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판 이틀 전, 조급한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후회 없는 글을 쓰고 싶은 욕심에 많이 늦었네요. 언제나 그랬듯 조판 날까지도 ‘왜 이런 글을 썼지’ 하고 자책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자주 말씀하셨던 당신의 좌우명을 떠올려 봅니다. ‘후회하지 말자.’ 초등학생 때 가훈을 적어오라는 숙제에는 매번 이 여섯 글자를 적었습니다. 그러나 말을 옮겨 적기만 했을 뿐, 후회하지 않을 용기가 없어 지킨 적은 많이 없네요. 이번에도 어기게 될까 봐 걱정될 따름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우리 학보사. 다양한 사건·사고들이 뇌리를 스치지만, 모두 접어두고 현재의 감정만 서술하려 합니다. 일기처럼요. 일기에는 그날의 동선을 빼곡히 나열할 수도 있지만, 그저 휘갈기듯 내 감정을 이리저리 풀어놓은 것이 나중에 펼쳐볼 땐 더 재밌습니다. 저는 항상 나중을 생각하는 사람이니, 오늘도 그렇게 써내려 가 봅니다.


  먼저 학보를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네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올해 3월, 수습기자를 모집하며 기자들과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왜 학보사에 안 들어오지?” 모집이 좀처럼 되지 않아 답답함에 나온 한마디지만, 동시에 학보사에 대한 학우들의 무관심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래도 꾸준히 퀴즈에 참여하는 몇몇 학우들, 신문을 돌릴 때마다 반겨주시는 교직원분들의 관심이 있었기에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무력감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정문 학보함을 지나칠 때마다 조금이나마 줄어 있는 학보도요. 여건이 된다면 독자 한 분 한 분에게 안부를 묻고 싶습니다. 학교와 사회는 이러한데, 그대들은 안녕했는지요.


  그리고 2년 6개월 동안 함께한 61기 기자들에게. 저는 사실 승부욕이 많은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덤덤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요. 같은 입장인 사람이 세 명이나 있다는 건 그만큼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안에서 밀리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기사를 쓰면서 자주 괴로웠습니다. “이거 별로지?”, “너무 못 썼다”고 투덜대는 제게 “대체 뭐가 별로야”, “아니, 잘 썼는데?”라며 퉁명스럽지만 단단한 말로 기둥이 돼 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한 명도 포기하지 않고 치열하게 자리를 지킨 덕에 저는 더 잘하고 싶었고, 결국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막바지로 향하고 있네요. 마지막 단락에서야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아 말을 아꼈습니다. 저는 아주 어려서부터 글을 사랑했습니다. 학창 시절 글짓기 대회에 나가고, 온갖 동아리에서 기사, 보고서, 각본까지 다양한 글을 써왔습니다. 글을 잘 쓴다고 자부했고, 모르긴 몰라도 평생 글을 쓰며 살아갈 것이라고 믿었던 때도 있었죠.


  그런 제게 수습기자 시절은 사회초년생과 다름없었습니다. 아직도 우스갯소리로 학보사는 ‘작은 사회생활’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한 편의 기사를 쓰려면 취재라는 거창한 일을 해내야 했고, 그렇게 써낸 기사는 빨간 줄이 가득한 한글 파일로 돌아왔으니까요. 그때 느낀 감정은 분노나 절망감 따위가 아니라 두려움이었습니다. 더 이상 글을 사랑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마냥 자랑스럽기만 했던 내 글이 아쉬울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스물네 번째 신문을 발행하며 깨달았습니다. 마음에 드는 기사가 한 편이라도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사실을요. 방금 한 5초 동안 생각해 봤는데요. 두 편 이상은 떠오르니 성공한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로 지면에 선명히 인쇄될 이 기사에서 다짐해 보겠습니다. 평생 글을 쓰겠다고요. 그리고 글을 여전히 사랑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최보영 대학사회부장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