27,946명으로, 현재 장애인 거주시설 이용 비율은 1.05%에 불과하다. 장애인 거주시설에서는 원활한 생활을 위해 많은 요소가 제한되므로 기본적 욕구를 제대로 존중받을 수 없고, 학대 또는 방임과 같은 환경에 노출되기 쉽다. 실제로 장애인 거주시설 내에서 성폭행과 인권침해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지만, 폐쇄적인 시설의 특성으로 인해 외부와의 접촉이 제한돼 해당 사실을 알리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로 인해 장애인을 가족 구성원으로 둔 이들은 시설보다는 직접 그들의 생활을 보조하기를 택한다.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곁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 장애인의 비율은 74.1%로, △배우자=38.7% △부모=20.8% △자녀=13.3% 등 대부분이 가족 구성원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평생토록 가족의 생활 보조를 받으며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와 같은 문제로 여러 장애인 단체에서는 장애인 거주시설보다 ‘탈시설’을 추구하고 있다. 각 단체가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탈시설’은 장애인 거주시설에 장애인을 수용하지 않고 지역사회로 나올 수 있게 이끄는 것으로, 그들의 자립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탈시설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미리 갖추게 하는 것이다. 이를 돕고자 장애인 거주시설과 대립하는 개념인 ‘장애인 자립생활주택’이 설립되기도 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는 자립지원서비스의 일환인 장애인 자립생활주택은 전국 119곳에 마련돼 있으며, 자립 생활을 희망하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만약 본격적인 자립 생활이 두렵다면, ‘장애인 자립생활주택 체험홈’을 통해 일정 기간 자립 생활을 잠시 경험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설을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의 움직임과는 달리 정부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내년 예산안에서 탈시설을 위한 예산으로 59억 8,200만 원을 편성했지만, 장애인 거주시설의 예산에는 112배 큰 6,695억 원을 편성했다. 장애인 거주시설 예산이 350억 원 증가할 때, 탈시설 예산 증가는 11억 원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모든 형태의 장애인 수용시설을 폐지하고 시설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라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권고를 무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협약에서 강조하는 장애인 인권 및 주거권 보장에 관한 내용에도 위반된다.


자립, 경제력 없인 하늘의 별 따기
  자립은 장애의 유무를 떠나 경제적 부담이 직접적으로 다가오기에 누구에게나 막막한 일이다. 특히 비장애인보다 소득이 적은 장애인이 자립하게 될 경우, 경제적으로 빈곤한 삶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99만 원으로 전국 월평균 가구소득의 48.4% 수준인 것으로 밝혀졌다.

  경제활동은 자립에서 가장 중요한 뼈대 중 하나다. 일자리를 가진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본인의 삶에 대한 주체적인 선택을 내려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사회에 진출해 성장하기를 원한다.

  어느 한 쉼터의 도움을 받아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워 현재 2년이 넘도록 자립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는 지적장애인 민세연(28·여) 씨 역시 자립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경제적 문제를 꼽았다. 민 씨는 “코로나가 심했을 때는 일자리를 잘 뽑지도 않고, 경력을 우선시하는 곳이 많아 일회성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어려웠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자립센터) 자립옹호팀 동료상담가 이도훈 직원 또한 경제적 문제와 활동 지원 서비스(활동지원가) 부족을 자립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으로 꼽았다.

 

서울 압구정에 위치한 카페 ‘TWUC’에서 전시회 《어우러짐》이 개최된 모습이다
△ 서울 압구정에 위치한 카페 ‘TWUC’에서 전시회 《어우러짐》이 개최된 모습이다


어려운 현실 속에 피어난 희망
  지난 9월 1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는 ‘24년도 동료지원가 사업’(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의 예산 23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 사업 실적 부진과 유사 중복사업이라는 이유였으며, 이로 인해 활동지원가 187명이 전원 해고 위기에 놓였다. 이후 서울시도 잇따라 ‘권리 중심 공공일자리’와 ‘거주시설연계사업’을 폐지했다. 두 사업의 폐지로 중증장애인 노동자 400명, 전담 인력 105명 총 505명이 내년에 일자리를 잃게 됐다.

  이처럼 계속되는 정부의 예산 삭감에도 장애인의 자립을 돕기 위한 단체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다. 먼저 2016년에 개교한 자립센터의 부설 기관 ‘김포장애인야학’은 제도 교육으로부터 배제됐던 장애인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사회에 녹아들 때 필요한 능력을 기르기 위한 각종 학습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 직원은 “장애인 특수학교를 졸업하더라도 장애인을 위한 사회활동 인프라가 약하기 때문에 성인 발달장애인이 이곳(장애인야학)에 와서 함께 배우고 일한다”고 설명했다.

  교육뿐만 아니라 장애인 고용과 인식 개선을 위한 여러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8일부터 24일까지 티몬은 장애인 표준사업장인 카페 ‘TWUC(TMON WITH YOU CAFE)’의 개점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밀알복지재단과 전시회 《어우러짐》을 개최했다. 해당 전시회에서는 밀알복지재단의 장애인 작가들이 비장애와 장애의 벽을 허무는 작품을 선보여 스스로 자립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보여 줬다.

  이번 전시회가 진행된 티몬의 장애인 일자리 창출 카페 ‘TWUC’에는 현재 취업 과정을 거쳐 약 3주간의 실습을 받은 12명의 장애인 직원과 활동을 보조하는 사회복지사, 비장애인 바리스타 직원도 함께하고 있다. 카페에서 장애인 직원의 근무를 보조하고 있는 사회복지사 겸 파트장 조한순 씨는 근무 중 기억에 남는 일화를 ‘실수가 있을 때’로 꼽았다. 그는 “아무래도 장애를 겪고 있는 분들이다 보니 항상 완벽하지 않다”며 늘 실수가 발생하지만, 거기에서 나는 웃음이 있어 즐겁게 근무하고 있다고 밝혔다.


진정한 화합을 위해서
  이렇듯 최근 장애인의 사회적 활동이 늘어나고 있지만, 미비한 제도로 인한 안타까운 사례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취업 과정에서의 불이익이나 직장 내 부당한 대우 등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동체 속 함께 생활하는 구성원으로서 이들의 자립을 적극적으로 응원하며, 이들이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장애인의 자립은 의존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비장애인과 장애인 간의 진정한 어우러짐이 이루어져야 할 때다.

안나영 기자 anana27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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